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풍경

  • 이지은 CFA건축사사무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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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6-02 16:42  |  수정 2026-06-04 09:11  |  발행일 2026-06-03
이지은 CFA건축사사무소 대표

이지은 CFA건축사사무소 대표

금요일 오후. 일찍 업무를 마치고, 모처럼 생긴 여유를 어디에 쓸까 고민하다가 칠성시장으로 향했다. 새로운 카페나 유명한 식당 대신 오래된 시장을 찾은 것은 변화를 좇는 일상 속에서 잠시 느린 시간을 만나고 싶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시장은 생각보다 한산했다. 주말을 앞둔 금요일 오후였지만 골목은 여유로웠고, 상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하루를 이어가고 있었다. 좌판 위에는 계절의 색깔이 담긴 채소와 과일들이 놓여 있었고, 오래된 간판들은 저마다의 시간을 품은 채 거리를 지키고 있다.


시장을 걷다 보니 건축을 업으로 삼아온 탓인지 자꾸 공간의 모습과 그 공간의 이용자를 살피게 된다. 사람들은 흔히 재래시장의 쇠퇴를 온라인 쇼핑이나 대형마트의 등장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시장을 천천히 둘러보며 느낀 것은 조금 다른 문제다. 시장은 여전히 좋은 물건과 정겨운 풍경을 가지고 있지만, 젊은 세대가 머물고 싶은 공간으로 변화하는 데에는 다소 시간이 멈춰 있는 듯하다.


시장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기능만으로 사람을 끌어들이지 못한다. 머물고 싶고, 걷고 싶고, 다시 찾고 싶은 경험을 만들어야 한다. 오래된 시장의 가치는 보존하되, 젊은 세대가 자연스럽게 스며들 문화와 콘텐츠가 함께 자리할 수 있다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시장의 골목은 이미 충분히 매력적이다. 어쩌면 필요한 것은 새로운 건물을 짓는 일이 아니라 기존의 풍경을 더 많은 사람들과 연결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해가 기울 무렵 신천변으로 향했다. 마침 야시장이 열리고 있었다. 음악이 흐르고, 드문드문 자리한 사람들은 저마다의 저녁을 즐기고 있었다. 시원한 맥주 한 잔을 앞에 두고 공연을 바라보았다. 5월의 마지막 주 저녁 공기는 기분 좋게 선선했다. 이토록 좋은 공간과 시간인데도 생각보다 한산한 풍경 때문이었을까. 마음 한편이 괜스레 아려왔다.


그날의 칠성시장은 화려하지 않았다. 오히려 여백이 많은 풍경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 여백 속에는 도시가 지나온 시간과 사람들의 삶이 켜켜이 쌓여 있다. 시장은 단순한 상업 공간이 아니라 도시의 기억이 머무는 장소라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떤 공간은 새롭기 때문에 사랑받고, 어떤 공간은 오래되었기 때문에 소중하다. 칠성시장은 분명 후자에 가깝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동안에도 묵묵히 도시의 시간을 품고 있는 공간이다. 그래서인지 그날의 한산한 골목은 오래된 친구와 헤어진 뒤의 아쉬움처럼 마음 한편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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