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시론] 친구에게 전하고 싶은 말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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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10-27 11:06  |  수정 2026-10-27 21:39  |  발행일 2026-10-28
김수영 콘텐츠&사회공헌에디터

김수영 콘텐츠&사회공헌에디터

화가 친구가 있다. 대구를 중심으로 활발히 활동하던 그 친구가 올해 초부터 몇 달간 연락이 뚝 끊겼다가 최근 다시 나타났다. 그전에도 간혹 그랬던 적이 있던 터라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얼마 전 한 갤러리 대표로부터 그 친구 이야기를 들었다. 작품 만들 재료비와 작업실 월세를 마련하기 위해 6개월간 식당일을 했다는 것이었다. 전업작가인 친구가 예술 관련 아르바이트를 하는 줄은 알았지만, 식당일을 했다는 건 처음 들었다. 10여 년간 유학까지 한 친구가 작업을 위해 식당일 한다는 것에 적잖게 놀랐다.


가족을 부양하고 창작 활동을 이어가기 위해 대리운전, 식당일 등의 '투잡, 스리잡'을 하는 예술가들이 허다하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것이 내 친구의 삶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의 체감은 전혀 달랐다. 실제로 문화체육관광부의 '예술인 실태조사(2025년)'에 따르면 대한민국 예술인의 연평균 예술 활동 소득은 겨우 1천55만 원, 월평균으로 환산하면 88만 원 수준에 불과하다. 전체 예술인 10명 중 7명이 넘는 이들이 연 소득 1천200만 원 미만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 생계를 꾸려간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미술시장에 불어닥친 한파는 작업실에서 붓 하나로 연명하는 이들의 삶을 더욱 피폐하게 만들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수천억 원의 거대 자본이 오가며 세간의 이목이 쏠렸던 미술시장도 경기 침체 여파를 비켜 가진 못했다. 2022년 역대 최대 규모인 1조 원의 벽을 넘으며 정점을 찍었던 국내외 미술시장은 현재 침체에 빠졌다. 예술경영지원센터 등의 통계에 따르면 전체 거래 규모는 곤두박질쳤고, 국내 갤러리의 절반 가까이가 전년보다 매출이 줄었다고 호소한다. 그나마 움직이는 곳은 자본력을 갖춘 대형 경매사와 메가 컬렉터 중심의 하이엔드 시장뿐이다. 화랑 등 중소형 유통채널과 대다수 작가는 그야말로 벼랑 끝에 섰다.


지독한 생계의 고통은 예술가들의 숙명일까. 예술가의 경제적 어려움은 비단 오늘날만의 현상은 아니다. 인류 역사에 위대한 유산을 남긴 거장들의 삶은 아이러니하게도 지독한 궁핍과 고통으로 얼룩져 있다. '음악의 신동'이라 불린 모차르트는 빚더미 속에서 35세의 나이로 요절해 빈민들의 집단 매장지에 표식도 없이 묻혔다. 현대 추리·공포 소설의 시조인 에드거 앨런 포는 불후의 명시 '까마귀'를 쓰고도 고작 9달러를 손에 쥐었으며, 아내는 난방비가 없어 침대에 고양이를 올려 체온을 유지해야 했다.


문득 이런 고통 속에서 예술가들이 창작활동을 저버리지 않은 이유가 궁금해진다.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의 저서 '영혼의 미술관'이 그 물음에 답을 준다. 예술은 실로 우리 삶에 놀라운 심리적 기능들을 수행한다. 가혹하고 우울한 현실 속에서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시각을 통해 개인의 슬픔을 위로하고 치유한다. 나아가 내일에 대한 희망을 심어준다.


생활고 속에서도 예술가들이 묵묵히 캔버스를 채우고 악기를 켜는 이유는 명백하다. 그들이 남긴 숭고한 흔적들이 방황하는 누군가의 영혼을 구원하고, 더 나은 삶으로 이끄는 강력한 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예술은 감상자는 물론, 그것을 창작하는 예술가 스스로의 영혼을 보듬는 가장 강력한 위안이자 희망이다. 그렇기에, 오늘도 홀로 묵묵히 작업실을 지키고 있을 친구에게 말하고 싶다. "예술가는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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