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단팥빵 패밀리 이야기- 대구근대골목단팥빵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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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8-25   |  발행일 2017-08-25 제41면   |  수정 2017-08-25
“예전 단팥빵은 다 잊으세요”
팔도빵지순례족이 꼽은 대구3대 명물빵집
2013년, 빵에 청춘 바친 어머니 배인숙씨
남편 정봉원 교수와 대구 관광빵 개발 결의
‘가장 쉽고 싸며 이야기 담긴’ 단팥빵 결론
‘직접 끓인 팥’‘무방부제’등 원칙 2년 연구
유학파 아들 성휘·딸 재원씨 합류로 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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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인4색 전공 영역이 제각각인 ‘단팥빵 패밀리’가 모처럼 약전골목 본점에 모여 성공적인 대구먹거리관광을 갈구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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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그래피 서체가 눈길을 끄는 근대단팥빵 쇼핑백.

대구 중앙파출소 앞 광장. 거기는 ‘버스커의 고향’이기도 한 젊은이존이다. 북쪽은 대구백화점 가는 길, 동쪽은 통신패션골목. 정말 빛나는 ‘유채색존’이다. 하지만 길건너편 약전골목은 갑자기 ‘무채색톤’으로 변하는 실버존의 초입. 10~20대는 좀처럼 길건너 약전골목쪽으로 가지 않았다. 그런데 2015년 어느 날부터 그 룰이 깨졌다. 젊은이들이 서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한 것. 무슨 이유일까. 약전골목 동문 입구 초입에 자릴 잡은 약전골목 첫 단팥빵집 때문이었다. 대구에 태곤이단팥, 팥장수, 아리랑 등 여러 단팥빵집이 있다. 솔직히 어느 집이 가장 맛있다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 단팥빵 맛, 거기서 거기다. 자기 기호가 중요하다. 요즘 소비자는 맛보다 ‘욕망’에 더 솔깃한다. 그 욕망은 특히 재밌는 ‘푸드스토리’가 곁들여지면 만족감이 커진다.

팔도빵지순례족이 꼽은 대구3대 명물빵집
2013년, 빵에 청춘 바친 어머니 배인숙씨
남편 정봉원 교수와 대구 관광빵 개발 결의
‘가장 쉽고 싸며 이야기 담긴’ 단팥빵 결론

‘직접 끓인 팥’‘무방부제’등 원칙 2년 연구
유학파 아들 성휘·딸 재원씨 합류로 결실
녹차생크림단팥빵 등 5종 新舊 입맛 공략
‘근대’ 뜻하는 영어발음서 ‘모단빵’ 별칭도


빵 이름과 상호는 일치했다. ‘대구근대골목단팥빵’(이하 근대단팥빵). 그런데 이 근대단팥빵은 대구보다 SNS에서 더 먼저 유명해진다. 2015년 무렵 팔도명물빵만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빵지순례족’이 일조한다. 순례족은 서울의 ‘나폴레옹 과자점’, 군산의 ‘이성당’, 대전의 ‘성심당’, 안동의 ‘맘모스제과’, 광주의 ‘궁전제과’, 경주 ‘황남빵’, 통영 ‘오미사꿀빵’, 진주 ‘수복찐빵’, 목포의 ‘코롬방’, 천안의 ‘학화호두과자’ 등을 찍고 다녔다. 아무튼 어느 날 대구로 오는 순례족이 부쩍 늘어난다. 대구에 3대 빵집이 새롭게 형성된 것이다. 시내 삼송빵집의 ‘마약빵’(옥수수 크로켓)이 리더격이었다. 이어 근대단팥빵, 마지막엔 대구도시철도 반월당역 내에 위치한 ‘반월당고로케’가 편대를 형성한다. 근대단팥빵은 ‘모단빵’이라 명명됐다. ‘모단’은 근대를 의미하는 영어 단어 ‘Modern(모던)’의 옛날식 발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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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녹차생크림·생크림·옛날단팥빵.

◆ 가족의 합작품인 근대단팥빵

이 단팥빵은 가족의 합작품이다. 아버지 정봉원(영진전문대 국제관광조리계열 교수), 어머니 배인숙, 아들 성휘, 딸 재원. 넷이 단팥빵에 대한 지분을 4분의 1씩 갖고 있다. 누구의 빵이 아니라 모두의 빵. 약속이나 한 것처럼 네가족은 모두 외식업에 취해 있다.

근대단팥빵의 역사는 199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머니는 빵에 청춘을 바쳤다. 대구 파리바게트 2호 지산점을 운영했다. 어머니는 대구에서 이름을 대면 다 아는 유명 건설회사 회장의 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빵집이 좋았다. 한때 전국 최고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특히 2007년에는 직접 ‘하와이 코나 라이언커피’를 국내에서 처음 수입해 ‘커피인(COFFEE IN)’이란 커피숍 프랜차이즈를 펼쳐나갔다. 동시에 파리바게트의 경험을 갖고 샌드위치 전문점 ‘서브웨이’(미국 체인점)까지 롯데백화점 대구점에 입점시켰다. 다들 국제적 커피 브랜드 본사가 서울이 아닌 대구란 사실에 의아해 한다. 현재도 근대단팥빵 2층에 어머니의 체취가 묻은 커피숍이 있다. 빵과 커피에 대한 오랜 경험을 토대로 <주>푸디야를 창업하고 현재 거기 대표로 있다. 하지만 스타벅스, 카페베네, 빽다방 등 온갖 커피숍이 무한경쟁을 펼치고 기존 빵사업도 예전 같지 않았다. 뭔가 ‘돌파구’가 필요했다.

이 대목에서 아버지가 등장한다. 2013년부터 대구만의 먹거리관광상품 개발의 필요성을 외치고 다녔다. 부부는 ‘우리 가족이 직접 대구를 대표하는 관광빵 개발에 나서자’고 결의한다. 부부는 가장 쉽고 값싸면서 이야기가 담긴 빵, 그게 추억의 단팥빵이란 결론에 도달했다. 1950~60년대 전국 최대급 단팥빵 공장이 대구에 있었다. 바로 중구 교동시장 내에 있었던 ‘수형당’이다. 단팥빵은 일본에서 왔다. 일본 최초의 단팥빵집은 1874년 긴자의 ‘기무라야(木村屋)’. 아직도 영업 중이다. 당시 빵 위에는 겨자씨와 참깨를 뿌려놓았다. 겨자씨는 안에 통단팥, 참깨는 팥앙금이 들어가 있다는 표시. 단팥빵 중심부는 조금 함몰돼 있다. 그 이유는 기무라가 벚꽃철 왕실로부터 주문을 받았을 때 오목한 부분에 벚나무 열매를 얹어서 공급한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단팥빵은 모두 중심이 우묵하고 가장자리가 조금 불룩한 형태를 갖게 된다.

◆ 기존 빵기술자를 영입하다

새로운 단팥빵 개발은 어머니가 주도했다. 맘모스 등 예전 1급 빵집 출신 제빵사를 영입했다. 원칙을 정했다. 힘들어도 팥은 반드시 직접 끓여 마련한다는 것. 방부제는 안 넣는다는 것. 추억만 너무 고집하지 말자는 것. 현재 수성구 만촌동에 사는 할머니(노영식·86)까지 동원시켰다. 할머니는 늘 “사골육수 뺄 때처럼 초벌 팥물은 자칫 아린맛을 낼 수 있어 버려야 된다”고 했다. 그냥 끓여 사용할 경우 할머니 표현대로라면 ‘생목 올라오는 맛’이 되고 결국 빵맛을 버리게 된다는 귀띔이었다. 다음은 당분 핸들링. 당분이 과도하게 들어가거나 타이밍을 놓치면 팥이 갯벌처럼 녹아버린다. 통팥이 살아있어야 된다.

2년이란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신제품 준비를 했다. 밀가루도 강·중·박력분을 무수히 많은 형태로 혼합비율을 달리해서 만들었다. 빵 한 개의 밀가루 양은 50g 안팎, 팥은 60g, 생크림은 80g을 넣어 옛날세대와 젊은세대가 공히 공감할 만한 크림단팥앙금 시스템을 구비하게 된다.

모양도 중요했다. 일본 단팥빵은 둥글납작하다. 예전 빵은 너무 납작해서 폼이 나지 않았다. 젊은층이 주고객이 되게 하려면 빵이 반달처럼 봉긋하게 부풀어 올라야 되었다. 표준빵이 개발됐지만 문제가 있었다. 수십년 구력의 기술자들은 하나같이 새로운 빵에 대해 별로 반응하지 않았다. 자꾸 예전 스타일로 돌아가려고 했다. 어머니는 그들에게 단호하게 지시했다.

“예전 건 다 잊어주세요.”

이때 어머니를 지켜보던 딸이 혜성처럼 등장했다. 그녀는 2004년 미국으로 건너간 유학파. 존스홉킨스대 경영대학원 석사에 이어 현재 박사과정에 있다. 마케팅이 뭔가를 알고 있었다. 딸은 그렇게 주장했다.

“우리 빵은 추억의 빵이지만 결코 추억스러워선 결코 성공할 수 없어요. 젊은이들이 일단 많이 찾아야 해요. 어르신을 타깃으로 하면 실패합니다. 젊은이가 와서 어르신 선물을 사갖게 만드는 게 정석입니다. 그러려면 요즘 대세인 녹차생크림을 전면으로 내세워야 합니다.”

딸은 녹차생크림단팥빵에 목을 맸다. 그렇게 해서 기본형, 생크림, 녹차생크림, 딸기생크림, 소보루 등 모두 5종의 단팥빵이 출시된다.

포장감각도 중요했다. 자칫 말라버릴 수 있어 기존 종이 포장 대신 공기가 덜 들어가게 비닐포장을 사용했다. 포장 위에 색다른 글씨를 올려야 될 것 같았다. 아버지의 친구인 대한바른글씨쓰기협회장이며 <주>훈민정필 대표로 있는 서예가 손병훈에게 글씨를 부탁했다. 손씨는 대구, 근대, 골목, 단팥빵에 각각 어울리는 서체를 혼용해 손병훈체 캘리그래피를 완성했다.

선물용 세트빵을 담을 수 있는 가방과 상자도 별도 디자인했다. 처음에는 롯데백화점 대구점에 입점했지만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역시 약전골목점이 ‘명당’이었다. 처음 발견했을 때 그 건물은 비어있었다. 50년대 지어진 건물이었다. 리모델링할 때 중국 상하이의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를 본 따 화려한 샹들리에, 고풍스러운 가구와 소품 등을 갖다놓았다. 옛 나무 골조는 그대로 살려뒀다. 대구근대를 강조하기 위해 54년 영화배우 최은희와 함께 대구에 온 메릴린 먼로, 50년대 계산성당 사진도 액자로 걸어뒀다. 직원은 하얀 중절모를 쓰게 했다. 티셔츠 뒤에도 상호를 찍었다.

◆화룡점정은 아들의 몫

아들이 호출을 받고 서울에서 내려왔다. 서울에서 잔뼈가 굵은 마케터. 경기대 관광전문대학원을 거쳐 미시간주립대에서 외식산업경영을 전공했다. 현재 시내 곽병원 근처에서 근대단팥빵용 생지를 대량공급하는 <주>홍두당의 대표다. 그의 첫 사업은 길거리 음식인 씨앗호떡과 부산어묵을 판매하는 전문점 ‘호오탕탕’(호떡, 오뎅, 커피의 합성어). 부모님의 지원과 은행 대출로 자금을 마련하고 2012년 10월 부산 KTX 역사에 플래그숍 스토어 콘셉트의 1호점을 오픈했다. 때마침 씨앗호떡과 부산어묵 붐이 불어 장사가 잘됐다. 덕분에 순식간에 매장이 10호점까지 늘었다. 하지만 경험이 전무하고 의욕만 앞선 20대 청년에게 가맹사업은 생각만큼 녹록지 않았다. 결국 가맹점 관리에 구멍이 나기 시작하면서 사업을 접어야만 했다.

빵 때문에 이젠 살맛이 난다. 대구를 더 정확하게 볼 수 있게 됐다. 그는 단팥빵 옆에 종소리를 매칭시킨다. 옛날 ‘학교종이 땡땡땡’ 버전을 역이용한 건데 하루 15~20번 갓 구운 빵이 나오면 가게 입구에 달린 종을 쳤다.

동생이 기획한 녹차크림빵은 기대 이상으로 젊은이가 가장 좋아하는 메뉴가 됐다. 젊은 고객은 부모를 위해 추억의 단팥빵을 선물로 사갔다. 동생의 예상이 그대로 적중한 것이다. 모객을 위해 1만원어치를 사면 2층 커피숍에서 무료커피를 먹을 수 있게 했다.

그는 스스로를 지역의 색과 맛이 담긴 음식 개발에 전념하는 ‘투어 푸드 크리에이터(Tour food creator)’라 칭한다. 덕분에 빵집은 ‘기획형 로컬 베이커리’로 떴고 전국 유명 호텔 푸드코트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다. 2015년 롯데백화점 대구점에 첫 매장을 연 이후 포항·울산·창원·부산 등지에 14개의 직영점을 냈다. 최근에는 신세계 스타필드하남과 신세계백화점 인천점에 입점했고, 현대시티아울렛 가든파이브점에 매장을 오픈하는 등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시장 공략에도 주력하고 있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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