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순정 쿤스트하우스 대표
어머니의 옷장을 열어놓고 한참을 서 있었다.
오래된 옷감 몇 벌, 그리고 화장대 한쪽에 놓인 립스틱 하나. 자식들이 사다 준 것이었다. 뚜껑을 열어보니 손을 댄 흔적이 거의 없었다. 아끼고 아끼다 결국 유통기한이 지나버린 것이다. 서랍 안에 차곡차곡 쌓인 새 양말들도 그대로였다. 당신 발에 신겨 있던 건 뒤꿈치가 다 닳은 낡은 양말이었다. 새것은 아까워서, 낡은 것은 아직 쓸 만하다며 그렇게 당신 몫은 언제나 나중이었다.
내가 아는 그 시절의 많은 어머니들이 그랬다. 시부모를 모시고 대식구 건사하며, 새벽이 밝기 전부터 부엌에 서 있었다. 도시락만 아홉 개를 싸던 손이었다. 식구들의 밥그릇이 비워지고 상이 파할 때쯤에야 당신의 숟가락을 들었다. 이미 입맛은 달아난 뒤였겠지만, 하루를 버티기 위해 몇 숟갈을 서둘러 삼켰을 것이다. 밥상 앞에서 당신은 늘 마지막이었다.
어릴 때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나이가 들고서야 그 무게가 가늠된다. 그 시절 어머니들에게는 부엌에 혼자 가만히 서 있는 기묘한 시간들이 있었다. 무언가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쉬는 것도 아닌 멈춤의 순간. 아무도 묻지 않았고, 어머니도 말하지 않았다. 좁은 부엌 창으로 햇살이 비껴 들어오던 아침, 그저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던 어머니의 뒷모습이 기억난다. 어린 눈에도 차마 말을 걸어선 안 될 것 같았다.
지금에야 어렴풋이 짐작해 본다. 잠깐만이라도 누군가의 어머니나 아내가 아닌, 오롯이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대부분의 자식들은 끝내 그 침묵의 이유를 묻지 못했다. 물었더라도 괜찮다고 했을 것이다. 그것이 그 시대 어머니들의 한결같은 정답이었으니까.
미술치료 현장에서 중년의 자녀들과 함께 어머니의 삶을 그림으로 마주하는 작업을 할 때가 있다. 처음엔 다들 붓을 든 채 멈춰 서지만, 이내 손이 먼저 움직인다. 누군가는 비좁은 부엌을 그리고, 누군가는 아무 말 없이 도화지를 까맣게 칠해 나간다. 한 참가자가 조용히 읊조렸다.
"엄마가 소리 내어 우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그림을 그리다 보니 제가 울고 있네요."
그날 밤, 집으로 돌아가 어머니의 서랍을 열었다고 했다. 쌓아둔 새 양말 한 켤레를 꺼내 소파에 계신 어머니 발에 가만히 신겨드렸을 때,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한참 동안 자기 발을 내려다보았다. 그러고는 화장대 서랍을 열어 유통기한이 지난 립스틱을 꺼내 손에 꼭 쥐고 있었다고 전해왔다. 버리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다시 돌려놓지도 못한 채로.
문득 나의 화장대를 바라본다. 내 화장대 서랍 안쪽에도 유통기한이 지난 립스틱이 하나 서 있다. 언제부터였을까. 나 역시 새것은 아껴두고 낡고 오래된 것만 먼저 쓰고 있었다.
어머니의 삶을 닮아버린 나는, 아직 그 립스틱을 버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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