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준영 중부지역본부 부장
취재 현장에서 자주 듣는 말이 있다.
"또 새로운 계획입니까. 지난번 약속은 어떻게 됐습니까."
시장 상인도, 공장 대표도, 농민도, 청년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기대보다 실망이, 희망보다 피로감이 먼저 묻어난다. 대구경북의 미래를 위한 청사진은 끊임없이 발표되는데, 정작 지역민들이 체감하는 변화는 더디기만 하기 때문이다.
대구경북은 결코 비전이 부족한 지역이 아니다.
대구경북신공항은 남부권 물류와 산업 지도를 바꿀 국가적 대역사(大役事)로 추진되고 있고, 행정통합은 지방분권 시대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겠다는 목표를 담고 있다. 달빛철도는 영호남을 잇는 동서 화합과 균형발전의 축이며, 미래산업 육성과 국가산업단지 조성 역시 지역의 생존이 걸린 핵심 과제다.
문제는 사업의 필요성이 아니라, 추진력이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재원 마련과 이해관계 조정, 정책 우선순위를 둘러싼 난항이 이어지면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구상은 계속 나오는데 정작 이미 약속한 사업조차 제자리걸음을 하니, 지역민들은 "또 시간만 흘러가는 것 아니냐"며 한숨짓는다.
지역의 경쟁력은 단연 '속도'에서 나온다.
기회를 먼저 잡는 도시가 기업을 유치하고, 일자리를 만들며, 청년을 붙잡는다. 반대로 결정을 미루고 추진력을 잃으면 기업은 타 지역으로 떠나고 청년은 수도권으로 향한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지만, 기회는 결코 기다려주지 않는다.
더 안타까운 것은 거대한 국책사업들이 표류하는 사이, 지역민들의 삶이 더욱 팍팍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폭염 속에 골목상권의 발길은 끊겼고, 자영업자는 인건비와 전기요금 부담에 깊은 한숨을 내쉬운다.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아 고향을 떠나고, 농촌엔 빈집이 늘어만 간다. 아이 울음소리가 줄어드는 현실 앞에서 지방소멸은 더 이상 먼 미래의 경고가 아니다.
지역민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더 거창한 청사진이 아니다. 이미 약속한 사업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는 책임감이다. 화려한 구호보다 눈에 보이는 작은 변화를, 선언보다 확실한 결과를 기대한다.
정치는 바뀔 수 있다. 행정 책임자 역시 바뀔 수 있다. 그러나 지역의 미래를 좌우할 핵심 사업만큼은 정권이나 임기에 따라 흔들려서는 안 된다. 지역발전전략은 누군가의 치적이 아니라, 500만 시도민 모두의 자산이기 때문이다.
물론 대형 사업만으로 지역이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청년이 머물 수 있는 일자리, 아이를 안심하고 키울 수 있는 환경, 소상공인이 다시 웃을 수 있는 골목경제, 편리한 교통과 의료 서비스가 함께 뒷받침돼야 한다. 거대한 국책사업과 생활밀착형 민생정책은 서로 다투는 관계가 아니라, 함께 굴러가야 할 수레의 두 바퀴다.
대구경북은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끌었던 저력이 있는 지역이다. 수많은 위기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국부 창출의 중심에 섰던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비전을 만들어내는 일이 아니라, 이미 세운 비전을 끝까지 실천해내는 힘이다.
미래는 수많은 계획서 위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약속을 끝까지 지켜낸 시간의 겹 위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대구경북이 다시 도약하는 길도 다르지 않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큰 청사진이 아니라 멈춰 선 추진력을 되살리는 일이다. 그것이야말로 지역민들에게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아주는 첫걸음이자, 대구경북의 내일을 가장 확실하게 앞당기는 길이다.
마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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