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격 훼손" "선의 왜곡" 대구시의 화이자 백신 수입 논란 전말은?

  • 노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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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6-06 17:42  |  수정 2021-06-07 07:17  |  발행일 2021-06-07 제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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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진 대구시장이 지난 2월 대구 중구 계명대 대구동산병원에 마련된 코로나19 예방접종센터를 방문해 백신 보관시설을 살펴보고 있다. <영남일보 DB>

대구시의 화이자 백신 수입 논란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은 "대구시가 가짜 백신 해프닝으로 대한민국 국격을 평가절하시켰다"고 비난했고, 대구시는 "지자체 차원에서 백신 도입을 추진한 게 아니라 대구의료계를 대표하는 단체인 메디시티 대구협의회에서 정부를 돕기 위해 나선 것"이라는 반박 입장문을 내놨다. 보건복지부와의 협의도 진행했다고 밝혔다. 특히 "대구의료계의 노력을 '국민의 생명을 볼모로 한 위험천만한 사기극'으로 폄훼한 것은 유감스럽다"고 강조했다.
 

대구시의 화이자 백신 수입 논란의 발단은 권영진 대구시장이었다. 지난달 31일 백신 접종을 독려하는 담화문을 발표한 후 질의응답 과정에서 백신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시끄러워졌다. 논란이 커지면서 백신 도입 최종 결정권을 가진 보건복지부는 검증이 필요하다고 밝힌 데 이어 지난 3일 '수입하지 않겠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정부의 발표에도 후폭풍이 거세게 몰아치고 있다. 대구시를 향한 비난의 강도가 높아졌다. 백신 수입을 위해 선입금을 했다는 말까지 나오면서 '백신 피싱'을 당했다는 논란으로 이어졌다. 권 시장의 사과를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도 등장했다. 정부의 백신 수급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를 냈던 까닭에 권 시장은 더욱 정치적 비난의 타깃이 됐다.

일부 시민들도 권 시장을 향해 비판의 날을 세우고 있다. 내년 지방선거와 맞물려 3선 욕심에 무리수를 둔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또다른 한편에선 대구시가 과도하게 비난받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대구시의 선의가 정치적인 이유로 왜곡됐다는 것이다. 집단면역 형성을 위해 백신 접종이 필수적이고, 대한민국에 부족한 백신 도입을 위해 노력한 게 도대체 뭐가 잘못됐느냐는 주장이다. 정부를 패싱한 것도 아니고, 협의를 하는 과정이었다는 정황도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특히 보건복지부가 밝힌 것처럼 정부에 이런 제안을 하는 경우가 없지 않았는데, 유독 대구만 비난의 대상이 된 것도 석연찮다. '정치 논리'의 개입이 논란을 부추긴 꼴이 됐다.

◆ 화이자 백신 수입 추진은 메디시티대구협의회
대구시와 대구지역 의료계에 따르면, 화이자 백신 수입을 추진한 것은 메디시티대구협의회(이하 협의회)다. 백신 수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상황에 협의회는 정부를 돕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수소문에 나섰고, 의료 등을 취급하는 한 회사로부터 '가능할 것 같다'는 말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협의회는 수입 업체와 서류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민간단체가 아닌 대구시장 명의의 공문을 요청받았고, 지난 4월 27일 대구시에 추진 상황을 전달했다. 대구시는 백신 도입은 중앙정부의 소관 사항인 만큼 보건복지부와 협의할 것을 권고했다.

협의회는 같은 달 29일과 지난 5월 30일 두 차례에 걸쳐 보건복지부 공무원을 만나 그간의 진행 상황을 설명하고 관련 자료를 전달했다. 보건복지부의 권고에 따라 대구시는 대구시장 명의의 구매의향서를 협의회에 작성해줬다. 협의회는 이를 수입 업체에 전달했다.

물밑에서 진행되던 백신 도입 문제는 권 시장의 발언으로 갑작스럽게 수면 위로 올라왔다. 당시 권 시장은 "지자체가 공격적으로 (백신을) 구입하는 건 불가능하다"며 "의사회, 메디시티협의회 중재로 정부 제공 백신 이외 국내 도입하는 부분은 상당 부분 진전되어 정부에 토스해줬다. 그게 성사되면 조기에 백신이 굉장히 많이 들어올 것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또 "대구시와 메디시티협의회, 의사회가 백신 공급 유통 쪽으로 협의하면서 어느 정도까지 진전시켰지만 그 다음 단계는 정부의 몫"이라고 설명했다.

권 시장의 발언은 '독'이 됐다. 협상 파트너로부터 대구시장 명의에 대한 회신이 오기 전에 이런 내용이 공개되면서 일이 꼬여버렸다. 지난 1일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사회전략반장은 "화이자 본사에 정품 여부를 파악하고 있다"고 했고, 3일에는 "백신의 신뢰성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절차를 추진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 내렸다"고 밝혔다. 한국화이자도 같은 날 입장문을 내고 "해당 업체의 제안은 합법적으로 승인되지 않은 제안"이라고 못 박았다.

◆ 대구시, 대구 의료계 "선의 왜곡"
대구시의 화이자 백신 논란이 확대된 데는 권 시장의 '성급한' 발언이 크게 작용했다. 권 시장은 정부에 앞서 미리 공개했다. 백신 문제는 민감하다. 백신 접종이 다른 나라에 비해 늦다는 비판이 일면서 정부는 예민해 질대로 예민해진 상태다. 권 시장이 평소 SNS를 통해 정부의 백신 정책을 비판해온 터라 '미운 털'도 단단히 박혔다.

대구시는 정부 모르게 독자적으로 백신을 도입한 게 아니다. 협의회는 화이자 백신 수입이 가능할 것 같다는 한 업체의 제안을 받고 어느 정도 실무작업을 진행한 다음 보건복지부에 알렸다. 대구시와 협의회는 물론 보건복지부도 지난 4월과 5월 두 차례 만남을 가진 것을 인정했다.

여준성 보건복지부 장관 정책보좌관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한국 판권은 화이자에 있고, 따라서 민간 무역회사와는 계약을 할 수 없다. 이미 그 사실을 4월 말과 5월 말에 재차 확인해서 대구시에 알려줬다"며 대구시와 협의회가 정부를 패싱한 채 독자 수입을 추진한 게 아니라는 점을 확인해줬다.

'선입금'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대구시는 지난 4일 입장문을 통해 "백신 도입과 관련해 대구시에서 집행한 예산은 전혀 없다"고 밝혔고, 협의회도 "단 한푼도 없다"고 했다. 추진하던 계약 물량이 6천만 도즈라 조단위의 돈이 들어가는 데다 정부가 최종 결정하는 구조인데 아무런 결정권이 없는 협의회나 대구시가 어떻게 돈을 먼저 지불할 수 있겠느냐는 게 협의회 측의 설명이다.

대구 의료계는 백신 도입 논란이 정치권으로 번지면서 왜곡된 측면이 있다고 말한다. 백신 접종을 통해 코로나19를 조속히 벗어나도록 도우려는 선의를 외면하고, 정치적인 유불리를 따지면서 왜곡·확대됐다고 지적한다.

지역 의료계 한 관계자는 "백신이 코로나19를 끝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데 정부 차원에서 백신 수급이 어렵다면 대구시는 물론 관련 기관이 나서서 도울 방법을 찾는 게 당연한 일 아니냐. 왜 이토록 비난받아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이런 민감한 거래의 경우 상호 간 비밀유지 계약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명쾌한 해명이 불가능하다. 불필요한 오해와 의혹이 그치기를 바란다"라면서 "권영진 대구시장이 정부의 결정 이전 성급하게 공개한 탓에 선의마저 왜곡받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노인호기자 sun@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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