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흐르는 시내버스

  • 입력 2009-08-26 07:31  |  수정 2009-08-26 07:31  |  발행일 2009-08-26 제9면
706번 기사 이승진씨 승객위해 낭송…낭만 가득
詩가 흐르는 시내버스
'시 읽어주는 기사' 이승진씨가 승객들을 위해 시를 낭송하고 있다.

"교통체증이 심한 구간에서는 승객들에게 좋은 글을 읽어드려요."

대구시 북구 칠곡3지구에서 달서구 대곡까지 운행하는 706번 시내버스를 운전하는 이승진 기사(41). 헤드셋 마이크가 곧잘 어울리는 이씨는 승객들 사이에 '詩 읽어주는 기사'로 통한다. 이씨가 운전하는 시내버스를 타면 음악다방 DJ 버전으로 좋은 글을 낭송하는 이씨의 목소리를 곧잘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해인 수녀의 시 '어머니께 드리는 노래', 최영미 시인의 '선운사에서' 등 레퍼토리도 다양하다. 인터넷에서 퍼온 글을 한 번씩 들려주기도 한다. 게다가 낭송이 끝난 뒤 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위트있게 덧붙이는 센스도 보여준다.

시내버스 운전 경력 20년차의 베테랑인 이씨는 "1996년 승객들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헤드셋 마이크를 쓰기 시작하면서 언제부턴가 자연스럽게 시를 낭송하게 됐다"면서 "감명 깊게 읽은 구절을 승객들과 함께 나누고 싶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씨가 시를 읽어주는 때는 주로 차량 운행 도중 도로에서 2~3분 지체하는 상습 정체구간. 이밖에도 젊은 층이 버스를 많이 타는 경북대 북문이나 중앙로 근처에 정차할 때는 젊은이 취향의 짧은 글을 주로 읽어주고, 출퇴근시간대에는 386세대에 향수를 불러일으킬 만한 시를 주로 낭송한다. 최근에는 인간의 참된 마음가짐에 대해 성찰한 '채근담'에 나오는 글을 자주 인용하고 있다.

이씨의 남다른 서비스는 승객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706번 시내버스를 자주 이용하는 이영자씨(여·47·북구 동호동)는 "시낭송이 처음에는 어색하게 느껴졌는데, 들으면 들을수록 중독성이 있다"며 "뜻밖의 좋은 구절을 통해 잠시 마음의 여유를 갖기도 한다"고 말했다.

2007년에는 시내버스 모니터 요원들에게서 '친절기사'로 선정돼 지역 라디오 프로그램에 소개됐으며, 지난해 말에는 대구의 대중교통문화 발전에 기여한 사람에게 주는 제1회 대구교통문화상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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