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원들이 정책 발굴을 위한 선진지 견학이란 명분으로 주민 혈세를 들여 다녀오는 공무국외출장의 결과가 제대로 공개되지 않고 있다. 지방의원들 스스로 관련 조례 및 규칙을 만들어 출장계획서 및 출장보고서를 공개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를 지키지 않는 지방의회가 상당수인 것으로 확인됐다.
공개된 보고서마저 부실 논란을 피하지 못한다. 지방의원들은 1인당 평균 430여만원에 달하는 세금으로 공무국외출장을 다녀왔지만, 제대로 된 보고서도 작성하지 않는 실정이다. 타 지방의회의 보고서를 그대로 베껴 제출하는가 하면, 일부는 인터넷 포털 사이트 검색 내용을 차용한 사례도 다수 확인됐다.
이처럼 정보 미공개 및 표절 의심 보고서가 만연하면서 지방의회의 도덕적 해이가 심각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도별 대구경북 33개 지방의회 국외여비 예산. <지방행정 365, 생성형AI>
◆지방의회 평균 6천500만원…지방의원 1인당 430여만원
14일 영남일보가 행정안전부 지방행정 365를 통해 제9대(2022~2026년) 대구경북 지방의회 국외여비 예산을 확인한 결과, 대구시의회와 경북도의회 등 광역의회, 대구 9개 구·군의회와 경북 22개 시·군의회 등 기초의회는 지난 5년간 총 107억8천200만원을 국외여비로 책정했다. 연평균으로 환산하면 21억5천640만원에 달한다. 지방의회 1곳당 연평균 6천534만원, 지방의원 1인당 연평균 429만5천원 이다.
지난 5년간 국외여비가 가장 많았던 곳은 경북도의회로 12억1천300만원이었다. 가장 적은 곳은 성주군의회와 영덕군의회로 각 1억400만원이었다.
33개 지방의회의 국외여비 예산은 2022년 16억5천600만원, 2023년 19억4천800만원, 2024년 22억9천600만원, 25년 24억8천700만원, 2026년 23억9천500만원으로 대체로 증가세를 보였다.
지난해 11월6~14일 경북 시군의회의장협의회가 미국과 캐나다를 방문한 경산시의회 보고서(왼쪽)와 청도군의회 보고서(오른쪽)는 내용과 형식 등에서 동일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각 의회 보고서 발췌>
◆서로 베낀 출장 보고서…글씨체까지 '복붙'
영남일보는 제9대 대구경북 33개 광역·기초의회 홈페이지에 게시된 공무국외출장 보고서를 전수 분석했다. 홈페이지 접속이 불가했던 경산시의회와 게시물 이동으로 내용을 확인할 수 없었던 영양군의회를 제외한 31개 지방의회 홈페이지에는 결과보고서 145건, 계획서 83건, 심사위원회 85건 등 총 344개 게시물이 등록돼 있었다.
이 가운데 자카드 유사도 분석이 가능한 293건을 살펴본 결과, 표절 의심 문건은 25건으로 전체의 8.53%를 차지했다. 이 중 유사도가 50% 이상인 것은 12건(48%)이었고, 20~50%는 10건(40%), 20% 이하는 3건(12%)이었다.
나무위키·위키백과 등 인터넷 문서를 거의 그대로 베껴 온 경우도 있었다. 대구 북구의회의 2023년 공무국외출장 결과보고서는 출장지인 독일 뮌헨을 설명하면서 위키백과 내용 중 268자를 사실상 '복붙'하는 등 표절 의심 정황이 확인됐다. 총 143쪽 분량의 보고서에서는 체코 프라하, 독일 뮌헨·프랑크푸르트, 헝가리 부다페스트, 오스트리아 빈 등을 설명한 총 9쪽에서 표절이 의심됐다.
지난해 11월6~14일 경북 시군의회의장협의회가 미국과 캐나다를 방문한 출장보고서는 서로 똑같이 베끼거나 내용·구성의 유사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경산시의회, 경주시의회, 고령군의회, 구미시의회, 김천시의회, 문경시의회, 봉화군의회, 상주시의회, 성주군의회, 영천시의회, 울릉군의회, 청도군의회, 칠곡군의회 등 13개 기초의회의 의장과 의사팀장, 사무국장, 사무과장, 주무관 등 29명은 복지·지방자치·도시재생 정책 등을 살펴보고 기초의회의 정책 역량을 높이겠다며 미국 뉴저지주 해링턴 파크 자치구, 뉴욕 브루클린 네이비 야드, 캐나다 나이아가라 폭포 등을 방문했다.
하지만 출장보고서는 각 기초의회의 정책 역량을 높이겠다는 취지와 달리 동일하거나 매우 유사했다. 지역별 인구구조나 행정·산업 기반이 다른데도 경산시의회와 청도군의회의 보고서는 형식 및 분량, 내용이 모두 같았다. 심지어 사진 자료와 글씨체까지도 동일했다. 문경시의회 보고서도 경산시의회·청도군의회 보고서와 '출장 개요' 부분만 다를 뿐 나머지 내용과 형식은 같았다. 성주군의회는 사진 자료 일부만 변경했을 뿐 보고서 내용은 타 기초의회 보고서와 동일했다. 구미시의회 보고서는 뉴욕 도시재생 사례를 설명하면서 '경북 내 유휴 산업부지(철강·공단·구 공장 등)를 혁신 산업 거점으로 재창조하는 데 참고자료 활용'이란 내용을 넣었는데, 이 역시 다른 기초의회 보고서와 거의 동일했다.
그나마 이들 기초의회는 베낀 보고서라도 제출해 상대적으로 양호한 편이었다. 경북 시군의회의장협의회는 의장단 공무국외출장 계획에서 출장자 명단 및 업무를 밝히면서 의장들의 업무 내용에 '출장보고서 작성'을 명시했으나, 경주·고령·김천·봉화·상주·영천·울릉·칠곡 등 8개 기초의회는 보고서 자체를 게시하지 않았다.
전종률 청도군의회 의장은 지난 13일 영남일보와의 통화에서 미국·캐나다 출장을 함께 간 타 기초의회의 보고서와 내용·형식이 모두 같은 이유에 대해 "지금 개소식 준비로 바쁘다"며 "나중에 물어봐 달라"고 답변을 거부했다.
이동협 경북 시군의회의장협의회장(경주시의회 의장)은 "지난해 12월 출장보고서 작성 및 결재를 완료했으나, 직원의 실수로 제출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경주시의회 의정팀 직원은 "모든 국외출장보고서는 국외출장연수정보시스템에 올리고 있는데, 제출이 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된다"고 말했다. 의회 홈페이지에 게시하도록 한 규칙을 지키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집행부와 함께 가는 국외출장 등의 경우엔 의회 홈페이지에 게시하고 있는데, 협의회 출장은 성격이 달라 의회 홈페이지에 올리지 않았다"며 "다음부터는 규정대로 하겠다"고 말했다.
영양군의회는 홈페이지 의정활동 정보공개란의 국제교류현황(공무국외출장등) 항목에 2022~2024년 사이의 '공무국외출장 귀국보고서'라는 제목으로 6건을 등록했지만, 첨부 파일 등 보고서 내용은 확인할 수 없었다. <영양군의회 홈페이지 캡처>
◆일부 지방의회, 국외출장 결과보고서 미공개·지연공개
각 지방의회는 의원 공무국외출장 조례 또는 규칙을 스스로 제정해 출장계획서와 결과보고서를 제출·심의·공개하는 절차를 두고 있다. 이 조례·규칙에는 공무국외출장의 범위와 심사위원회 설치, 공무국외출장 제한, 출장계획서 및 출장보고서 제출, 사후관리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출장계획서는 출국 45일 전에 홈페이지에 게시하고 심의위원회엔 출국 30일 이전에 제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출장보고서는 60일 이내에 홈페이지에 게시해 열람이 용이하도록 하고 활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하지만 몇몇 지방의회는 스스로 조례와 규칙을 제정했음에도 주민들이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의회 홈페이지에 결과보고서를 공개하지 않고 있었다. 지방자치의 입법기관인 의회 스스로 주민과의 약속을 어기고 있는 것이다.
영천시의회는 2025년 의원 공무국외출장 심사위원회 회의록과 계획서만 게시하고 결과보고서는 게시하지 않았다.
영양군의회는 홈페이지 의정활동 정보공개란의 국제교류현황(공무국외출장등) 항목에 2022~2024년 사이의 '공무국외출장 귀국보고서'라는 제목으로 6건을 등록했지만, 첨부 파일 등 보고서 내용은 확인할 수 없었다. 헤당 게시물에는 '게시물이 관리자에 의해서 이동됐다'는 안내만 표시돼 있었다.
대구 동구의회는 2023년 7월13~17일 몽골초청에 따른 방문의 계획서와 결과 보고서를 약 1년 10개월 후인 지난해 5월26일 홈페이지에 게시했다.
이순연 대구 동구의회 사무국장은 "2023년 7월 몽골출장 결과보고서가 지난해에서야 올라간 것은 당시 담당자의 실수로 파악했다"며 "담당자 변경으로 결과보고서를 게시해야 하는지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이후 이를 인지하고 늦게라도 결과보고서를 게시해야 한다고 판단해 올리게 됐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공무국외출장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은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이같은 지방의회의 잘못된 관행이 만연하다고 지적했다.
장우영 대구가톨릭대 정치외교학 교수는 "제도로 만들어 놓은 사항을 제출하지 않거나, 2년씩이나 깜빡한다는 것은 의도적인 것으로 볼 수 있으며 담당자 징계 사유"라며 "협의체의 출장이라고 하더라도 천편일률적으로 같은 보고서를 제출하는 것은 누구 하나가 총대를 메고 쓴 보고서를 서로 공유한 비윤리적인 행위"라고 꼬집었다.
이어 "지방의회는 조례와 규칙을 만들 수 있는 자치입법 권한을 갖고 있다. 지역공동체가 준수해야 할 공동의 규범인 조례와 공적 영역 종사자들이 지켜야 하는 사무집행의 기준인 규칙을 스스로 만들고도 지키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이들 스스로 지키지 않는다면 보고서 제출 과정에 외부 전문가 심사 등을 도입하고, 모든 의회가 준용할 수 있는 표준화된 사무처리규칙을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권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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