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는 大邱가 아니라 大丘다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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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11-23   |  발행일 2012-11-23 제33면   |  수정 2012-11-23
[인문·자연지리 보고서] 대구GEO
공자 이름 孔丘에 ‘丘’자 있으니 禮가 아니라며 고유지명을 바꾸는 나라…이제라도 잘못된 건 바로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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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丘가 大邱로 바뀐 이유를 아십니꺼.

본래는 大丘였심더. 조선 영조 때 대구를 대표하던 유생이었던 이양채라는 양반이 “공자의 이름이 ‘공구(孔丘)’인데, 향교에서 제사를 지내면서 공자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면 인심이 불안한 데다 예법과 공경심이 부족하다고 해서 그렇게 부르면 안 된다”고 영조에게 상소를 했다 카네예.

그런데 영조가 그 상소를 보고 뭐라캤는지 아십니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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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영조 때 발간한 대구읍지에는 ‘大邱’가 아닌 ‘大丘’로 돼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근래 유생들이 신기한 것을 일삼음이 한결같이 어찌 이와 같은가. 3백여년 동안 대구의 많은 선비들이 하나의 이양채 등만 못해서 말없이 지내왔겠는가. 한낱 그뿐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다른 데서 상구(商丘)와 옹구(丘)란 이름도 있는데 옛날 선현들이 어찌 이를 깨닫지 못했겠는가”하면서 상소를 돌려주라고 명령했다 캅디더. 영조의 윤허를 못받은 거지예.

당시 조선은 성리학적 세계관이 지배했고, 대구가 추로지향(鄒魯之鄕·공자와 맹자의 고향이라는 뜻)이라 불릴 만큼 유학을 숭상했기에 정조 때까지 大丘와 大邱를 섞어 쓰다가 헌종 이후 大丘가 사라지고 철종 때부터 자연스레 大邱로만 썼다 카네예. 조선은 정조 이후 왕권이 약화되고 세도정치가 횡행하면서 부정부패가 극에 달했지예. 그 결과 망국의 길을 재촉했는데 공교롭게도 大丘가 大邱로 되면서부터 아입니꺼.

영조는 청나라 5대 황제였던 옹정제와 비슷한 시기에 임금이 됐는데, 이때 실학이 발전했지예. 만주족인 옹정제는 한족과의 융화정책 일환으로 공자를 억수로 숭상했다 카네예. 옹정제는 교지를 내려 중국 안에서도 ‘丘’자를 함부로 쓰지 말라캤다 캅디더. 그래서 찾아낸 한자가 ‘邱’자라 칸다 아입니꺼. 이 글자는 중국 허베이성에 있는 작은 현(縣)의 이름과 같심더.

구본욱 대구향교 장의(掌議·위클리포유 대구지오 자문위원)는 “‘邱’자는 설문해자(중국 후한 때 자전)에 중국의 한 읍지명이라고 나와 있으며, 단옥재(청나라 건륭제 때 학자)의 주석에 따르면 ‘邱’자가 공자의 이름을 피하기 위해 만든 한자”라 카네예.

대구의 유생들이 청나라 소식을 듣고 영조께 상소를 올렸는지 아니면 모화사상 때문이었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으나 지난해 오철환 대구시의원이 의회에서 원래 구릉, 언덕이라는 뜻의 ‘丘’자로 환원시키자는 주장을 처음 했심더.

오 의원은 “대구의 옛 이름은 달구벌(達句伐)이었으나 신라 경덕왕 때 달구화현(達句火縣)을 대구현(大丘縣)으로 바꿨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나온다”면서 “신라시대 원지명으로 바꾸자”고 주장했심더.

오 의원 말고도 양식 있는 사람들은 자주적인 입장에서 ‘邱’를 ‘丘’로 바꾸자는 말을 많이 합니더. 현실적으로 중국과의 교류가 늘어나는데 중국 사람들조차 ‘邱’자의 의미를 잘 모른다고 카네예. 대구토박이 성씨(姓氏)인 대구 서씨도 大丘로 쓴다 아입니꺼.

대구의 영문표기도 ‘TAEGU’에서 ‘DAEGU’로 바로잡았듯 글자의 자주성, 전통성, 실용성 없이 혹처럼 붙은 ‘ ’을 떼자는 여론이 많심더. 한꺼번에 변화시키면 돈도 들고 혼돈이 있으니 대구시홈페이지에 있는 ‘邱’자부터 ‘丘’자로 바꾸자고 카네요.

독자 여러분은 우예 생각합니꺼. 이번 호에서는 이것 말고도 대구의 잘못된 지명을 고쳐 제대로 쓰자는 이야기를 할라캅니더. 신천을 비롯해 건들바위는 안내판 내용이 수차례 잘못됐다고 지적했음에도 계속 베껴 쓰면서 가짜가 진실인양 호도되고 있심더. 또한 옻골, 돌거북, 담티고개, 배성(盃城), 돈지봉(豚智峰) 등 출처도 없이 잘못 쓰고 있는 지명에 대해서도 살펴봤심더.
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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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후반 겸재 정선의 손자인 손암 정황이 그린 ‘대구달성도’. 그림에는 대구를 ‘大邱’가 아닌 ‘大丘’로 표기하고 있고(①), 신천의 물줄기가 바뀐 게 아니라 원래부터 현재와 같음을 알 수 있다(②). <영남대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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