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눈으로 보는 G2] 미국이 두려워하는 '빠링허우'

  • 이정태 경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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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5-20 11:57   |  수정 2021-05-24 16:23

미국이 조급해졌다. 바이든정부 출범 이후 노골적으로 중국을 '적(敵)'이라 칭하는 것은 물론, 동맹을 끌어모아 반(反)중국 전선을 구축하고 있다. 특히 중국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신장위구르, 홍콩, 대만 문제를 일부러 자극하고 나섰다. 왜 그럴까.

중·미 G2시대가 본격화하면서 중국의 추격에 겁먹은 것이다. 과거 미·소 G2시대(냉전시대) 당시 소련은 미사일과 핵을 빼면 전 분야에서 미국의 경쟁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러나 중국은 다르다. 모든 분야에서 미국을 추월하기 직전까지 와 있다. 역사와 인구 면에서는 오히려 미국을 압도할 정도로 우위에 있다.

이러한 중국에 대해 미국은 공개적으로 ‘기술도둑’ ‘국제질서를 파괴하는 국가’라고 규정하면서 중국봉쇄의 당위성을 설파한다. 그러면서 첨단기술, 우주기술, 군사기술 분야에서 중국의 도전을 차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속사정은 다르다. 미국이 진짜 두려워하는 것은 첨단기술을 주도하는 화웨이나 샤오미, 하이얼이 아니다. 

 

미국의 큰 '명절'인 추수감사절, 할로윈데이, 크리스마스축제는 언제부터인가 미국이 아닌 중국이 준비하고 있다. 축제에 필요한 소품과 장식품, 화려한 등불과 조명, 장난감과 인형 등 대부분이 중국산인 것. 최근에는 중국산 붉은 소원등, 풍등까지 미국 축제의 밤하늘을 밝히고 있다. 

 

미국인의 일상을 파고든 중국의 영향력은 미국 전역에서 확인할 수 있다. 동부에서 서부로 이어지는 40번 국도를 여행하다 보면 휴게소에서 심심찮게 만나는 것이 중국산 인형뽑기 게임기다. 게임기 앞에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미국인들이 줄줄이 서 있고, 바구니 가득 인형을 뽑아간다. 중국제 게임기 안에는 중국제 인형이 가득하지만 일상의 즐거움이 된 이들에게 인형의 '국적'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10달러짜리 중국뷔페식당도 미국인의 단골집이 됐다. 그동안 피자 조각으로 끼니를 때우던 미국의 장삼이사들은 색다르고 다양한 음식을, 그것도 배부르도록 실컷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중국식당과 음식이 주는 일상의 즐거움을 그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중국제품이 미국인에게 선택이 아니라 필수품이 된 지 오래다. 혹자는 '25%의 관세폭탄'을 거론한다. 그렇다고 미국인의 일상을 바꿀 수 있을까. 오히려 관세전쟁이 시작되면 추가비용은 인형뽑는 사람과 뷔페먹는 사람이 부담해야 할지 모른다. 

 

몇 년 전 ‘중국제 없이 살아보기 프로그램’이 방영된 적 있다. 한국·미국·일본 3개국 일반 가정에서 중국제를 빼고 얼마나 생활할 수 있을지 실험하는 내용이다. 결과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각 가정에서 장난감, 학용품, 게임기, 우산, 라이터, 이쑤시개 등 이것저것 중국제를 없애고 나니 별로 남는 게 없었다. 어른, 아이 가릴 것 없이 일상의 불편함은 말할 것도 없고 생활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가 됐다. 

 

이것이 중국의 힘이다. G2시대의 주도권을 미국이 쥔 듯 보이지만, 미국인의 일상을 볼모로 잡은 중국이 과연 열세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미국이 두려워하고 바이든이 긴장하는 진짜 이유는 단순히 중국제품에 있지 않다. 오히려 본질은 미국의 속살을 헤집고 스멀스멀 스며드는 ‘중국인’에 있다 하겠다. 지금은 폭죽을 팔고 인형과 장난감을 만드는 중국인을 무서워하지만 더 무서운 ‘미래의 중국인’이 기다리고 있다. 

 

양적 팽창이 질적 변화를 초래한다는 마르크스의 말처럼 지금 중국에선 14억 인구의 질적 전환이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사이버 세계에서 경쟁력을 갖춘 중국인이 미국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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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회 핵심축으로, 1980년 이후 출생한 30~40대 청년층이 바로 그들이다. 소위 ‘빠링허우(80後) 세대’인 이들은 대략 2억 명에 달한다. 앞선 세대와 비교하면 학력이 높고 자유로운 사고를 가지고 있으며 국가의 구속으로부터도 자유롭다. 새로운 형태의 생산과 소비의 주체로 자리매김한 '디지털 노마드'이기도 하다. 전환기에 출생한 이들 특수세대는 변화에 대한 적응력이 강하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경험이 있다고 자신한다.

 

빠링허우를 이해하려면 그들의 ‘푸념’에 귀기울여 볼 필요가 있다. 이들이 출생할 당시엔 중국정부가 ‘계획생육’이라는 프로젝트를 가동해 ‘한 가정 한 자녀 낳기’라는 산아제한을 강제했다. 이 때문에 형제자매 없이 독생자(獨生子)로 성장했고 '샤오황디(小皇帝·소황제)'가 됐다.

그러나 막상 그들이 결혼을 하게 되자 부부가 양측 부모 4명을 부양해야 되는 상황이 됐다. 더욱이 최근 산아제한 정책이 폐지되면서 자녀도 2명 이상 돌봐야 하는 처지가 됐다. 시대의 굴곡을 온몸으로 겪고 있다는 방증은 이뿐이 아니다.

이들이 출생하면서 중국의 개혁개방이 시작됐고, 철이 들 무렵에는 냉전이 해체되고 본격적인 개방개혁이 시작됐다. 이들이 초등학교를 다닐 무렵에는 대학 학비가 없었지만, 이들이 자라 대학에 다닐 때가 되자 대학 학비가 부과됐다. 대신 초·중등학교는 의무교육이 돼 학비가 없어졌다.

그들이 학생일 때는 국가가 직장을 배분했는데 그들이 졸업해서 구직할 때는 직장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워졌다. 그들이 돈을 벌 수 없을 때는 주택이 분배됐지만 그들이 돈을 벌게 되자 집값이 너무 올라 집을 살 수 없게 됐다.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는 속담처럼 사회주의 계획경제에서 자본주의 시장경제로 전환되면서 혜택은 사라지고 부담만 가중된 것이다. 중국에선 억울해도 너무 억울한 세대가 됐다.

그럼에도 빠링허우는 부모세대가 겪은 문화대혁명을 비롯한 혼란에 비하면 조건이 좋다고 말한다. 오히려 이러한 경험 때문에 적극적이고 낙관적이 되었다며 뿌리 강한 나무처럼 어느 곳에 이식하든 살아남을 수 있다고 자신한다.

이런 성향을 가진 세대는 갇혀 있지도 않았다. 개방된 세계로 적극 진출한 것이다. 특히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기점으로 빠링호우의 해외유학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억 여명의 자유로운 빠링허우는 생산자이면서 소비자로서, 사업주이자 구매자로서 세계 곳곳에 스며들었고 온라인 쇼핑시장을 주도했다. 미국이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지난 4월24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핑퐁외교 50주년 기념행사에서 왕치산 국가부주석은 "과거 작은 공으로 큰 공을 움직여 중·미 관계 정상화라는 역사적 과정을 열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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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태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곱씹어보면 왕치산의 이번 언급은 ‘1971년 중·미 관계가 작은 탁구공 정도였는데도 지구를 움직일 수 있었지만,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이후 중·미 관계가 농구공으로 격상된 상황에서 양국은 과연 무엇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반문이 아닐 수 없다. 왕치산은 트럼프정부가 행한 무역전쟁을 비난하면서 바이든정부에게 새로운 주문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애국적인 빠링허우 세대를 홍위병으로 앞세운 중국과 농구공에 걸맞는 거래를 하자고!


이정태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중국사회과학원 법학연구소 박사후 연구원(2003~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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