정만진 소설가
1913년 5월29일 러시아 작곡가 스트라빈스키의 발레 작품 '봄의 제전'이 파리에서 초연되었다. 공연이 시작되면 무대에는 고대 러시아의 봄 들판이 펼쳐진다. 새봄을 맞이하는 기쁨의 표시로 남녀가 대지에 감사의 춤을 올린다. 아직 미개 종족인 탓에 몇몇 처녀가 제전에 바쳐질 희생물로 지목된다. 청년들이 그 처녀들을 둘러메고 멀어져간다.
수도사가 나타나 신비로운 의식을 집행한다. 수도사가 한 처녀를 최종 희생물로 선택하면, 그녀는 미친 듯이 춤을 추다가 절정에 이르러 마침내 대지에 쓰러져 숨을 거둔다. 사람들이 그녀의 시신을 높이 치켜들고 사라지면 태양을 우러러 진행되던 봄의 제전은 드디어 막을 내린다.
'봄의 제전'은 서유럽 사람들의 기호에 전혀 부응할 수 없는 서사였다. 서유럽인들은 동로마제국 정교(正敎)를 배척하고 베드로의 순교지 로마에 크리스트교의 정통성이 있다고 굳게 믿어왔다. 일부 관객은 다신교 수준에 불과한 고대 러시아의 설화를 소개하는 작곡가에게 시대착오라고 비난했다.
게다가 '봄의 제전'은 변화무쌍한 리듬, 위압적인 관현악, 출렁이는 듯한 음향 등 모든 것이 낯설고 기괴했다. 관객들은 발레에 집중하기는커녕 반으로 나뉘어 공연에 대한 찬사와 야유를 보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새로운 예술 경향과 마주친 대중이 처음에는 무관심, 심지어 반감을 드러내다가 새삼스럽게 열광하는 경우는 드물지 않다. 고흐만 해도 그랬다. 지금은 누구나 세기의 명작으로 떠받드는 35세 작품 '해바라기', 36세 작품 '별이 빛나는 밤에', 37세 작품 '삼나무와 별이 있는 길' 등은 그의 권총 자살 이후 13년이나 지나 열린 1903년 유작전 뒤에야 유명해졌다.
'오감도'의 이상도 재미있는 사례로 널리 회자된다. '오감도'는 1934년 7월24일부터 8월8일까지 조선중앙일보에 연재되었다. 당시 신문사 사장은 여운형, 학예부장은 이태준이었다. 하지만 천하의 여운형과 이태준도 '오감도' 게재를 포기해야 했다. 독자들의 거친 항의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1992년 강의실까지 난입한 공권력이 연세대 마광수 교수를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긴급' 체포했다. 이상이 생존해 있어서 정치 검찰의 기이한 법집행 사실을 알았더라면, '인간 모두를 '아해'로 본 나의 통찰이 옳았다'며 깊은 장탄식을 토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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