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과 한국문학] 의미의 집, 기호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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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수정 2021-02-18  |  발행일 2021-02-18 제면
언어는 기호와 밀접한 관계

기호 통해 많은 의미 전하고

기호 안에서만 사고 가능해

인간이 지식 얻는 과정 또한

언어 획득한 이후에 이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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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웅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현대 기호학의 근간을 세운 피어스의 통찰에 의하면, 인간은 기호 안에서만 사고한다. 단어, 이미지, 소리, 냄새, 맛, 행위, 대상 등 그 어떠한 것이라도 그것으로부터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면 그것은 기호가 될 수 있다. 예컨대 근처에 수제 빵집이 있음을 알리는 달콤한 냄새도, 지루함을 암시하는 하품 행위도 기호다. 언어는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기호다. 한국어는 '고양이', 영어는 'cat', 중국어는 '猫'라는 기호로 같은 동물을 가리킨다. 또한 그 동물을 '야옹이' '나비'라는 기호로 일컫기도 한다. 이렇게 언어는 기호를 통해 의미를 전달하지만 그 기호와 의미가 관계가 필연적이지는 않다. 이러한 특성을 언어의 자의성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기호가 전달하는 의미는 어떻게 파악되는 것이며, 기호가 의미를 가지게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언어학자 소쉬르는 두 가지 구성 요소로 기호를 분석한 모델을 제안했다. 그는 기호가 기표와 기의로 구성된다고 보았다. 여기에서 기표는 기호를 이루고 있는 형식에 해당되고 기의는 기호가 표상하는 개념에 해당된다. 가령 '고양이'라고 말할 때 그 청각적 심상이 기표라면 그 기표가 불러일으키는 뜻이 기의라고 할 수 있다. 소쉬르는 비록 기표와 기의를 구분하기는 했으나 이 둘은 마치 종이 한 장의 두 면과 같이 분리될 수 없음도 강조했다. 기표가 즉각적으로 기의를 촉발하고 기의가 즉각적으로 기표를 촉발한다.

길을 걷다가 가게 앞에 '열림'이라고 쓰인 기호를 보게 되었다고 생각해 보자. 이 기호는 기본적으로 단어인 '열림'에 해당하는 기표와 '이 가게는 현재 영업을 하고 있다'라는 개념(의미)에 해당하는 기의로 구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기의와 기표의 관계에서 가장 핵심은 이 둘의 결합 관계가 절대적이라는 점이다. 즉 의미가 없는 기표나 형태가 없는 기의는 성립이 불가능하다. 기표와 기의의 관계가 상호 의존적이라고 해서 그 연결이 필연적인 것은 아니다. 동일한 기표가 다른 기의를 나타낼 수도 있다. '열림'이라는 단어는 공중화장실의 손잡이 부분에서도 흔히 발견된다. 이 경우에 기의는 '화장실 칸이 비어 있다'라는 개념에 해당된다. 하나의 기표에 다수의 기의가 결합할 수 있다는 사실은 사전에서 단어 하나가 여러 가지 뜻으로 풀이될 수 있다는 점과 연결된다. 물론 하나의 기의에 다수의 기표가 결합할 수도 있다. '이 가게는 현재 영업을 하고 있다'라는 개념을 '영업 중'이라는 기표로 나타내는 것 역시 가능하다.

소쉬르는 기호가 형식적이고 일반화된 시스템의 일부로서 작동할 경우에만 의미를 획득할 수 있다고 보았다. 언어 구조 내에서 모든 기호들은 자체의 관계에 의존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 아래에서 언어(기호)의 자의성의 중요성이 부각된다. 기호의 자의성은 언어가 기본적으로 실재, 즉 우리가 속한 세계로부터 독립되어 있다는 입장을 드러낸다. 소쉬르의 모델 내에서 기호 체계의 내적 구조를 강조하면서 언어가 실재를 반영하기보다는 실재를 구조화해 내는 측면을 강조하게 된다. 인간은 언어를 사용하여 세계가 어떤 모습인지를 말할 뿐만 아니라 세계가 어떤 모습이 아닌지도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쉬르는 인간이 세계에 대한 지식을 얻어 가는 과정 자체가 언어를 획득한 이후에 가능하다는 점에서 실재가 언어를 결정한다기보다 언어가 실재를 결정한다고 보았다.
김진웅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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