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피플] ‘한국 빙상의 산증인’ 계명대 박남환 교수

  • 이창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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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수정 2014-11-29  |  발행일 2014-11-29 제면
“수도권이 인재·자본 흡수하면서 대구 빙상 껍데기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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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환 교수의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시절 모습.

“쇼트트랙이여, 부활하라!”

박남환 계명대 교수(62)는 한국 빙상 역사의 ‘산증인’이다.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종목에서 한국 신기록을 네 번이나 갈아치운 주인공이기도 하다. 1972년 삿포로 동계올림픽에선 국가대표로 선발됐지만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당시 어려운 국가 상황으로 올림픽 출전이 좌절된 불운을 겪기도 했다.

계명대 체육대학 사회체육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94년 캠퍼스 내 빙상부를 창단, 지역 빙상 스타들을 육성해왔다. 창단 첫해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종목 금메달리스트인 정화여고 김소희를 비롯해 박주영·안상미·민룡 등 대구 출신 메달리스트들이 박 교수 밑에서 가르침을 받았다. 이들의 활약에 힘입어 계대 사회체육학과는 빙상 종목에 관한 한 톱클래스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수도권 집중화에 따라 대구 출신 선수들 역시 조건과 대우가 좋은 곳으로 떠나면서 ‘쇼트트랙 스타의 산실’로 불리던 대구가 명성을 잃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초·중·고교부터 대학, 실업팀에 이르기까지 빙상 유망주들이 더는 대구에서 성장할 수 없을 만큼 훈련 시설과 지원 수준이 열악해졌다. 올해로 환갑이 넘은 나이지만 박 교수는 다시 한번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남은 열정을 빙상계를 위해 바치겠다”는 박 교수는 대구 유일의 빙상팀을 반석 위에 올려놓겠다고 다짐했다. 우수 인재 유출과 지자체 예산 지원 부족으로 침체의 늪에 빠진 대구의 쇼트트랙을 되살릴 수 있다면 어떤 어려움도 견딜 수 있다는 게 박 교수의 한결같은 각오다. 박 교수의 당면한 목표는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에 나갈 수 있는 국가대표를 길러내는 것이다. 그런 각오를 보인 박 교수를 지난 20일 오후 대구실내빙상장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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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환 계명대 교수가 지난 20일 대구 실내빙상장에서 제자들의 연습을 지도한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쇼트트랙 메카’ 명성 잃은 대구
“한때 대구 소속 세계무대 누볐지만
수도권 집중화로 인재 유출 가속…
이젠 문제진단 넘어 해결책 내놓을때

자질 갖춘 선수·지도자 여전히 많아
뒤처진 빙상 인프라 확대하고
학교체육∼실업 연결시스템 구축해
머물며 성장할 수 있는 토대 만들어야
대구시 차원 관심과 지원이 절실…”

新 新 新… 화려했던 현역 시절
1966년 최연소로 태극마크 달아
빙속 한국신기록 네 번이나 경신
72년 삿포로올림픽 티켓 잡았지만
어려운 나라 살림에 출전 포기도
“FISU 쇼트트랙 기술위원장 활동
한국인 포진시켜 영향력 확대 보람”

가슴 속 열정 아직 식지 않았다
1994년 계명대 빙상부 창단해
김소희·안상미 등 스타로 키워내
“대구유일 빙상팀 다시 활성화시켜
평창올림픽 질주할 국대 배출할 것”


-2011년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국제대학스포츠연맹(FISU·International University Sports Federation) 쇼트트랙 기술위원장으로 선출됐다. 주로 어떤 일을 해왔나?

“FISU 내 각 분과 위원장은 유럽과 아시아 등 대륙별 대표성을 띤 전문가들이 맡아왔다. 나의 임기는 내년 4월까지다. 기술위원장 취임 후 첫 임무가 지난해 개최된 슬로베니아 마리보르 동계유니버시아드 준비사항을 점검하는 것이었다. 대회 내내 경기장 시설 점검과 경기 심판 및 임원 배정, 대회 진행 등 경기 진행 전반을 관장했다. 그동안 한국 쇼트트랙은 각종 국제대회에서 북미 캐나다와 중국 등 빙상 종목 종주국으로부터 견제를 많이 받았다. 위원장으로 재직하면서 국제스포츠계 실무진에 한국인이 골고루 포진, 영향력이 커질 수 있도록 노력한 점은 보람으로 느낀다. 대구에 온 지는 20년 넘었다. 사실 대구의 쇼트트랙 역시 한국의 유별난 수도권 집중화로 피해를 봤다고 생각한다. 우수 선수 유출에 손놓고 있어선 안된다. 이제는 문제 진단에 이어 해결책을 내놓아야 할 시점이라고 본다.”

-빙상 활성화를 위해 어떤 복안을 갖고 있나.

“현재 계명대 빙상부에는 장재혁과 이인원, 김광민, 조원준 등 4명의 선수가 뛰고 있다. 또 내년 3월부터 서울 출신의 고교 빙상 선수 2명이 신입생으로 입학할 예정이다. 우리 선수 6명은 물론, 지역의 정화여고와 경신고 등 고교 빙상선수들에게도 참여 기회를 줘 2018 평창동계올림픽 500m 쇼트트랙 종목에 대비해 훈련을 할 생각이다. 관건은 예산이다. 이미 문화체육관광부는 각 시·도에 빙상 종목 예산 배정을 마쳤다고 들었다. 대구시빙상연맹에서 제안이 온다면 대구시로부터 예산 지원을 받아 팀을 꾸릴 생각이다. 당장 내년 2월 스페인 그라나다에서 개최되는 세계동계U대회에 우리 선수들이 국가대표로 선발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지금도 나와 학생들이 혼연일체가 돼 주 5회 하루 8시간 이상 연습을 하고 있다. 이들에게는 꿈이 있다. 바로 대구의 빙상을 재건하는 것이다. 물론 개인적인 목표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대구를 위해 뛰겠다는 자세와 각오가 돼 있다. 이런 충정을 대구시 체육계나 행정기관 관계자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다.”

-대학에서 교수로 편안하게 지낼 수도 있었는데 왜 이런 결심을 했나.

“내 가슴속엔 아직 열정이 식지 않았다. 선수 생활 은퇴 후 다시 강단에 선 것도 나보다 더 나은 후배들을 키우고 싶어서였다. 대구에서 선수들을 키우면서 나는 대구의 많은 도움을 받았다. 대구 출신의 수많은 선수들을 내 제자로 받으면서 그들을 통해 대구를 보게 됐고 대구를 좀 더 이해하게 됐다. 그만큼 지역에 애착이 생긴 것이다.

쑥스럽지만 현역 시절 나쁘지 않은 기록을 냈다. 66년 당시 최연소 국가대표로 선발돼 이후 79년 선수 생활을 마감할 때까지 1천m 2회, 1천500m 1회 등 한국 신기록을 네 번이나 갈아치웠다. 2005년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동계유니버시아드와 2007년 이탈리아 토리노 동계유니버시아드 때 한국대표팀 부단장을 맡았고, 현재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쇼트트랙 국제 심판을 맡고 있다.

중요한 건 내가 발 딛고 있는 대구가 다시 과거 쇼트트랙 전성기만큼은 아니더라도 명맥을 이어갈 수 있도록 많은 인재를 배출할 수 있는 기반을 닦는 것이다. 그래야 제2, 제3의 김소희가 나오지 않겠나. 다행인 건 지난 소치 동계올림픽 당시 정화여고를 졸업한 김보름(한국체대 2년)이 대구 출신으로 빙상의 맥을 이었다. 김보름은 쇼트트랙에서 스피드 스케이팅으로 전향한 선수다. 작은 불씨라도 살려야 한다.”

-최근 국제대회에서 대구 출신 선수가 뛰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대구 쇼트트랙은 1990년대 후반 우수 선수들이 수도권으로 빠져나가면서 위기를 맞았다. 그 결과 2010년 밴쿠버 대회에서는 겨우 은메달리스트 1명만 배출, 체면을 구겼다. 당시 쇼트트랙 남자 5천m 계주의 김성일(경신고 출신)이 유일하게 출전했다. 전통적으로 동계올림픽에서 대구 출신이 전체 선수의 절반가량을 차지했던 여자 쇼트트랙의 경우 완전히 맥이 끊겼다. 김소희가 중학생 때 국가대표로 발탁되면서 대구 쇼트트랙 국가대표 행진이 시작되지 않았나. 그 후 지금까지 올림픽 무대를 밟은 지역 선수는 5명으로 기억된다. 94년 노르웨이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3천m 계주에서 금메달을 딴 김소희·김양희를 시작으로, 1998 나가노 대회의 안상미(3천m 계주 금), 2002 솔트레이크 대회 때의 최은경(3천m 계주 금), 2006 토리노 대회의 진선유(3관왕)-최은경(계주 금, 1천500m 은)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밴쿠버 대회에 와서는 대구 출신 여자 선수가 없었다. 다만 남자의 경우 2002 솔트레이크 대회의 이승재-민룡, 2006 토리노 대회의 서호진, 2010 밴쿠버 대회의 김성일로 명맥을 잇고 있다.”

-1990년대 대구시민들은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위해 환영식도 하지 않았나.

“지금은 그런 장면을 상상도 할 수 없다. 우리 학교 출신인 김소희와 안상미는 그 시절 영웅으로 떠올랐다. 릴레함메르 대회에서 김소희는 여자 3천m 계주에서 금메달, 500m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당시 고3이던 소희는 대구로 돌아온 후 시민들의 열렬한 환호 속에 카퍼레이드까지 했다. 안상미 역시 98년 일본에서 열린 나가노 대회 여자 3천m 계주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땄다. 이후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미국) 대회에서는 최은경이 여자 3천m 계주와 1천500m에서 각각 금·은메달을 보탰다. 특히 2006년 토리노(이탈리아) 대회에서는 진선유가 여자 1천m와 1천500m, 3천m 계주에서 우승하며 3관왕에 올랐다.”

-대구에는 선수층 자체가 감소했고, 학교에서도 입시 위주로 흘러 체육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분위기다.

“사실 대구에는 빙상 선수로 제대로 성장할 수 있는 인프라가 갖춰져 있지 않다. 특히 학교 체육이 중요한데, 대구에서 선수들이 진학할 학교는 경신고, 정화여고, 계명대 정도다. 유망주들은 단국대나 한국체대 진학에 마음이 가있다. 열악한 재정으로 신규 실업팀 개설조차 어려운 대구에 빙상팀을 만들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대구에는 여전히 우수한 자질을 갖춘 선수와 지도자들이 많다. 빙상 인프라와 학교 체육부터 실업팀으로 연결되는 시스템만 잘 갖춰져도 대구가 대한민국 빙상의 산실이란 과거 명성을 되살릴 수 있다.

-앞으로의 과제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워낙 전체 팀이 적다 보니 계대 빙상부의 책임이 무겁다. 이제는 초·중·고교가 연계되고, 대학·실업팀에 이르기까지 네트워크가 잘 형성돼 유망주가 클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 대구시 차원의 관심이 절실하다. 수도권이 인재와 자본을 흡수하면서 지방은 빈 껍데기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다. 스포츠도 예외는 아니다. 대구시민들 마음속에도 빙상 스타에 대한 추억과 향수가 있다. 이제는 대구의 어린 꿈나무들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3년여 앞둔 상황에서 대구 빙상계는 한 차원 높고 격이 다른 동계스포츠 문화를 창출해야 한다. 대구의 청소년들에게 높은 이상과 자부심, 향토애를 빙상을 통해 심어줘야 한다.”

글·사진=이창남기자 argus61@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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