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장애를 가진 김성현 시인이 컴퓨터를 이용해 글을 쓰고 있다. |
우리는 꿈을 이루기 위해 과연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고 있는가. 여기 육체적 한계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소중한 꿈을 이루기 위해 30여년간 한길만 걸어온 사람이 있다.
생활의 대부분을 전동침대에 누워서 지내고 왼쪽 검지와 중지로 스마트폰과 컴퓨터 키를 누룰 수 있는 것이 유일한 능력인 김성현(50·달서구 신당동)씨는 스무 살 때부터 '시인'이 되기를 소망해 왔다. 마침내 그는 지난 2018년 월간 '문학세계'에 '내 안에 나무가 있다' '꽃샘추위의 말' '가슴 속에 떠 있는 별 하나' 등 세 편의 작품으로 신인상에 당선돼 이름 석자 앞에 '시인' 이라는 두 글자를 당당히 붙이게 됐다.
지난 2019년 가을에는 평생을 공들이고 다듬어온 시 80여 편이 수록된 '가슴 속에 떠 있는 별 하나'(도서출판 천우) 라는 제목의 첫 시집을 발간했다.
그는 한국민들레장애인 문학협회 주최로 열린 민들레문학상 시상식에도 공모해 2018년 '붕어빵', 2019년에는 '꽃'으로 연이어 장려상을 수상했고, 특히 올해에는 대구 출신으로는 유일하게 시 부문에서'시를 쓴다는 것'이라는 작품으로 장려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71년, 유복자이면서 뇌성마비 중증장애인으로 태어난 그에게 불행은 겹쳐서 찾아왔다.
생후 3년 만에 어머니마저 그의 곁을 떠나 그는 할머니의 보살핌으로 유년기와 청소년기와 청년기를 보내야 했다. 친구 한 명 없이 방에서만 지냈던 그가 28세 때 처음으로 수동휠체어 한 대를 마련해 뇌성마비 장애인 단체와 교류하면서 본격적으로 세상과의 소통을 시작했다.
김 시인은 제도권 교육을 받지는 못했으나 검정고시를 치르고 방송통신대 국문과에 입학할 정도로 학구열이 강했다. 물론 상황이 여의치 않아 1학년 과정으로 그쳐야 했지만, 현재는 스마트 폰이나 컴퓨터 등으로 드넓은 세상과 접속하고 있다.
중증장애를 가진 김성현 시인이 펴낸 시집. |
김 시인의 시집 '가슴 속에 떠 있는 별 하나'에는 그의 존재이유와 에너지의 원동력은 신앙의 힘에서 비롯되었음을 고백하는 '아버지의 품 안에서는'이라는 시를 비롯해 28년간 키워주시고 생을 마감하신 할머니를 향한 절절한 그리움을 담은 '할매', 원칙과 신념을 지켜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가려는 의지가 담겨 있는 '상록수' 등 그의 50년 굴곡진 인생을 통해 걸러낸 진실의 알갱이 같은 작품들이 담겨 있다.
기쁠 때 박수 치는 간단한 동작마저 할 수 없는 그의 불편한 몸이 소재가 된 '박수'라는 시에는 "토라진 연인처럼/ 서로를 외면하는 두 손"이라는 표현으로 내면과 모순된 그의 육체를 시의 재료로 활용했다.
시인은 언젠가 병원가는 길에서 먹어본 붕어빵을 통해서도 영감을 얻어 "물 아닌 틀 속에서 나와/ 따끈한 붕어들 파닥거린다"로 시작하는 '붕어빵'이라는 동화 같은 시를 썼고, 2.28공원 앞에 세워진 소녀상을 보고는 "거세고 잔학한 손에 의해/ 응고되어 버린 꿈을/ 목에 걸고서"로 표현된 '소녀상'이라는 시를 썼다.
왜 시인이 되기로 결심했느냐는 질문에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이것 밖에 없어서"라고 시인은 겸손하게 말했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그는 순수한 영혼과 감성의 소유자로서 주변의 어떠한 소재도 시의 재료로 활용할 수 있는 탁월한 감각을 지녔다.
김 시인의 스승이자 한국민들레장애인문학협회 회장인 이흥렬 발가락 시인은 "자신이 가진 장애와 환경을 오히려 뒤집어 불행의 밑바닥이 아닌 가장 높은 이상을 세간에 확인케 하는 저력의 소유자"라며 극찬했다.
김천우 <사>세계문인협회 이사장은 그의 시에 대해 "눈보라 속에 피어난 순백한 꽃처럼 장엄하면서도 가슴 따스한 언어들이 정감있고 아름답다"고 평했다.
김 시인은 자신의 시집에 대해 "한 사람의 중증 장애인으로 비로소 인생에 보람된 흔적 하나 남기게 되어 더없이 마음이 뿌듯합니다. 아무쪼록 이 시집이 보다 많은 분들에게 읽혀져서 가슴에 남는 작은 향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성현 시인의 시집은 교보문고(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barcode=9788979547801#N)에서 만나볼 수 있다.
진정림 시민기자 truefores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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