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진 전 대구대 총장
찬 바람이 불고 가을 색이 완연하다. 유난히 무덥던 긴 여름이 지났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여름의 맹렬한 기세도 계절이 순환하는 섭리를 거스르지 못하는 것에 새삼 감탄한다. 주말 아침에 모처럼 가을 분위기를 느껴보고파 가을옷을 차려입고 길을 나섰다. 문득 보니 단풍이 예전 같지 않다. 지난주에 난데없는 추위가 몰려왔다. 갑자기 뚝 떨어진 기온에 한파특보가 발효되었다. 길거리에는 두툼한 옷을 입고 바쁘게 종종걸음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낯설지 않다. 주말에 비가 내려 가을 분위기가 묘하다.
올해는 태풍이 오지 않아 한편으로는 다행이라 생각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전에 없던 일이라 은근히 걱정도 된다. 돌이켜보면 지난여름은 집중호우가 유난히 잦았고 피해도 컸다. 아열대 지역의 스콜 같은 호우가 우리나라에도 이제 빈번하다. 여름은 물론이고 가을에도 큰 피해를 준다. 10월도 중순을 넘긴 때에 뒤늦은 폭우로 도시마다 난리가 났다. 낙엽이 배수를 어렵게 만들어 피해를 키웠다. 최근 몇 년 사이 겨울에도 얼음이 좀처럼 꽁꽁 얼지 않는다. 우리 지역에서는 4월에 큰 눈이 오곤 했더랬다.
이번 가을도 오는 듯하다 금방 지나갈 것 같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하다는 말이 무색하다. 여름과 겨울은 길고 봄과 가을은 짧다. 가을옷을 몇 번 입지 않았는데 연달아 두툼한 겨울 외투를 꺼내 입는다. 이상기후다. 자연 재난이 부쩍 자주 일어나고 피해도 상상 이상이다. 빙하가 녹아 종전에 없던 대형 홍수가 발생한다. 지구환경이 크게 변하였다. 온난화가 급속도로 진행하는 일은 이제 돌이킬 수 없다. 부쩍 잦아진 대규모 지진 소식도 무섭다. 오래전부터 연구자들과 환경 단체들이 경고한 위험이 현실이 되었다.
자연 재난 앞에 인간은 작은 존재이다. 지난여름 미국과 유럽의 대도시에 온통 물난리가 났다. 남미와 아시아 지역은 지진과 홍수가 부쩍 잦아졌다. 지구 곳곳에서 산불이 연례행사처럼 발생한다. 국가들은 저마다 예방과 예보 시스템을 갖추고 나름대로 재난 대응 체계가 작동한다. 그럼에도 거대한 규모로 발생하는 무차별적 피해는 그 비참함이 할 말을 잊게 만든다. 자연재해는 무작위적으로 일어나지만 모든 국가와 인류가 같은 피해를 보는 것은 아니다. 극단적인 피해는 개발도상국과 저개발 국가에서 두드러진다.
대형 재난과 재해는 특정 국가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모두 함께 풀어갈 문제이다. 국제 공조가 꼭 필요한 인류 공동의 과제다. 개별 시민과 시민 사회의 노력이 꾸준히 지속되어 온 반면 국제 사회의 노력은 일관성 있게 전진하지 못했다. 국가 간 협력은 각국의 복잡한 이해관계와 맞물려 기대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지구환경을 앞서 훼손했던 역사를 가진 서구 선진국들이 환경을 강조해 왔는데 그에 맞는 책임을 제대로 이행했는지는 의문이다. 일부 국가는 노골적으로 책임을 회피하고 국제 공조를 외면한다.
계절의 순환과 환경의 변화가 심상치 않다. 환경위기는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지구는 하나의 생태계다. 지구 저편의 일도 나 몰라라 할 수 없다. 전 지구적 환경위기는 시민들의 작은 실천과 한 사회의 공론만으로는 대응에 한계가 있다. 국가가 저마다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서 합당한 책무를 다해야 한다. 우리도 국제 공조와 공동 노력에 적극 힘을 보태자. 우리 후손들이 깨끗한 지구에서 멋진 가을을 만날 수 있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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