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일자리 만드는 중소·중견기업, 상속세 때문에 투자 의욕 잃어”

  • 김은경
  • |
  • 입력 2026-05-19 20:41  |  발행일 2026-05-19
최대 50%에 달하는 상속세 탓
회사 쪼개거나 팔아야 할 처지
가업 승계 비상장株 면제해야
고용 창출 이어지고 세수 증대
지방소멸 막는 ‘황금알’ 될 것

외환위기때 100억원 빚 떠안아
경북고·대구사람 긍지로 버텨
AI·블록체인 기반 토큰화 선점
미래 자산운용 시장 승패 갈라

■출향인사를 찾아서

대구 출신 최곤 국제강재·알파자산운용 회장

최곤 경북고총동창회장은 끊임없이 메모하는 메모광이다. 그가 오래전 메모수첩을 꺼내 보여주고 있다./김은경 기자

최곤 경북고총동창회장은 끊임없이 메모하는 '메모광'이다. 그가 오래전 메모수첩을 꺼내 보여주고 있다./김은경 기자

'국제강재' '알파자산운용'의 최곤 회장은 남다른 기업가의 길을 걸어왔다. 아내와 장모, 아들과 며느리 등 그를 제외한 가족 모두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셀럽'이다. 하지만 본인은 평생 언론과 멀찍이 거리를 둔 삶을 고집했다. 취미 또한 남다르다. 홀로 재래시장이나 역 대합실을 찾아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면서 인생의 참된 가치를 떠올린다. 최 회장은 "제 삶의 모토라고 할 수 있는 '상선약수(上善若水)'의 철학 아래 물처럼 조용하고 낮은 곳으로 흐르며, 가장으로써 가족과 기업의 중심을 단단히 잡아온 인생"이라고 말했다.


◆탁월한 기억력 소유자 '인간 AI'


그는 한번 보고 들으면 바로 암기 해버리는 탁월한 기억력의 소유자다. 지금부터 40~50여년 전 친구의 집 주소, 전화번호, 학번을 기억한다. 고등학교 입학식에 누가 왔으며, 몇 명이었는지, 심지어 무슨 색의 옷을 입고 있었는지조차 줄줄 꿴다. 주산 2단의 빠른 두뇌 회전력은 가히 '인간 AI' 수준이다.


어릴 때부터 동네에서 알아주는 '수재'였던 그는 대구초등, 경북중‧고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진학했다. 고향을 떠나온지 50여년, 지금도 말투에는 정겨운 대구 사투리가 묻어난다. 그 사이 중견 철강업체인 '국제강재'와 신재생에너지 및 SOC(사회간접자본) 특화 운용사로 2조 원대의 자산을 움직이는 '알파자산운용'을 일구었다.


사업가적 기질은 일찌감치도드라졌다. 대학생 신분으로 1975년, 양말과 스타킹을 생산하던 '국제나일론' 공장에 입사했다. 오너 가족의 입주 과외교사를 했던 인연이 컸다. 타고 난 승부사 기질로 20대에 이미 무역부 최고 책임자 자리에 올랐다.


"1980년대 초가 되니 유럽과 일본에서 컴퓨터화된 자동화 양말 기계가 나오더군요. 기존 기계로는 디자인 하나 바꾸는 데 사흘이 걸렸는데, 새 기계는 디스켓 한 장만 꽂으면 몇 분 만에 뚝딱 바뀌는 신세계였습니다. 기계 한 대에 2천400만 원이나 하던 시절인데, 이걸 국산화하지 않으면 대한민국 섬유산업의 미래가 없다고 직감했습니다."


최곤 경북고총동창회장이 서울 마포구 집무실에서 고향 대구와 경북고 시절을 회상하며 이야기하고 있다. /김은경 기자

최곤 경북고총동창회장이 서울 마포구 집무실에서 고향 대구와 경북고 시절을 회상하며 이야기하고 있다. /김은경 기자


◆집념과 끈기로 이룬 기계 양산화


1983년, 서른한 살의 최 회장은 일본으로 가 기술 이전을 해달라며 사정했다. 일본 회사의 오너 삼형제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하지만 최 회장은 물러서지 않았다. 아침부터 밤까지 일주일 동안 회사 로비에서 진을 치며 뚝심으로 버텼다. 그의 진심과 거침없는 배포에 감복한 일본 회장은 마침내 기술 이전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그가 독립해 만든 국산 컴퓨터 양말 기계는 성능과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국내 내수 시장을 순식간에 장악했다. 이후 해외시장도 하나씩 잡아 먹었다. 남미, 이라크, 두바이, 미국은 물론 기술의 장벽이 높던 일본 시장에까지 역수출하는 쾌거를 이뤘다. 1992년 광복절에는 "중소기업이 섬유기계 본고장인 일본에 기계를 수출했다"며 KBS 9시 뉴스에 단독 인터뷰가 보도될 정도로 대한민국을 뒤흔든 성공 스토리였다.


영원할 것 같던 신화는 중국 시장의 무서운 '카피' 제품에 멈췄다. 중국 공장에서 '메이드 인 차이나'가 박힌 복제품 기계들을 보며 최 대표는 "이제 이 시장에서 손을 뗄 때가 됐다"고 과감히 판단했다. 그리고 1992년 12월 24일, 국제강재'를 설립하며 제조업의 근간인 철강 파이프 사업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기쁨도 잠시, 공장이 궤도에 오르려던 1997년 말, 대한민국을 강타한 IMF 외환위기가 터졌다. 환율이 900원에서 1천700원으로 치솟으며 단숨에 100억 원의 환차손으로 돌아왔고, 내수 시장에서 받은 어음들이 연쇄 부도가 나며 또다시 100억 원의 빚을 떠안았다. 총 200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리스크가 목을 죄어왔다.


"강남에 사둔 빌딩부터 돈이 되는 것은 다 팔았습니다. 그때 북한산에 올라가 어떻게 이 회사를 살릴지 눈물로 고민했죠. 모 은행장과 점심때 소주 6병을 나눠 마시며 사투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그때 저를 버티게 한 것은 오직 하나, '자존심'이었습니다. 내가 대구 사람이고, 사랑하는 모교 경북고의 학생회장까지 했는데 여기서 무너지면 얼마나 '쪽팔리는' 일인가. 고향 선후배와 부모님께 부끄러운 사람이 되지 않겠다는 맷집으로 버텼습니다."


◆미래 자산운용 트렌드 'AI, 토크나이제이션'


"40년이 넘게 경영을 하면서 제가 어기지 않은 철칙이 하나 있어요. 직원들의 월급날은 단 한 번도 어기지 않은 것이죠. 타고 다니던 차를 팔아 현금을 마련해 월급을 채워 주기까지 했었죠."


제조업의 한계를 느끼던 그는 또 한번 승부수를 띄웠다. 평생 흔들리지 않을 지속 가능한 사업을 구상했고, 그것이 바로 '금융업'이었다. 현재 알파자산운용은 둘째 아들이 경영하는데, 일반적인 주식·채권 중심의 자산운용사와는 궤를 달리한다. 풍력·태양광, 댐 등 한번 자금이 유입되면 25년간 장기 결속되는 SOC(사회간접자본) 및 부동산 대체투자 전문 운용사로 체질을 혁신했다. 현재 운용 자산은 2조 원대를 돌파했다.


최 회장은 미래 자산운용 시장의 트렌드에 대해서도 통찰을 제시했다. "앞으로는 AI 에이전트와 블록체인 기반의 '토큰화(Tokenization)'를 누가 먼저 선점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릴 것"이라며, "100억짜리 고가 빌딩이나 미술품을 토큰으로 쪼개어 거래하는 시대가 오고 있어요. 이미 SOC 자산 기반이 탄탄한 알파자산운용이 이 변화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최곤 경북고총동창회장이 서울 마포구 집무실에서 고향 대구와 경북고 시절을 회상하며 이야기하고 있다. /김은경 기자

최곤 경북고총동창회장이 서울 마포구 집무실에서 고향 대구와 경북고 시절을 회상하며 이야기하고 있다. /김은경 기자


◆"지방소멸 근원적 해법 도입해야"


고향 대구의 침체와 청년 유출 대목에 이르자 그의 눈빛은 날카롭게 빛났다. 조(兆) 단위 예산을 쏟아붓고도 효과를 보지 못하는 인구 문제의 본질적인 해법으로 '가업승계 제도의 파격적 혁신'을 주장했다.


"지방이 살려면 좋은 직장이 있어야 하는데, 그 자리는 대기업이 아니라 지방에 뿌리를 둔 중소·중견 제조업체들이 만듭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 중소기업 사장들은 나이 60만 되면 의욕을 잃어버려요. 자식에게 회사를 물려주려 해도 최대 50%에 달하는 상속세 때문에 회사를 쪼개거나 팔아야 하니까요. 결국 기업을 정리해 현금화할 생각만 하고, 신규 투자를 멈춥니다."


그는 해법으로 국가가 지정한 가업 승계 대상 기업에 한해 '비상장 주식 상속세 전면 면제'라는 파격적인 카드를 제안했다.


"부동산이나 현금을 물려줄 때는 엄격하게 세금을 매기되, 가업을 이어받는 비상장 기업 주식에 대해서는 상속세를 면제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전국의 자산가들이 집과 땅을 팔아서라도 회사에 돈을 투자할 것입니다. 일자리가 늘어나고, 기업이 살아나 매년 내는 법인세와 고용 창출 효과가 지방을 살리는 황금알이 될 것입니다."


최 회장은 현재 경북고 총동창회장을 맡고 있다. 선‧후배 장벽을 허물고, 후배들을 격식 없이 챙기는 '내리사랑 리더십'으로 존경받는다. 싱가포르 재벌가와의 혼맥, 대한민국 정상급 배우 며느리, 또 한복명인 장모와 디자이너 아내 등 눈에 띄는 가족으로도 유명세를 치른다.


"가족이름이 언론에 오르내려 과시할 필요가 있나요? 가족들 각자가 제 자리에서 잘하고 있는 것 같아요. 특히 아내는 정말 고마운 사람이에요. 돌아가신 장모님이 남긴 한복 등 문화재 8천여점을 한국과 영국, 프랑스 등 주요국 박물관에 기증하더라고요. 살갑게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존경스러운 아내에요."



기자 이미지

김은경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생활/문화인기뉴스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