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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에서 서울로 가는 경부선의 첫 간이역인 지천역. 짙은 먹구름 아래로 그리움도 짙게 깔렸다. |
하늘에 가 닿는다는 건가? 머리를 감다 생각한다. 지천, "뭐가 지천으로 많다는 말 아닌가?" 지천역 가는 길, 몇 번이나 들어선 길을 되돌아 나오며 벗이 말한다. "하늘과 땅이라는 뜻일까?" "아니다. '천'은 아마 하천을 의미할거야. '지'는 나뭇가지고." 금호강변을 달리다 가지 길로 들어서며 말한다. 길 입구에 선 역전식당 광고판이 역을 대신해 이정표가 되어준다. 강에서 뻗은 나뭇가지 같은 길 저 안쪽 끝에 잎새로 매달려있다, 겨울바람에 흔들리며 지천역은.
갈잎이 지천으로 깔렸다 / 그리움이 지천으로 깔렸다 / 오 사무치는 지천의 절정 / 푸른 잎 푸른 청춘이 / 대나무 순처럼 자랐다 / 지천으로 깔렸다 이제는 / 가랑잎 슬픔이 지천으로 내렸다 / 아직은 사랑을 사랑이라 부르지 마라.
"사람들 생각은 다 비슷한가봐." 역사 앞에 선 검은 화강석에 박해수 시인의 글이 새겨져 있다. 경부선 철도 개통 100주년과 현대시 도입 100주년을 맞아 2005년에 세운 시비다. 대구 고모역에서부터 군위 화본역까지 지금껏 10개의 시비가 세워졌다. 추모시, 추모비 같다는 생각이 마음에 난망이다.
지천역은 대구에서 서울로 가는 경부선 첫 번째 간이역이다. 남쪽에서 만나는 간이역은 고모역, 동쪽은 동촌역, 그리고 지천역은 북쪽이다. 1921년 무배치 간이역으로 처음 시작됐지만 지금의 역사는 1941년에 지어져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대구역과의 거리는 약 10㎞. 서울과의 거리는 313.3㎞. 동대구에서 출발한 고속열차는 대구역을 통과, 지천역을 지나면서 기존 선로에서 신선로로 옮겨 타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지천역은 대구나 부산에서 출발한 고속열차가 '고속'으로 달리기 시작하는 출발점이 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서울에서 시작한 기차여행이 지천역에서부터 제대로 시작된다고도 말한다.
문잠긴 건물 앞에는 철길에 가지런히 놓여 있어야 할 시멘트 덩어리가 갈 방향 없이 뒹굴어져 있다. 관계자 외 출입 금지라 엄중히 경고하고 있는 옆문을 통해 거꾸로 들어간 맞이방에는 텅 빈 열차 시간표 위에 '2004. 7.15 여객취급중지' 문구가 쓰여 있고, 가지런한 의자 앞에는 겨울을 나는 화초들이 막고 섰다.
"기차 타는 사람도 없는데, 문도 잠가 놓는데 역은 왜 있노?" 역 주변을 어슬렁대던 사십대 초반의 남녀, 맞이방의 잠긴 문을 무람없이 흔들며 묻는 여자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린다. 남자는 대답을 하지 못한다. 흥, 더 이상 관심 없다는 듯 팔짱을 끼고 맞은편 식당으로 들어간다. 지천역은 역보다 보양식을 전문으로 하는 역전 식당들이 더 유명하다. 그래서 대낮에도 식당들과 역 사이 작은 광장에는 이방인들의 차가 적잖게 들락거린다. "그러게. 역이 왜 있지?" "응, 여객화물취급은 안 해도 기찻길도 보수해야 하고, 교행하기도 하고, 특히 여기는 경부고속선이 분기하니까 중요한 곳이고." "그렇네. 있어야 하네. 꼭. 오직 다른 것들을 위해서 있는 거네." 빵~~빠앙~~ 쌩 하니 기차 지나간다. 천지가 흔들린다.
"나오세요! 나와요! 플랫폼에는 가면 안돼요. 큰일 납니다. 얼마나 빨리 지나가는지 아세요? 빨려들어 갑니다. 피할 수도 없어요. 큰일나요." 어디에서 주시하고 있었던지 역무원이 달려 나와 고함친다. 흔들리던 천지의 여진 속에 고함소리 묻혀버린다. 빵~~빠앙~~, 안녕, 반가워, 안녕 잘 있어. 안녕. 그것이 아니었다. 빵~~빠앙~~, 비켜! 그것이었다.
시는 다음 연으로 이어진다.
격정을 이기고 눈물을 이기고 / 분분 날리는 가랑잎처럼 / 네 영혼과 슬픈 사연이 남았다 / 헤어지자 손 흔들던 옛 그리움은 숨고 / 통학기차는 눈이 어두웠다 / 가을비가 지천으로 날렸다 / 말없이 울고 내리는 사랑길 / 지천역에서 이대로 외로운 / 갈잎이 되어 눈물 여미고 간다.
"이제 가랑잎 날리고 가을비 내릴 때면 이 시 생각나겠다." "이 간이역에 대한 추억은 바로 오늘이네." 시와, 우리와, 우리의 이야기들과, 여기서 보았던 모든 것들, 느꼈던 모든 것들. 그리고, 기차가 사라진 뒤 오래도록 남는 고요와, 내 벗의 뒷모습과, 그곳에 흐르고 있는 강과.
#찾/아/가/는/ 길/
왜관 방면 0번(일반)이나 250번(좌석) 버스가 있다. 대구 시내를 빠져나오면 한적한 4차로 도로로 진입하고 10분 정도 가다 용산리 마을 입구에서 내리면 지천역 팻말이 보인다. 그것을 따라 조금 걸어가다 보면 우측에 전기제어분소와 경부선이 보인다. 마을의 끝에, 금호강 강바람 지천인 곳에 역이 있다. 칠곡군 지천면 용산리 149번지
#연재를 마치며… 사라져가는 것은 그곳을 기억하는 일이었다
시인 박해수는 간이역 시인으로 불린다. 전국의 간이역들을 찾아다니며 시를 썼다. 세상에는 간이역 이야기를 나누는 동호회들도 있고, 간이역에 미쳐 유랑을 하고, 기록하는 이들도 있다. 참으로, 지천으로 많았다.
"그런데 말이야, 왜 간이역을 찾아다닐까? 사라지는 것들을 찾고, 또 그리워하고, 기억하려는 거 말이야. 간이역의 이야기는, 어쩌면 윤리의 이야기일지도 몰라. 사라져가는 것들은, 사회의 약자잖아. 우리의 연민은, 우리도 또한 그런 존재이기 때문이 아닐까…"
간이역 지붕 위 하늘은 죄다 컸다. 하늘이 큰 곳에는 오히려 사람이 드물었다. 커다랗고 커다란 지붕 위 하늘은 되려 작았다. 하늘이 작은 곳에서는 오히려 사람이 많았다. 그 사람들 속에서 가끔 하늘을 그리워했다. 그 사이 내 곁의 사람이 사라지기도 했고 내 뒤의 모르는 이가 또한 모르는 새 사라지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새로운 이가 나타나기도 했다. 사라짐과 나타남의 반복 속에서 우리가 잊은 것은 무엇일까. 간이역은 사라져가는 것이 아니다. 사라져가는 것은 그것이 왜 그곳에 서 있는지를 잊어가는 것이었다. 사라져가는 것은 그곳을 기억하는 일이었다. 하늘이 작은 곳에 사는 우리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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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천역과 신동역 사이에서 경부고속선이 나눠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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