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천117억원이 투입된 부산오페라하우스 개관을 앞두고 국내 최초 오페라 전문 제작극장인 대구오페라하우스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열린 제22회 대구국제오페라축제 개막식 모습. 대구오페라하우스 제공
'유네스코 음악창의도시 대구'의 자부심이자 국내 최초 오페라 전문 제작극장인 대구오페라하우스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부산이 총 3천117억원을 투입한 대형 오페라하우스를 내년에 개관하는 데다, 개관 기념으로 100억원이 넘는 이탈리아 라 스칼라 극장 초청 공연을 논의하는 등 압도적인 하드웨어와 콘텐츠 공세를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바다를 품은 매머드급 인프라를 앞세운 부산의 기세 앞에, 예산 감축으로 고전하는 대구 공연예술계는 지역 문화의 중심축이었던 오페라 시장마저 주도권을 빼앗길지 모른다는 우려에 휩싸였다.
대구오페라하우스는 지난 5월부터 개관 이후 첫 전면 리모델링이 진행 중이다. 류정희 대구시 공연산업팀장은 "외관적인 부분보다는 작품 수준을 올리기 위한 무대 시설과 음향 장비에 집중 투자했다"고 설명했다. 대구오페라하우스 제공
과거 대구는 부산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음악 시장에서 독보적인 우위를 점해왔다. 그러나 지난 2022년 대구오페라하우스가 기존 독립 재단법인에서 대구문화예술진흥원 산하로 흡수되면서 전문성이 약화된 반면, 부산은 콘서트홀과 오페라하우스를 함께 운영하는 시 사업소 형태의 '클래식부산'을 2024년 7월 출범시키며 체급을 대폭 키웠다. 지난해 6월 개관한 콘서트홀에 이어 준공을 앞둔 오페라하우스라는 막강한 '쌍끌이 하드웨어'를 앞세워 이미 대구 문화계를 위협하며 위축시키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부산오페라하우스는 대극장(1천800석)과 소극장(300석), 부대시설 등을 갖췄으며, 내년 9월 개관을 앞두고 있다. 사진은 부산오페라하우스 조감도. 부산시 제공
◆같은 제작극장인데…시설은 '천지차이'
대구오페라하우스는 2003년 국내 최초 오페라 전문 제작극장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1996년 삼성그룹 제일모직 대구사업장 이전 당시, 기업 차원에서 출연한 대규모 예산으로 건립된 성공적인 기업 메세나 사례이기도 하다. 1천602석 규모의 대극장은 음향 반사를 극대화하고 관객 시야를 확보하는 '말발굽형(Horseshoe-shaped)' 구조로, 마이크 없이 목소리가 생생하게 전달돼야 하는 오페라 전용 극장으로서 훌륭한 극장 인프라를 자랑해 왔다.
오페라 도시 위상을 견인해 온 대구국제오페라축제 예산은 2년 단위로 줄고 있다. 올해 축제 폐막작으로 선보이는 대구오페라하우스 창·제작 오페라 '미인' 공연 모습. <대구오페라하우스 제공>
지난 5월 대구오페라하우스는 개관(당시 투입예산 440억원, 연면적 1만7천310㎡) 이후 처음으로 대대적인 전면 리모델링에 들어갔다. 노후한 무대기계와 조명·음향 배선, 공연장 출입문을 교체하고 분장실 환경 개선, 장애인 승강기(지하2층~로비) 설치 등 내부 개선이 핵심이다. 총 사업비 197억원이 투입된 리모델링은 내년 9월 예정이었던 준공일이 시공업체 선정 지연으로 내년 12월로 미뤄졌다. 류정희 대구시 공연산업팀장은 "외관적인 부분보다는 작품 수준을 올리기 위한 무대 시설과 음향 장비에 집중 투자했다. 공사 기간이 늘어난 만큼 꼼꼼하게 마무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부산 중구 북항재개발구역 내 해양문화지구에 내년 9월 개관을 목표로 하는 부산오페라하우스가 생기면서 대구 음악계에는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16일 기준 총공정률 65.75%인 부산오페라하우스는 연면적 5만1천617㎡·지하 2층~지상 5층으로, 대극장(1800석)과 소극장(300석), 전시실 및 부대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다.
다만 100억원대 이탈리아 라스칼라 극장 초청 개관 공연을 두고 지역 예술계와 시민단체의 반발이 거세다. 이에 지난 11일 부산시는 부산오페라하우스 운영자문단과 토론회, 대시민 여론조사 등을 거쳐 오는 10월 초 추진 여부를 최종 확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논란과 별개로 부산오페라하우스는 '제작극장'으로서 탄탄한 기반을 다지고 있다. 클래식부산 출범 전인 2023년부터 지역 예술인이 90% 이상 참여하는 오케스트라·합창단·발레단 등 3개 단체로 구성된 '오페라시즌제'를 도입하며 제작 역량을 강화했다. 특히 오페라하우스 내부에는 단체별 전용 리허설룸과 실제 무대와 규격이 같은 리허설 전용 공간까지 별도로 갖췄다.
이에 대구 오페라 현장에서는 아쉬운 목소리가 나온다. 대구오페라하우스 관계자는 "부산시가 오페라하우스를 준비하며 이곳을 수차례 방문했을 때 부족한 부대시설의 필요성을 조언한 바 있다. 실제 무대 크기와 같은 연습실이 있으면, 무대 셋업 후 그대로 옮겨 공연을 할 수 있어 극장의 레퍼토리 시스템이 활발하게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라며 "부산은 이를 반영해 완벽한 하드웨어를 갖춘 반면, 대구는 부지 한계상 시설 확충이 힘든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대구시의 최근 5년간(2021~2025) 오페라 관련 사업 예산 및 대구국제오페라축제 예산 추이(2021~2026). 인포그래픽=Gemini
◆부산 '전폭 지원'…대구 '대표 축제 예산 삭감'
예산 격차도 뚜렷하다. 부산은 오페라 기반을 다지기 위해 사업을 세분화하고 예산의 지속성을 확보해 나간 반면, 대구는 대표 축제를 포함한 전체 예산이 줄고 있는 추세다.
영남일보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확보한 대구시의 공연예술 분야 최근 5년간 예산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대구의 오페라 분야 예산은 62억5천만원으로, 뮤지컬(31억1천500만원)과 클래식(약 28억원) 등 타 장르와 비교했을 때 단일 장르로는 가장 큰 규모다. 2021년 예산(52억6천만원)과 비교했을 때 10억원가량 늘었지만, 전년 대비 2억1천300만원 줄어든 금액이다.
특히 오페라 도시로서 위상을 견인해 온 대표 축제 '대구국제오페라축제' 예산은 2년 단위로 줄고 있다. 2021~2022년에는 각 20억원, 2023~2024년엔 15억원으로 줄더니 지난해와 올해는 14억원 수준이다.
반면 부산은 '클래식부산' 출범 전인 2023년부터 '오페라 저변확대 및 공연예술 생태계 조성' 사업에 5억9천만원이 별도 편성됐다. 여기에는 △오페라 전문인력(시즌단원) 육성(3억원) △부산오페라시즌 운영(1억9천만원) △소규모 오페라 축제(1억원) 사업이 포함됐다.
특히 클래식부산은 2024년 출범과 동시에 총 392억1천51만원(국비 포함) 규모의 예산이 편성됐다. 이 중 '오페라 저변확대와 공연예술 생태계 조성' 예산만 총 11억1천620만원으로 전년 대비 2배가량 늘었다. '오페라 전문인력 육성'(6억6천620만원)과 '부산오페라시즌 운영'(3억원)의 예산도 확대됐다. 지난해 클래식부산에는 약 146억원이 투입됐으며, '창작오페라 지원'(4천만원)도 신설돼 사업도 다각화됐다.
반면 대구문화예술진흥원의 지원 사업은 '음악' 장르로 통합돼 있어 오페라 특화 지원은 전무하다. 지역의 한 성악가는 "오페라는 막대한 자본과 인력이 들어가는 종합예술임에도 독립된 지원 분야가 없다"며 "장르 특성을 고려한 세분화된 지원체계가 마련돼야 작품의 질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인프라 차이로 인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제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인재 양성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사진은 지난 4월 공연된 대구오페라하우스·중국국가대극원 공동 제작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 아시아 초연 모습. 대구오페라하우스 제공
◆대구만의 국제 교류·제작 역량 강화해야
전문가들은 부산오페라하우스 개관으로 인한 대구 오페라의 위기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대구가 지난 20여년간 쌓아온 제작 역량과 국제 네트워크, 인적 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면 대구만의 정체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오동욱 대구정책연구원 박사는 "부산은 훌륭한 시설을 갖췄지만, 아직 자체 창·제작 및 유통 생태계는 미흡하다. 실질적으로 피드백이 이뤄질 수 없는 상황"이라며 "대구는 오랜 시간 축적해 온 제작 인력 양성 시스템과 국제 네트워크라는 명확한 강점이 있다. 순수예술 생태계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향후 오페라하우스와 콘서트하우스가 하나의 재단으로 통합하게 되는데, 이를 통해 대구가 우위를 점해온 국제 교류와 기획 역량 등 유네스코 창의음악도시로서 쌓아온 네트워크를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인재 유출을 막고 청년 예술가를 발굴 및 육성하는 근본적인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상무 전 대구오페라하우스 예술감독은 "부산은 정명훈이라는 세계적인 지휘자를 영입하고 기존의 관광 산업과 연계해 클래식 인구를 빠르게 흡수하고 있다"며 "대구는 코로나19 이후 예산이 줄면서 젊은 성악가들이 설 자리가 줄었고, 인재가 유출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오페라 분야에서는 대구가 부산보다 10년 이상 앞서 있었지만, 지금처럼 인재 유출이 지속된다면 오히려 10년 이상 퇴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최 전 감독은 "답은 '인재 양성'에 있다. 대구에서 배출된 청년 성악가들이 부산과 서울, 더 나아가 세계 무대로 진출할 수 있는 '인재 양성소'가 돼야 한다"며 "대구 문화계가 전반적으로 무너진 지금,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인재 양성부터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정수민
공연장 지박령. 지역의 문화·예술 이야기를 구석구석 전합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