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새미 달서아트센터 공연기획자
나뭇잎 사이로 부서지는 햇살, 시원하게 밀려오는 파도,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마주하는 노을, 차가운 새벽 공기의 향기. 이런 찰나의 순간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기분은 한결 나아진다. 나는 이런 일상 속 기분 좋은 감각들을 공연이라는 매개로 엮어내고 싶었다. 단순히 앉아서 음악을 듣는 감상을 넘어, 관객이 오감을 통해 공연을 온전히 경험하길 바랐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공감각 클래식 콘서트 'Playlist : Untitled'다.
'Playlist : Untitled'는 일종의 감각 경험이다. 사계절이라는 테마에 조향과 미디어아트를 입혀 클래식 공연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하얀 시폰으로 둘러싸인 50석 규모의 블랙박스 무대. 조명이 꺼지고 음악이 흐르면 각 계절에 어울리는 은은한 향기가 코끝을 스친다. 프로그램은 당일 현장에서 공개된다. 무엇을 들을지 미리 알지 못한 채 관객은 그 순간 공간을 채우는 소리와 향기, 영상에만 몸을 맡긴다. 연주자와 관객이 호흡을 공유하는 이 작은 공간은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독점적인 시간을 선사한다.
관객들은 말한다. "입장 방식부터 다른 공연과는 완전히 달랐고, 낯선 무대 형태와 마주하는 순간부터 일상을 완전히 벗어나 특별한 세계에 들어온 기분이었다"고 말이다. 이처럼 공연은 첫 곡이 연주되는 순간이 아니라, 무대를 들어서는 찰나부터 시작된다. 공연을 마치고 돌아가는 관객들에게는 무대에서 사용된 향기를 담은 작은 향수를 건넨다. 시간이 지나 일상에서 그 향을 맡게 된다면, 그날의 기억이 다시금 선명하게 떠오를 것이다. 향기는 단순히 굿즈가 아니라, 관객이 현장에서 얻은 특별한 경험을 일상으로 가져가 오래도록 간직하게 만드는 기억의 매개체다.
이 낯선 시도는 스타 마케팅 없이 3년 연속 전 회차 '초 단위 매진'이라는 기록을 만들었다. 관객들이 이 공연을 계속해서 찾는 이유는 명확하다. 화려한 출연진의 이름값에 의존하는 관행을 깨고, 오로지 콘텐츠 자체의 매력만으로 관객들을 설득했기 때문이다. 지역의 예술인과 창작진, 그리고 우리의 기획이 빚어낸 이 무대가 충분히 시장에서 사랑받을 수 있음을, 그리고 우리가 직접 만든 콘텐츠만으로도 확실한 흥행을 이끌어낼 수 있음을 증명했다는 점은 큰 의미가 있다. 이것이 곧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지속 가능한 공연 기획의 경쟁력이라 확신한다.
나는 늘 공연 그 이상의 가치를 고민한다. 거창한 무대 장치보다 관객에게 이전에는 없던 신선한 경험을 선물하는 것. 일상의 틈이 필요할 때 다시 찾고 싶은, 독창적인 콘텐츠를 계속해서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내가 이 일을 멈추지 않는 이유이자, 내가 공연을 통해 관객과 대면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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