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과 한국문학] 훈민정음 해례본을 지켜낸 대구경북

  • 박진관
  • |
  • 입력   |  수정 2021-01-28  |  발행일 2021-01-28 제면
안동·상주서 해례본 발견돼

대구선 언해본과 첫 합본간행

그외 한글본 편지·서적 다수

세계가 한국어 주목하는 지금

지역 한글 유산 활용할 필요

2021012601000848300033931
백두현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대한민국의 각 지역은 나름대로 특유한 언어와 문화적 전통을 간직하며 한국 문화의 발전에 기여해 왔다. 경상북도는 신라의 중심지였고, 고려와 조선을 거치며 많은 인재를 배출하고 문헌을 간행하였다. 경상도는 문헌과 인재의 고장이라 했다. 수천 년의 한반도 역사 속에서 대구경북은 다른 어떤 지역보다 두툼한 문화 자원을 축적해 왔다.

문헌과 기록을 소중히 여겨 온 대구경북의 문화전통은 훈민정음 해례본을 지켜냈다. 간송미술관에 소장된 훈민정음 해례본은 1940년 경북 안동 주하리의 이용준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일제강점기 간송 전형필이 해례본을 인수해 일본으로 반출되는 것을 막았고, 한글 창제 원리를 만천하에 드러낼 수 있었다. 2008년 경북 상주에서 절반 정도만 남은 해례본이 발견되었으니 이 또한 경북이 보존해 온 것이다. 훈민정음은 1962년에 국보 제70호로 지정되었고,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훈민정음은 한국인의 창의적 재능을 상징하며, 오늘날 새로운 문화 창조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원본 훈민정음이 1940년에 발견된 후 그 내용을 한 권의 책에 담아 처음 간행한 곳도 대구의 출판사 창란각이다. 1946년 4월에 대구의 창란각에서 원본을 모사(模寫)하여 언해본과 함께 묶어서 간행했다. 이것은 서울의 조선어학회에서 1946년 10월에 훈민정음 영인본을 낸 것보다 더 빠르다. 훈민정음의 원본이 안동에서 처음 나왔고, 그것을 한 권의 책에 담아 처음 간행한 곳도 대구이다. 세계적 인류 문화유산을 대구경북 지역이 지켜냈고, 이를 출판하여 세상에 널리 알린 것도 여기다. 풍기 희방사에서 목판본으로 간행한 월인석보(1568년)의 책 머리에는 한글로 번역한 훈민정음이 실려 있다.

대구경북이 일구어 온 한글문화의 전통은 훈민정음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경상도관찰사로 부임한 김안국은 지금의 김천과 그 인근 지역에서 이륜행실도, 경민편언해, 정속언해, 농서언해, 잠서언해, 벽온방언해, 창진방언해 등의 한글 책을 간행하였다(1518년). 앞의 세 책은 풍속을 바로잡아 공동체 정신을 가르친 것이고, 뒤의 네 책은 민생을 위한 농업 서적과 의학서이다. 한글본 후생 서적을 널리 펼쳐 지역민의 삶을 개선하였다. 한글 문헌이 인민의 삶을 향상시키는 데 기여했으니 관찰사 김안국은 세종의 뜻을 실천한 인물이다.

대구경북에서 이루어진 한글문화 유산으로 음식디미방, 온주법, 시의전서를 빠뜨릴 수 없다. 전통 음식 조리서의 대표격인 음식디미방은 두들마을 석계종가 정부인 장계향의 친필본으로 경북대 도서관에 간직되어 있고, 여러 학자들이 연구하여 한국의 전통 음식을 새롭게 하는 원천이 되고 있다. 달성군 현풍 소례마을에 살았던 곽주와 그의 가족들은 170여매의 한글편지를 남겼다. 곽주의 편지에는 아이들의 한글 교육을 당부하는 사연이 처음으로 나타나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대구경북에는 원이엄마편지와 최진립언간 등 다수의 한글편지가 전해져 오고, 우리의 어머니들이 지은 내방가사 두루마리가 쌓여있다. 유학자들이 저술한 한문 서적뿐 아니라 지역에서 나온 한글 문헌도 주목받아 마땅하다. 한글과 한국어가 세계로 뻗어가고 있는 이 시점에 대구경북의 한글문화 유산을 새롭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 지역의 한글 문헌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드높이고, 이들을 잘 활용하여 새로운 지역 문화를 창조해 내는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
백두현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