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인 리포트] 大를 위한 小 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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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6-01   |  발행일 2018-06-01 제8면   |  수정 2018-06-01
[변호인 리포트] 大를 위한 小 희생

범죄 구성요건을 충족해도 처벌을 피하고 무죄가 되는 경우가 있다. 위법성이나 책임이 조각될 때이다. 형법은 위법성조각 사유로 5가지를 규정한다. 정당방위(제21조), 긴급피난(제22조), 자구행위(제23조), 피해자의 승낙(제24조), 정당행위(제20조)다. 쉽게 표현하면 ‘맞고는 못 살아(정당방위)’ ‘대를 위해 소를 희생(긴급피난)’ ‘이제 와서 왜 그래(승낙)’ ‘오죽 급했으면(자구행위)’ ‘그 정도로 뭘(정당행위)’이다. 만약 피고인이 5가지 외의 생뚱맞은, 예컨대 ‘범죄의 불가피성’을 주장할 경우 그러한 것은 초법규적 발상이 되고, 위 5가지 사유를 주장한 것이라면 엄격한 요건을 충족할 것이 요구된다.

지난달 13일 울산지방법원은 실랑이 중이던 대리기사가 차를 길에 세우고 가버리자 만취상태에서 직접 차를 운전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긴급피난이 이유다. 혈중 알코올농도 0.140%로 운전을 했는데 무죄인 것은 이례적이다. 피고인은 위험한 상황을 벗어나려고 운전했고, 고작 300m를 몰았다는 주장을 했다. 법원도 사고회피 법익이 음주운전회피 법익보다 크다면서, 특히 피고인이 도로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인이나 경찰에 도움을 청했더라도 유효한 도움을 받았을 가능성이 낮은 새벽시간이었던 점, 300m 떨어진 주유소까지만 운행했고 도착 즉시 112에 전화해 운전사실을 신고한 점을 고려했다. 울산지법이 제공한 당시 밤 시각 도로사진을 보면 고가도로 하단의 갓길 없는 편도 2차로는 매우 위험해 보인다. 그대로 있을 수 없었다는 피고인의 주장이 설득력 있다.

긴급피난의 요건은 무엇인가. 객관적 상황으로 현재의 위난이 존재해야 하고, 위난을 피한다는 주관적 의사가 있어야 한다. 침해되는 법익보다 보호되는 이익이 더욱 커야 하고, 침해수단은 가급적 경미한 것을 선택해야 한다. 따라서 (1)주행 중 브레이크가 고장 나 자신과 동승자의 생명을 지키고자 갓길에 주차된 차량을 고의로 충돌한 것은 긴급피난이 맞다. 위난상황과 피난의사가 동시에 발견되고, 생명은 차보다 소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2)부마사태라는 정치상황을 빙자하고 국민의 생명 등을 명분으로 대통령을 암살한 것은 용납될 수 없다. 대통령이 민중에 대한 발포명령을 하였을 것이라는 증거 없는 주장은 장래의 불확실한 사태를 환상적으로 추리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현재의 부당한 위난이 존재하지 않는데도 피고인은 함부로 마지막 수단을 사용했고, 특히 그의 내심은 피난의사가 아니라 내란 목적 살인에 불과해 정당방위와 긴급피난에 해당하지 않는다(대법원 80도306 판결). (3)피고인들이 반란군인 자신들을 진압할 부대에 대항하고자 불법으로 병력을 동원한 것은 부당한 침해에 대항한 것이 아니어서 정당방위가 아니고, 또 반란목적을 달성할 의도에 불과해 피난의사도 인정되지 않는다. 한편 5·18 민주화운동에 참가한 시민을 무차별적으로 진압한 것은 방위의사 또는 피난의사를 인정할 수 없고 내란죄의 국헌문란 목적만 인정된다. 그리고 그들의 ‘강력한 타격’은 내란의 수단에 불과했다(대법원 96도3376 판결). (4)자신의 진돗개를 보호하기 위해 기계톱을 작동시켜 남의 개를 죽인 것은 상당한 수단을 쓴 것이 아니어서, 긴급피난에 해당하지 않는다(대법원 2014도2477 판결).

천주현 형사전문변호사(법학박사) www.brotherlaw.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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