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울기 전에, 잠깐 손을 봤다

  • 장순정 쿤스트하우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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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6-08 14:12  |  발행일 2026-06-09
장순정 쿤스트하우스 대표

장순정 쿤스트하우스 대표

블록이 무너지는 순간, 아이는 울지 않는다. 울기 전에 잠깐 손을 본다. 그리고 엄마 얼굴을 확인한다. 그다음에 운다. 어른들은 대개 울음이 터진 뒤에야 반응하지만, 감정을 어떻게 처리할지는 이미 한 박자 전에 결정되고 있다.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한 박자 안에 아이의 하루가 담겨 있다.


발달심리학자 폴 에크만은 슬픔, 분노, 공포, 기쁨 같은 기본 감정이 문화권을 넘어 동일한 얼굴 근육의 움직임으로 표현된다는 걸 밝혀냈다. 어느 나라 아이든 눈썹 안쪽을 끌어올리고 입꼬리를 내린다. 누가 가르친 것이 아니다. 몸이 먼저 알고 있는 것들이다. 그 앎은 언어보다 오래되었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몸의 문법을 조금씩 외워나간다. "그런 표정 짓지 마." "사내아이가 그런 걸로 울어." 체계적으로 가르친 것도 아닌데, 아이의 얼굴은 점점 평평해진다. 감정을 숨기는 법을 익힌 아이는 표정 근육을 덜 쓰게 되고, 덜 쓰는 근육은 굳는다. 내면은 소란한데 겉은 잠잠한 아이를 어른들은 종종 '의젓하다'고 부른다. 그게 칭찬인 줄 알고.


목소리도 비슷한 길을 간다. 목소리는 원래 감정의 온도계다. 신이 나면 높아지고, 무서우면 가늘어지고, 지루하면 늘어진다. 전화기 너머로 "괜찮아"라는 말을 들어도 목소리가 괜찮지 않으면 그냥 넘기지 못하는 것처럼, 말의 내용보다 목소리의 질감이 먼저 도착한다. 그런데 학교에 들어간 아이들의 목소리는 빠르게 표준화된다. 상황에 맞는 음량과 톤을 익히면서, 감정의 온도계는 어느 순간 서랍 속으로 들어간다. 그 서랍은 쉽게 다시 열리지 않는다.


손짓도 마찬가지다. 원하는 것을 향해 손을 뻗고, 싫은 걸 밀어내고,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그냥 손을 내민다. 그런데 어른들은 아이의 손짓을 자주 막는다. 밥상에서 손짓하지 마라, 사람 가리키지 마라, 발표할 때 손 내리고 말해라. 예의를 가르치는 일이지만, 그 과정에서 감정의 출구가 하나씩 닫힌다. 닫힌 줄도 모른 채.


예술이 여기서 뜻을 갖는다. 그림을 그리고, 점토를 주무르고, 몸을 움직이는 일들은 단순한 놀이가 아니다. 억눌려 있던 몸의 언어가 다시 흐를 수 있는 자리다. 예술치료 현장에서 말이 없던 아이가 북을 치다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은 낯설지 않다. 그 아이가 갑자기 슬퍼진 게 아니다. 이미 오래 슬펐는데, 몸이 비로소 허락을 받은 것이다. 북소리가 먼저 열어준 것이다.


어른들에게 필요한 건 아이가 무슨 말을 하는지보다 어떤 몸으로 말을 하는지를 읽는 감각이다. 식탁에서 유독 말이 없어지는 날, 방문을 조금 더 세게 닫는 날, 안아달라고 하지도 않으면서 그냥 옆에만 있는 날. 몸의 언어를 읽어주는 어른이 단 한 명만 있어도, 아이의 하루는 달라진다. 말하지 않는 아이는 없다. 읽히지 못한 아이가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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