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희 영남일보 문화팀장
대구 문화계 관계자들에게 최근 가장 자주 듣는 화두는 단연 지원 예산 삭감과 대구문화예술진흥원(이하 진흥원)의 분리·재편이다.
얼마 전 체감상 눈에 띄게 줄어든 지역 공연 무대에 답답함을 토로하며 한 연극계 인사에게 "요즘 왜 이렇게 대구 무대에 작품이 올라가지 않느냐"고 물었다. 돌아온 답은 냉혹할 정도로 씁쓸했다. "공연을 올릴수록 적자만 쌓입니다. 어렵사리 막을 올려도 관객이 단 한 명도 없어 배우들이 대기실에서 서성이다 그냥 집으로 돌아간 날도 있었어요." 카드빚만 늘어간다는 현장 예술인의 이 솔직한 고백은 오늘날 대구 문화예술계가 처한 참담한 주소를 여실히 보여준다.
예술 현장이 이토록 급격히 얼어붙은 배경에는 예산 급감이라는 짙은 그늘이 자리한다. 본지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확보한 '진흥원 연도별 예산 내역'을 분석한 결과, 2022년 진흥원 출범 이후 '예술인 창작 지원' 예산은 3년 새 35.5%(2023년 94억300여만 원→2026년 60억6천여만 원)나 쪼그라들었다. 특히 예술인 직접 지원 예산은 2023년 68억3천여만 원에서 2026년 31억2천여만 원으로 반토막 아래로 떨어졌다. 처참한 예산 삭감 속에 현장 예술인들의 사기와 창작 의욕마저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발표된 진흥원의 분리·재편안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소식이다. 출범 4년 만에 거대 통합의 지붕을 벗고 문화재단, 공연재단, 관광재단, 대구미술관 등 4개 전문 기관 체계로 돌아가는 것은 장르별 자율성과 전문성을 강화하는 바람직한 수순이다. 진흥원 직원들 사이에서도 "통합 때보다 전문성이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어 개인적인 신분 변화를 감수하더라도 지금의 분리·재편이 한결 낫다"는 반응이 나온다.
사실 지자체의 재정 여건상 예산 감축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삭감된 예산이 허투루 쓰이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예술인과 기획·행정 인력들의 열정을 최대한 꺾지 않는 방향성이 전제돼야 한다. 조직의 틀을 바꾸는 개편 역시 마찬가지다. 아무리 근사한 직제 개편안을 내놓는다 한들, 정작 그 속에서 숨 쉬고 일하는 사람들의 사기를 북돋우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미 2022년 진흥원 통합 당시 한 차례 신분 변동과 큰 진통을 겪었던 구성원들인 만큼, 전문성 강화와 더불어 이들의 목소리를 보다 충분히 담아내려는 세심한 행정적 의지가 선행돼야 한다.
문화는 사람의 열정과 숨결, 그리고 헌신으로 완성되는 생명체다. 예술가와 기획자, 행정 인력의 열정과 사기가 죽어 있는데 지역 문화가 홀로 살아날 리 만무하다. 지금 식어버린 대구 문화판에 필요한 것은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역동적인 에너지다. 현장 예술인과 기획·행정 인력 모두가 각자의 영역에서 기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안정적인 터전과 뛰어놀 수 있는 판을 마련해주는 것이 시급하다.
예술인에게는 다시 무대에 서서 작품을 올릴 수 있는 창작 지원이라는 실질적인 동력이, 기획·행정 인력들에게는 전문성을 소신껏 발휘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는 신뢰와 유연성 있는 행정력의 뒷받침이 절실하다. 예술인과 행정 인력이 손을 잡고 함께 활기를 피워 올릴 수 있도록 판을 짜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예산 한파와 조직 재편의 진통 속에서 대구 문화의 온기를 되살릴 근본적인 처방이다.
박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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