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로드] 경상도 국수열전 (3) 구룡포 국수기행②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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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7-24   |  발행일 2020-07-24 제34면   |  수정 2020-07-24
구룡포 어부가 즐기던 해장국 '모리국수'…'미역초' 육수 낸 국물 맛 엄지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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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부잣집 딸로 부러움 없는 시절을 보냈지만 시집살이를 하면서부터 시작된 신산스러운 일상의 노역을 반세기 이상 감내해왔다. 동고동락하고 있는 작업대가 그 할매의 유일한 놀이터이자 위안의 쉼터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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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포 일본인가옥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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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국수 주재료인 물메기.현지서는 '미역초'로 불린다.

일본인이 운영하던 대형 국수공장을 한국인이 받아 1960년대까지 키워나간다. 구룡포 읍내에만 무려 7개의 국수공장이 있었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게 제일국수공장이다. 이 공장은 스타벅스와 탄생 연도가 같다. 1971년. 국수보다 공장 입구가 더 먹음직스럽다. 타일로 마감된 70년대식 건물로 신축된 지 38년 됐고 277.2㎡(84평) 크기다. 외관이 꽤 그럴듯해 포토존으로 주목받는다.

국수공장이라고 하지만 공장이란 표현은 그렇게 어울리지 않는다. 그냥 '방앗간'이맞을 것 같다. 지난해 가을 이 장터가 모던하게 성형수술을 받게 된다. 비가림시설이 가설된 아케이드 버전. 맛이 없다. 그게 없을 때는 예스러움이 감돌았는데 리모델링되니 멋적게 된 것 같다. 페인트를 덧발랐지만 간판은 예전 그대로다. 1대 사장 이순화 할매의 남편 친구가 구룡포우체국장이었는데 그 국장이 예전 사용하지 않는 우체국 현판을 잘 다듬어 간판으로 선물해준 모양이다. 거기에 적힌 전화번호의 변천사가 꽤 흥미롭다. 처음에는 432번, 이어 2432번, 다시 76국 2432, 마지막엔 '276-2432'가 되었다.


특허가진 해풍국수 1번지 제일국수공장
이순화의 구룡포 제일국수·해풍국수
한쪽 구석에 놓여진 오래된 국수기계
해풍으로 반건조, 창고 숙성에 15시간
건조 거친후 600g 한묶음에 2천500원


7년 전 아들 하동대가 가업을 이어받는다. 그는 나름 경영마인드를 갖고 있다. 상호를 오래 남기려고 특허도 받아뒀다. 이순화의 구룡포 제일국수·구룡포해풍국수.

1층 테라스는 건조장. 거기 서서 동쪽을 향하면 파도소리가 넘실댄다. 하지만 국수기계는 퇴락할 대로 퇴락해버렸다. 1층 오른쪽 구석에 딱 한 대 놓여 있다. 20㎏ 밀가루 한 포를 넣으면 600g짜리 24인분 정도 만들어낸다.

25년 전 덜컥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 일은 할매가 독차지할 수밖에. 반죽하고 면발 빼내고 그걸 건조장에 걸어놓고 마르기를 하염없이 기다렸다. 그걸 적당한 길이로 자른뒤 종이 띠지로 묶어 좌판 부추처럼 팔았다.

초창기에는 곰표, 해바라기표, 백설표, 지금은 큐원중력분 밀가루를 사용한다. 한 번에 밀가루 15~20포가량을 쓴다. 국수 품질을 좌우하는 건 뭘까? 건조에 가장 공을 들여야만 한다. 반죽하고 재래식 기계에서 면을 뽑기까지 한나절, 야외 건조장에서 해풍으로 반건조 상태가 되면 창고에 넣어 숙성시키는 데 15시간가량, 이를 새벽에 꺼내 다시 널어 완전 건조 과정을 거친 후 알맞은 크기로 자르기까지 또 한나절. 그런 국수 600g 한 묶음 가격은 2천500원. 싼가? 비싼가? 나도 잘 모르겠다.


7년전 가업 잇는 아들
증설한 별도 공장, 관광객 사진 스폿
종일 입구 작업대 앞에 호령하는 할매
단골이 오면 띠지로 재바르게 묶어내
겨울 북동풍 하늬바람 쐰 국수 맛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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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전 가업을 이은 하동대 2대 사장은 상호 특허를 내는가 하면 세련된 해풍국수 포장지까지 만들어 전국에 유통시킨다.

이젠 일이 힘에 부친다. 아들이 전면에 나섰다. 시설 현대화는 피할 수 없다. 근처에 별도 공장을 증설했다. 여긴 월 1회 정도 기계를 돌린다. 사진작가, 여행자 등은 이 기회를 노린다. 어쩜 관광 버전의 공장이랄 수 있다.

할매는 종일 입구 왼쪽 작업대 앞을 호령한다. 그래서 이 공장은 사랑방이다. 단골이 오면 시시콜콜 세상잡사를 공유한다. 공장의 인심 탓인지 공장 코밑까지 좌판 부대가 차지해버렸다. 좌판 아지매들이 할매 들어랍시고 이렇게 치켜세워준다. '할매가 이 장터 터줏대감 아이가.' 할매가 빙그시 웃는다.

1인분 무게를 정확하게 달아주는 투박하게 생긴 추저울이 눈길을 끈다. 단골이 국수를 사러 올 때마다 재바르게 국수를 묶어주는 띠지, 분명 할매의 손마디는 추저울을 닮았다. 억척스러우면서도 짠하다. 구룡포읍 사람들은 먹을 게 마땅찮으면 여기 잔치국수를 사간다. 아무튼 여기가 갑자기 유명해진 건 2009년 초 포항 출신 가수 함중아가 한 TV프로그램에서 이 공장을 소개하면서부터다.

제일국수는 일명 '해풍국수'로 통한다. 여기 국수는 바닷바람이 스며들어가야 제맛이 형성된다. 과메기와 비슷한 습성이랄까. 관건은 바람인데 겨울이 되어야 원하는 바람이 불어온다. 겨울철 북동풍인 하늬바람이 불 때 국수 맛이 최고로 좋단다. 바람이 강하고 습도가 높으면 물을 많이 넣어 반죽을 질게 하고, 비가 오거나 구름이 끼면 물을 적게 부어서 반죽해야 된다. 날이 궂을 때는 소금을 적게 넣고 바람이 약하거나 추울 때는 소금을 많이 넣는다. 이런 감각은 누구에게 배워줄 수도 배울 수도 없다.


국수할매 원래는 옹기장수
한평생 가족 위해 일 밖에 모르는 삶
아들이 가업잇고 향토뿌리기업 선정


처음에는 국수가 아니었다. 옹기 장사였다. 지금 이 자리에서 전을 깔았다. 할매 친정 아버지는 감포에서 우체국장은 물론 읍의원까지 지낼 정도로 유지였다. 그런 맏딸 처지가 영 말이 아니었다. 할매도 옹기는 너무 쪽박신세인 것 같아 좀 모양새가 있는 국수공장으로 슬쩍 건너갔다. 술 좋아하는 남편이 뒷일을 감당했다. 물론 처음부터 모든 걸 관장할 수 없어 기술자를 뒀고 3남매까지 거들어야만 했다. 몇년 있다가 기술자가 떠나자 그때부터는 가족 모두 매달려야만 했다. 24시간이 일투성이였다. 잠과 휴식과 일의 경계가 사라진다. 그런 어느 날 남편의 손가락이 롤러 사이에서 날아가 버렸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야만 했고, 결국 일은 전부 할매 차지였다. 한평생 놀러간 건 호미곶에 두번 간 것뿐이다. 아들이 가업을 잇고 나자 2014년 이 공장은 '향토뿌리기업'에 선정된다.


할매 잔치국수
100여년 역사 명성 '소문난 할매국수'
가족같이 지낸 제일국숫집 것만 사용
강렬한 육수, 추억·세련된 SNS 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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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직한 멸치다시가 인상적인 구룡포시장 내 할매집 잔치국수. 제일국수공장 국수를 사용한다.

제일국수공장이 바늘이라면 실 같은 국수가게가 바로 지척에 있다. 구룡포에서 가장 유명해져버린 잔치국수집, '소문난 할매국수'. 85세로 작고한 이순식 할매는 지난 38년간 바로 가족 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제일국수만 삶아 팔았다. 7남매 중 다섯째인 딸 이상교가 가업을 이었고 며느리 박안예도 여기서 돕고 산다. KTX메거진, tvN 수요미식회 덕분에 인기짱 국숫집으로 발돋움한다.

이 집도 이래저래 100여년 역사를 지니고 있다. 딸은 너무 노쇠해진 모친을 현재 가게 2층 살림집에 3년간 모신다. 가게가 너무 협소하고 허름하다 보니 아파트에 길든 젊은층은 선뜻 들어서기 부담스러워한다. 그래서 리모델링을 했다.

처음으로 이른 점심 삼아 잔치국수를 먹어봤다. 육수가 엄청 강렬하다. 가스오부시와 디포리, 거기에 어묵국물까지 가미한 듯하다. 물어보니 멸치는 디포리 계열은 아니고 중멸이었다. 초창기엔 허기를 면하라고 삶은 계란도 서비스로 제공했다. 3년 전부터는 어묵도 곁들임 메뉴로 판다.

딸은 모친을 빼닮았다. 그녀의 서비스 감각은 거의 서울 홍대클럽 수준이다. 노동이 전부였던 시절의 옴팡집의 추억스러움과 SNS맛집의 세련미가 합성된 묘한 국수집이다.


모리국수의 명가를 찾아서
모리국수 가장 유명한 가게 '까꾸네'
토박이들이 제일로 꼽는 '모정식당'
4~7월 제철 미역초, 여름 국수맛 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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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고래산업의 전진기지와 대게 유통의 메카로도 불렸고, 과메기 특수를 지나 지금은 모리국수시장으로 유명해진 구룡포 전통시장 입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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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정식당과 함께 모리국수 돌풍을 일으킨 까꾸네 모리국수.

구룡포는 이제 '모리국수포'로 불린다. 가장 유명한 업소는 선모텔 뒷골목에 있는 '까꾸네', 하지만 미식가와 토박이들은 시장 골목에 자리한 '모정식당'을 지목한다. 고부 간의 정이 스며들어가 있는데 한때 '꿀꿀이식당'으로 불렸다. 8년 전 79세로 타계한 강덕기 할매, 그리고 5년 전 가업을 이은 며느리 김복순의 삶이 걸려 있다. 2인분이 기본인데 주인은 기자를 배려해 3인분 같은 1인분을 요리해냈다. 미역초, 건새우, 콩나물, 대파, 그리고 공장표 생면을 사용한다. 국물부터 먹었다. 엄청난 국물맛이다. 엄지척, 사람마다 호불호가 있겠지만 내겐 이 집이 딱이다.

모리국수를 이야기하려면 '미역초'의 내막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상당수 관광객은 '미역초'를 해초로 착각한다. 헤엄칠 때 그 놈의 몸통이 꼭 미역의 율동을 닮아 그런 별칭을 갖게 된다. 모리국수에 없어서 안 될 주재료가 바로 미역초다. 일명 물메기, 일부에선 무점등가시치, 남해에선 고랑치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부산, 통영 등 남해안권에서 잘 잡힌다. 동해안 삼척·강릉·동해 등에서는 물메기와 닮았지만 전혀 다른 어종인 물곰이 잘 잡힌다.

미역초는 매년 4~7월이 제철. 모리국수의 맛도 하절기에 절정을 맞는다. 그런데 미역초 물량이 갈수록 줄고 가격도 만만찮아 미역초를 빼고 그 자리에 아귀를 넣는 업소도 늘고 있다.

모리국수는 구룡포 어부들의 해장국이랄 수 있다. 모리국수는 바다생선이 축으로 되니 해물탕 버전이고 어탕국수는 민물 잡어가 축을 이룬다. 비린 맛은 어탕국수가 더 세다. 모리국수는 너무 잡다한 생선이 들어가선 안 된다. 그리고 고춧가루를 듬뿍 넣는다. 칼칼한 맛이 치고 올라와야 한다. 그렇지만 메기매운탕처럼 기름기가 진하면 텁텁해진다. 미역초가 제1재료가 된 이유다.

후발주자인 '성은식당'은 특이하게 홍게를 넣어준다. 김영수 사장이 최근 기존 업소를 이어받았다. 구룡포초등 앞에 가면 '순이네모리국수'가 있는데 여긴 오징어, 홍합, 게, 골뱅이, 겨울에는 오징어 내장도 넣어준다. 지척에 있는 '구룡포전통시락국수'는 40년 역사의 중국집 정호반점을 접고 '구룡포 시락국할매'로 불렸던 모친(백피리)의 손맛을 내외가 2년 전 전수했다. 사용하는 시래기는 무청이 아니고 배추 우거지를 사용한다. 고명으로 꽁치완자가 올라간다. 고개를 돌려 바다를 보니 국숫발처럼 구불구불 거리고 있다.

이춘호 음식·대중문화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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