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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지것 제주사람!
'갈치, 고등어, 옥돔, 오분자기….'
제주도 음식의 범주가 거기에 갇혀 있는 줄 아는 이가 많다. 물론 아니다. 현재 제주도 식당가에서 제주도 토속음식을 찾기가 매우 어렵다. '새끼 전복'인 오분자기의 경우 제주도산은 품귀현상을 보여 육지에서 공수돼 온다. 그래서 지금 한때 육지 관광객한테 가장 인기가 좋았던 제주도산 오분자기탕은 점점 맛보기 힘들어졌다. 제주도 음식 흉내만 낼 뿐 실제 그 식재료를 구하기는 갈수록 어렵다. 육지에서 실시간으로 냉동 식재료 등이 들어오니 섬음식과 육지음식의 경계선도 갈수록 모호하다. 이런 문제인식을 했는지 최근 제주도가 제주향토음식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조례 만들기에 착수했다. (사)지역희망디자인센터는 제주도 전통·향토음식을 체험할 수 있게 생태문화학교 성격의 '한라산학교'를 지원하고 있다.
제주도 사람끼리 육지 관광객을 비아냥거리는 은어가 있다.
바로 '육지것 제주사람'이다. 제주도 현지인만이 사람이고, 육지 사람은 '것들'쯤으로 폄훼한 것이다. 모르긴해도 그것은 제주도가 조선 때는 유배의 섬, 광복 직후에는 1948년 4·3사건으로 제주도민 10명 중 1명이 학살당한 것에 대한 일종의 반발심일 수도 있다. 제주도 땅은 참 척박하다. 현무암 투성이라 물이 잘 고이지도 않고 그래서 벼농사를 거의 지을 수 없다. 밭벼가 고작이다. 척박한 데서 연명하려면 그들 말로 '수눌음(협동심)'이 절실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여성들의 억척스러움도 거기서 생겨났다.
제주도는 한때 전라남도 부속도서였다. 카페리가 등장하기 전인 1970년대만 해도 제주도는 울릉도와 함께 육지의 입김이 거의 틈입하지 않아 제주도만의 고유 전통음식이 살아 있었다. 겨울에도 좀처럼 영하로 내려가지 않고 사계절 제철음식이 풍성하니, 동절기를 대비한 염장음식도 필요치 않았다. 김장이란 개념도 아예 없었다.
제주도 고유음식 거의 실종
관광객 대상의 육지음식판
◇ 제주도 전통음식의 본질
제주도만의 전통음식을 학술적으로 정리한 사람은 제주도향토음식보존연구원장인 김지순씨다. '제주도의 황혜성'으로 불리는 김씨는 98년 '제주도 음식(대원사 간)'이란 연구서를 통해 제주도의 88가지 제철음식을 소개했다.
가장 제주도다운 밥상은 '낭푼밥상'. 제주도에선 육지와 달리 밥을 가족수대로 뜨지 않는다. 낭푼이라고 부르는 3~4인분용 놋그릇 하나에 여러사람 먹을 밥을 한 곳에 퍼넣어 함께 먹었다. 꼭 전주 비빔밥의 예전 형태인 '골동반'을 연상시킨다. 제주에서는 쌀밥을 두고 곱다고 해서 '곤밥'이라 부른다. 쌀이 귀해 '쌀계'까지 들 정도였다니. 제주도는 여러 식재료를 섞어 요리하지 않고 심플하게 간다. 젓갈의 경우 멜젓(멸치젓), 구살젓(성게젓), 게웃젓(전복 내장 젓) 등이 인기였다.
여름철 가장 눈길을 끄는 음식은 '보리쉰다리'.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발효식품이다. 쉰보리밥을 버리지 않고 누룩을 넣어 발효시킨 것이다. 김씨는 이게 전주 모주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했다. 또한 보릿가루나 밀가루에 술로 발효한 꼭 개떡 비슷환 '보리상외떡'도 제주만의 정서가 숨어있다.
제주도는 중국처럼 쇠고기보다 돼지고기(똥돼지)가 대중적이다. 다른 지방 육개장은 일반적으로 쇠고기 양지머리나 사태 부위와 굵은 파와 무를 주재료로 하는데 제주도 육개장은 돼지고기와 고사리가 주재료라는 게 차이점이다. 한국 육개장의 출발점인 대구에선 고사리가 들어가지 않는데, 이게 서울로 올라가서 강남고속터미널과 서울역전 식당가에서 계란푼 텁텁한 퓨전 육개장의 단초를 준 것으로 보인다. 제주도 육개장은 일명 '돼지고기고사리국'으로 비지장처럼 뻑뻑하다.
제주음식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고춧가루를 과도하게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추장도 귀한 나머지 돼지고기를 먹을 때 간장, 물, 식초, 파, 마늘, 깨소금을 섞고 고춧가루를 약간 뿌린다. 하절기 잡히는 작은 자리를 '쉬자리'라 하는데 바닷물에 씻어 통째로 먹는다. 이때 고추장 대신 토장에 식초를 넣어 찍어먹기도 한다. 날된장을 물에 풀어 즉석에서 냉국을 잘해 먹는다. 그렇게 해서 제주도 명물 자리물회가 등장했다. 육지 물회에서는 고추장 등이 많이 들어가지만 제주도에서는 식초와 토장이 들어가는 게 특징이다. 국에 배추 등을 넣을 때도 칼질을 하지 않고 손으로 툭툭 잘라 넣는다.
잔칫날에만 등장했던 '몸국'
일부 식당에선 너무 변형돼
◇ 몸국을 찾아서
제주시 노형동 김씨의 요리학원을 찾았다. 김씨가 몸국을 요리해보였다. 참 간단했다. 꼭 김치밥국 같았다.
제주도 사람들은 육지 사람들이 몸국에 대해 알면 특별대우를 해준다. 그만큼 역사성을 가진 음식이다. 몸이란 해초의 일종인 '모자반'을 일컫는 제주 방언으로 매년 2~5월에 수확한다. 영남지방에서는 모자반을 '몰'이라 부른다. 육지의 경우 미역에 쇠고기가 들어간 미역국에 비견된다. 육지 미역국과 제주 보말성게국은 잘 매칭된다. 보말은 바닷고둥이다. 다른말로는 '고매기'.
전라도에서는 잔칫날 홍어가 없으면 안되듯 제주도에서는 반드시 몸국을 끓여먹었다.
몸국이 제주의 국이 된 이유는 뭘까. 양용진 제주향토음식연구원 부원장은 인터넷 신문 '제주의 소리'를 통해 "육지의 국이 일상식이었던 반면 몸국은 특별할 때에만 만들어 먹었기 때문"이란다.
제주도도 육지처럼 잔칫날에는 돼지(돗)잡는 일부터 시작된다. 일반인들이 가장 흥미로워하는 식재료가 있는데 일명 미역귀로 불리는 돼지고기의 한 부위인 장간막이다. 이튿날이 되면 솥에서 진국이 나오는데 이 국물에 겨울에 채취해서 말려놓은 모자반을 물에 불려 토막토막 썰어 넣고 푹 끓여낸다. 이때 메밀로 묽은 반죽을 만들어 물조베기(묽은 수제비)를 풀어 넣으면 몸국이 되는 것이다. 잔치 이틀째는 일명 '가문 잔칫날', 비로소 몸국을 맛볼 수 있다.
그런데 요즘 몸국 전문점을 찾아 맛을 보면 십중팔구 제주산이 아니다. 양 부원장은 "제주산의 경우 오래전부터 일본으로 수출이 되면서 물량이 부족하고 가격부담이 크기 때문에 경남지역의 모자반이 많이 반입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귀띔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현장 인터뷰] 김지순 제주도 향토음식보존회연구원장
제주음식 대부분이 정체불명
전수관보다 기초조사가 시급
김지순씨는 제주도 향토음식 지킴이. 특히 그녀는 웰빙식품으로 손색이 없는 몸국이 다른 지방에 별로 알려지지 않는 것도 안타까워한다.
"제주도에서 팔리는 음식을 제주도 향토음식이라 해선 안됩니다. 지금 식자재가 전세계적으로 자유롭게 유통됩니다. 일정한 지역에서 나오는 제철 신토불이 식재료를 잘 관리해야 합니다. 원래 제주도 음식에는 고춧가루가 거의 들어가지 않는데 요즘 갈치, 고등어 찌개를 보면 고춧가루 투성이에요. 그 음식이 못 먹는게 아니라 제주도의 원형이 아니란 걸 알고 관광객이 먹도록 해야 제주도 음식문화가 세계적으로 뻗어나갈 수 있다고 봅니다."
또한 그녀는 "제주도 음식의 기본을 아는 이가 향토음식점을 경영해야 되는데 그렇지 못하고 당국도 제주도 전통음식에 관한 기초조사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면서 "전수관 건립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식당을 제대로 끌고 가기 힘들어서 그런지 제주도 전통음식 전수관 스타일의 식당이 없습니다. 현재 관광객이 제주 음식이라고 먹는 게 거의 정체불명일 겁니다."
그녀는 몸국과 함께 메밀가루를 전병처럼 만든 뒤 갖은 채소를 소로 넣어 먹는 제주도 빙떡도 슬로푸드로 내밀었다.
이춘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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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순 제주도 향토음식보존회연구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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