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경의 공간의 문장] 도시의 속도…유비러너스(Ubi-runners) 시대

  • 성모경 건축사
  • |
  • 입력 2026-06-19 12:49  |  발행일 2026-06-19
도시의 보행로를 동적인 공간으로 만드는 러너들. 각자의 속도로, 각자의 움직임으로 도시 속을 뛰고 있다. 그들의 러닝으로 도시의 밤과 낮이 더욱 활기차지고 있다. <이미지(성모경)=생성형 AI>

도시의 보행로를 동적인 공간으로 만드는 러너들. 각자의 속도로, 각자의 움직임으로 도시 속을 뛰고 있다. 그들의 러닝으로 도시의 밤과 낮이 더욱 활기차지고 있다. <이미지(성모경)=생성형 AI>

대구뿐만 아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풍경은 역시 뛰고 있는 사람들이다. '러너의 시대'라 해도 좋을 만큼 모두 각자의 모습과 각자의 이유로 뛰고 있다. 러닝이 요즘의 가장 '핫'한 콘텐츠라는 것은 그들의 모습으로도 금방 알아챌 수 있다. 몸을 최대한 가볍게 하기 위해 입지 않은 듯 무게를 줄인 운동복, 신기만 하면 한 걸음에 하늘도 날 수 있다는 날렵하고 화려한 러닝 전용 운동화, 손목에는 러너 전용 스마트 워치에, 무릎에는 유명한 국가대표 선수가 광고모델인 무릎 보호 벨트까지 그야말로 풀착장의 포스를 자랑하는 러너들이 넘친다.


물론 이렇게 모든 것을 완벽하게 갖춘 러너뿐만이 아니다. 각자의 속도로, 각자의 차림새로 각자의 스타일로 팔과 다리를 저마다의 방식대로 흔들며 모두 뛰고 있다. 아직 해가 뜨기 전 신천 강변에도, 사위가 어둑어둑한 대로변에도 사람들은 각자의 러닝을 즐기고 있다. 이어폰을 꽂고 아파트 단지를 반복해 도는 러너들도 쉽게 눈에 띈다. 퇴근 후 형광빛 러닝화를 신고 도심을 가로지르는 직장인들까지. 하루 종일 사람들은 도시 속에서 뛰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일부 운동 마니아의 취미처럼 보였던 러닝은 이제 도시의 일상이 됐다. 오래전 어디에나 컴퓨터가 존재하게 될 미래를 '유비쿼터스(Ubi-quitous)'라 불렀듯이 이제는 어디에서나 뛰는 사람들을 만나는 '유비러너스(Ubi-runners)'의 시대가 된 듯하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일상생활의 변화가 단순한 운동 유행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도시의 풍경 자체가 바뀌고 있다. 러닝크루를 위한 카페가 생기고, 강변 산책로에는 새벽부터 사람들이 모인다. 스마트워치는 심박수를 기록하고, 사람들은 달린 거리와 시간을 공유하며 서로의 러닝을 응원한다. 도시 속 공원과 수변 공간은 더 이상 단순한 도시 경관 녹지가 아니라 '움직이는 생활공간'이 돼가고 있다.


김훈 작가의 수필집 자전거여행 표지. 이강빈 사진·생각의나무 출판. <교보문고 제공>

김훈 작가의 수필집 '자전거여행' 표지. 이강빈 사진·생각의나무 출판. <교보문고 제공>

도시 속 사람들의 속도를 높이고 있는 것은 러너들뿐만이 아니다. 차로 옆 보행로 위에서는 사람들의 또 다른 움직임의 변화도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전동킥보드와 전기자전거 같은 퍼스널 모빌리티 또한 보행로 위 생활의 속도를 높이고 있다. 퍼스널 모빌리티는 목적지까지 더 빠르게, 더 효율적으로 이동하기 위한 기술들이다. 사람들은 이 기술들을 통해 이동의 시간을 줄이고, 경로를 최적화하며, 가능한 한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려 한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바로 이런 Short-Cut의 시대(시간 단축의 시대)에 사람들은 다시 스스로 뛰기 시작했다. 물론 이렇게 몸의 속도를 높이는 궁극적인 목적은 '건강'일 수 있다. 하지만 가장 빠른 이동을 꿈꾸는 시대에 사람들이 가장 원초적인 움직임의 방식을 선택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즐거운 구경거리이다.


왜일까. 김훈 작가는 '자전거여행'이라는 유명한 수필집에서 "자전거를 타고 저어갈 때, 세상의 길들은 몸 속으로 흘러들어온다. 자전거를 저어갈 때 2만5천분의1 지도 위에 머리카락처럼 표기된 지방도, 우마차로, 소로, 임도, 등산로들은 몸 속으로 흘러들어오고 몸 밖으로 흘러나간다. 흘러오고 흘러가는 길 위에서 몸은 한없이 열리고 열린 몸이 다시 몸을 이끌고 나아간다. 구르는 바퀴 위에서 몸은 낡은 시간의 몸이 아니고 생사가 명멸하는 현재의 몸이다"라는 너무도 유명한 프롤로그를 남겼다.


아마도 도시의 러너들은 김훈 작가가 자전거 페달 위에서 느끼는 감각을 발로 느끼며 뛰고 있는지도 모른다. 러닝이라는 운동은 단순한 몸의 이동이 아니라 도시를 몸으로 경험하는 방식이다. 자동차 안에서는 잘 보이지 않던 것들이 뛰기 시작하면 새로운 장면으로 눈에 들어온다. 어느 길에 나무 그늘이 많은지, 어디의 보도가 미세하게 기울어져 있는지, 어떤 공원이 밤에도 안전하게 느껴지는지 등 건강해지는 몸이 도시를 기억하게 된다. 러너는 도시의 바람과 습도, 경사와 냄새, 조명의 밝기와 포장 재질까지 모두 몸을 통해 감각적으로 느낀다.


신천변을 함께 달리는 러닝 크루들은 같은 속도로 뛰며, 도시가 단순히 소비되는 공간이 아니라 함께 공유하는 공간임을 느낀다. <이미지(성모경)=생성형 AI>

신천변을 함께 달리는 러닝 크루들은 같은 속도로 뛰며, 도시가 단순히 소비되는 공간이 아니라 함께 공유하는 공간임을 느낀다. <이미지(성모경)=생성형 AI>

걷는 이들에게 멈춰진 장면으로, 사진처럼 눈으로 기억되는 풍경이 뛰는 사람들에게는 움직이는 화면으로 영화처럼 몸을 스쳐가며 마음속에 남겨진다. 걷는 도시와 뛰는 도시는 다르다. 걷는 사람이 도시를 천천히 읽는다면, 러너는 도시의 리듬을 몸으로 통과한다. 일정한 호흡으로 수킬로미터를 이동하는 동안 도시의 연결과 단절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잘 조성된 신천의 수변 산책로는 자연스럽게 속도를 유지하게 하지만, 도시 보행로를 뛰는 경우 갑자기 끊긴 보행 동선과 자동차 중심의 교차로는 몸의 흐름을 깨뜨린다. 러너에게 좋은 도시는 결국 몸의 움직임이 끊기지 않는 도시다.


이런 관점에서 러너를 관찰해 보면 러닝 붐은 단순한 스포츠 문화가 아니라 도시에 대한 새로운 요구처럼 보이기도 한다. 더 많은 그늘, 더 안전한 야간 조명, 더 긴 보행 네트워크, 자동차보다 사람의 속도를 우선하는 거리들 말이다. 결국 좋은 러닝 도시는 좋은 보행 도시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대구 역시 그런 변화를 조금씩 보여주고 있다. 여름날 새벽과 밤 시간대의 신천변은 낮의 폭염을 피해 나온 러너들로 하나의 긴 러닝 트랙처럼 변한다. 이어폰을 낀 사람들, 천천히 속도를 맞추는 러닝크루, 벤치에서 숨을 고르는 시민들이 강변 풍경 속에 자연스럽게 섞인다. 과거 도시의 밤이 단지 소비와 유흥의 시간이었다면, 이제는 건강과 움직임의 시간으로도 바뀌고 있는 셈이다.


대구 신천 경관. 좋은 도시란 몸이 계속 움직이고 싶어지는 도시이며, 어디서든 누군가가 뛰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도시가 아직 인간의 속도를 완전히 잃지 않았다는 작고도 반가운 증거다. <윤동규 건축사진작가 제공>

대구 신천 경관. 좋은 도시란 몸이 계속 움직이고 싶어지는 도시이며, 어디서든 누군가가 뛰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도시가 아직 인간의 속도를 완전히 잃지 않았다는 작고도 반가운 증거다. <윤동규 건축사진작가 제공>

흥미로운 것은 러닝이 결국 도시의 공공성을 다시 확장시킨다는 점이다. 집은 점점 작아지고 개인의 생활은 더 고립돼가지만, 사람들은 다시 집 밖으로 나와 함께 달린다. 공원과 광장, 수변 공간과 산책로는 단순한 기반시설을 넘어 시민의 '공용 거실'이 된다. 서로 이름을 모르더라도 같은 속도로 뛰는 사람들 사이에는 익명 속 묘한 연대감이 생긴다. 도시가 단지 소비되는 공간이 아니라 함께 움직이는 공간이 되는 순간이다.


건강할 뿐 아니라 친밀하고 정서적이다. 그래서 앞으로의 도시를 생각할 때 우리는 단지 얼마나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가만을 고민해서는 안 될지도 모른다. 오히려 얼마나 오래 걷고, 뛰고, 머무를 수 있는가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자동차의 속도만을 기준으로 설계된 도시는 결국 사람의 몸을 잊어버린 도시가 되기 쉽기 때문이다.


오늘 새벽에도 신천을 걸으며 일정한 호흡으로 어둠을 가르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만났다. 서로 이름도 모르고, 어디에서 왔는지도 모르지만 같은 도시를 같은 속도로 달리고 있다. 그들의 발걸음은 오늘도 도시의 그늘을 찾고, 강변을 따라 이어지고, 공원을 지나 다시 집으로 향한다. 좋은 도시란 어쩌면 목적지에 가장 빨리 도착하는 도시가 아니라, 그렇게 몸이 계속 움직이고 싶어지는 도시인지도 모른다. 어디서든 누군가는 뛰고 있다는 사실은, 아직 우리의 도시가 인간의 속도를 완전히 잃지 않았다는 작고도 반가운 증거처럼 느껴진다.


건축은 결국 건물을 짓는 일이 아니라, 사람들이 도시를 조금 더 잘 살아갈 수 있는 장면을 만드는 일이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생활/문화인기뉴스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
국가보훈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