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칼럼] 메르켈의 유산

  • 이유재 독일 튀빙겐대학교 한국학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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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수정 2021-08-18 07:13  |  발행일 2021-08-18 제면
16년 최장기 총리 獨 메르켈

뛰어난 위기 관리자로 기억

사회적변화 대응 설계 한계

기후위기·디지털화 소홀해

미래 내다보는 어젠다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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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재 독일 튀빙겐대학교 한국학과장

9월에 치러질 독일 총선이 끝나면, 독일에서 16년 보수당 기민련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시대는 막을 내린다. 메르켈에게는 통일 독일의 동독 출신 첫 총리, 독일 역사상 첫 여성 총리, 비스마르크와 콜과 같은 최장기 집권 총리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다.

메르켈은 뛰어난 위기 관리자로 기억될 것이다. 그의 임기 동안 세 개의 큰 위기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메르켈은 성공적 위기 관리자로 이목을 끌었다. 첫 번째는 2008년 재정위기와 유로위기였다. 메르켈은 예금주 누구도 본인의 돈을 상실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를 주었고, 그 약속을 지켰다. 유로위기에 따른 그리스 문제에서는 유럽연합을 실제로 이끄는 나라가 독일이라는 것을 전 세계적으로 명실상부하게 보여주었다. 두 번째 위기는 2015년 시리아 내전으로 난민들이 유럽으로 밀려 들어왔을 때였다. 이때 메르켈은 난민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고 선언하면서 100만명 이상의 난민을 독일에 받아들였다. 마지막 위기는 코로나19 위기다. 독일은 서양국가 내에서는 비교적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가 적은 편이다. 백신 접종률도 매우 높은 편으로, 현재 18세 이상의 73.8%가 1차, 66.8%가 2차 접종을 마친 상태다.

보수주의는 보통 위기관리에서 능력을 과시한다. 비스마르크가 산업화와 근대화, 그리고 콜이 독일 통일과정에서 보여 주었듯이 현상유지를 표방하는 보수주의는 급변하는 환경이나 압도적 위협에 맞서 현재의 안정성을 되찾는 것을 우선시하고 실용주의를 앞세워 사람들의 두려움을 빠른 시간에 해소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위기관리는 항상 하나의 반응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보수주의는 현상 유지에 멈추지 않고 사회적 변화를 설계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메르켈의 유산은 그렇게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기후위기에 대해서는 가치보수주의자들이 누구보다 먼저 자연과 지구의 보전을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메르켈은 그의 임기 동안 기후문제와 에너지문제를 소홀히 하였고 임시방편적인 정책만 내놓았다. 이주와 난민의 문제도 장기적으로 해결된 것은 거의 없다. 이주민들의 통합문제도 그렇고, 계속되는 시리아 난민과 지중해 아프리카 난민문제도 마찬가지다. 디지털화 측면에서도 너무 오랫동안 손을 놓고 있었다. 코로나 시대에 이 약점은 무엇보다 더 크게 노출되었다. 학생들의 온라인 수업부터 관공서의 서류처리까지 독일은 이 분야에서 아직 개발도상국가처럼 여겨질 정도였다. 디지털화는 기계학습과 인공지능의 개발로 이어지면서 기존 인간의 도덕과 윤리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와 비슷하게 고령화 시대 보건, 의료, 돌봄의 문제를 지난 16년 동안 소홀히 한 것이 코로나 시대에 얼마나 큰 피해를 야기했는지 볼 수 있었다. 생명기술에서도 인간의 존엄 문제같이 이런 보수주의의 핵심주제들이 본격적으로 받아들여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사회학자 랄프 다렌도르프는 1980년대 사회민주주의의 빈곤에 대해 말하면서 자본주의를 길들이고 복지국가가 설립된 이후 사회민주주의는 이제 그 임무를 다했다고 한 것 같이 정치학자 토마스 비브리허는 보수주의의 실용주의적 위기관리가 성공적인 만큼 보수주의의 내용을 상실했기 때문에 독일의 보수주의는 이제 지쳐버렸다고 한다.

메르켈의 후임은 앞으로 30년, 50년을 내다보며 기획하는 관리와 설계 어젠다가 필요할 것이다. 보수주의는 선거에서 다시 다수를 차지할지는 모르지만 더는 반응하는 실용주의만으로는 세기의 도전에 맞설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유재 독일 튀빙겐대학교 한국학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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