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은 교실이 아니다

  • 이지은 CFA건축사사무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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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6-16 20:01  |  발행일 2026-06-17
이지은 CFA건축사사무소 대표

이지은 CFA건축사사무소 대표

학교를 떠올릴 때 우리 머릿속에 가장 먼저 스치는 풍경은 무엇일까.


대다수는 교실을 답하겠지만, 의외로 많은 이들의 기억은 다른 곳을 향한다. 친구와 소곤소곤 비밀을 나누던 복도 창가, 쉬는 시간마다 참새처럼 모여 있던 계단참, 먼발치로 운동장을 내려다보던 난간 앞 풍경 같은 곳들이다. 학창 시절의 짙은 추억은 책상과 칠판 앞보다는, 오히려 그 주변부의 틈새 공간에 더 많이 남아 있다.


최근 학교 환경개선공사에 참여하며 여러 교정을 마주할 기회가 있었다. 직업적 의무로 교실을 살피다가도, 이상하게 자꾸만 복도와 계단으로 눈길이 먼저 갔다. 종소리가 울리기 무섭게 아이들은 교실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누군가는 창가에 기대어 까르르 웃고, 누군가는 계단참에 걸터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며, 또 누군가는 복도 끝에서 운동장을 멍하니 바라본다. 학교생활의 가장 생기 넘치는 순간들은 대개 교실 문 밖에서 흐르고 있었다.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교실이 정형화된 배움의 공간이라면, 복도는 정 가득한 만남의 공간이다. 계단은 예기치 못한 마주침이 일어나는 정거장이고, 창가 벤치는 지친 마음을 잠시 고르는 쉼표다. 수업은 교실에서 이루어지지만, 관계는 그 사이 공간에서 싹튼다. 우리가 학교를 추억할 때 지식을 배운 장소보다 함께 숨 쉬고 장난치던 장소를 먼저 떠올리는 이유다.


반갑게도 요즘 학교는 이러한 변화를 유연하게 담아내는 중이다. 예전의 복도가 그저 빠르게 지나가야 하는 '효율적인 통로'였다면, 지금의 복도에는 곳곳에 아늑한 벤치가 놓이고, 작은 서가가 들어서며, 도란도란 모여 쉴 수 있는 쉼터가 생긴다. 넓어진 창가는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머무는 사랑방이 되었다. 스쳐가던 통로가 머무는 공간으로 진화하는 것이다.


건축에서는 이처럼 명확한 기능이 부여되지 않은 곳을 흔히 '사이 공간'이라고 부른다. 교실도 운동장도 아닌, 목적과 목적 사이에 존재하는 회색지대다. 흥미롭게도 사람의 온기와 기억은 종종 이 규칙 없는 빈 곳에 오래도록 머문다. 결국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건축물 자체보다, 그 공간이 품어준 시간과 감정의 여백이다.


학교는 단순히 지식을 주입하는 곳이 아니다.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배우며, 저마다의 속도로 성장하는 삶의 터전이다. 그렇기에 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은 교실이 아닐지도 모른다. 쉬는 시간의 청량한 웃음소리 받아내고, 우연한 인연이 시작되는 복도 한편. 어쩌면 그 조그만 여백이야말로 학교를 가장 학교답게 만드는 진짜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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