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이애슬론팀 내 가혹행위에 시달리다 숨진 고(故) 최숙현 선수(당시 22세) 사건의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에 대한 법원 판결이 모두 확정됐다. 이들은 대부분 '실형'을 선고받았다. 고 최 선수가 극단적 선택을 한 지 1년 5개월 만이다.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 감독·주장·팀닥터 모두 실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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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고(故) 최숙현 선수를 비롯한 경주시청 철인3종팀 소속 선수를 폭행한 혐의를 받은 김규봉 감독이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대구지방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영남일보 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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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고(故) 최숙현 선수에게 가혹행위를 한 혐의를 받고 있는 경주시청 철인 3종팀 전 주장 장윤정씨가 법원의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은 후 대구지방법원을 경찰과 함께 나오고 있다. <영남일보 DB> |
김 전 감독은 2014년 9월부터 2017년 5월까지 고 최 선수를 비롯해 선수들을 상습적으로 때린 혐의, 선수들로부터 전지훈련 항공료 명목의 금액을 받아 가로챈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됐다. 장 전 선수는 2015년 8월부터 2019년 7월까지 소속팀 다른 선수에게 고 최 선수를 폭행하도록 지시하거나 직접 때린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두 사람은 선수들에게 많은 양의 과자나 빵을 먹게 하는 등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고, 고 최 선수에게 공황장애 등 상해를 입게 한 혐의도 받았다.
대법원 2부(주심 대법관 민유숙)는 "원심 판단에 자유심증주의(증거의 증명력을 법관의 자유 판단에 맡기는 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밝혔다.
앞서 1심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팀 안에서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장기간 폭언과 폭행, 가혹행위를 했고, 고 최 선수는 고통에 시달리다 22살의 나이에 극단적 선택을 했다. 피고인들이 참회하고 용서를 구하지만, 최 선수는 그 사과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며 "(김 전 감독은) 선수가 인격적인 모멸감을 느낄 정도로 비인격적인 대우를 했고, 이로 인해 피해 선수들은 자긍심을 잃고 운동하는 데도 회의감을 느꼈다. (장 전 선수는) 영향력을 이용해 상습 폭언과 폭행을 저질렀고, 피해자들은 운동을 계속하려 피고인에게 벗어나지 못한 채로 고통에 시달렸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항소심 재판부도 1심 형량을 유지했다.
고 최 선수 등을 폭행한 혐의로 이들과 함께 기소됐던 김도환 선수는 대구고법 2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그가 대법원에 상고하지 않으면서 형은 확정됐다.
이른바 '팀 닥터'로 불린 운동처방사 안주현(45)씨는 대구고법에서 선고받은 징역 7년 6월 및 벌금 1천만 원의 형이 확정됐다. 안씨는 2심 판결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장을 제출했지만, 지난 8월 상고를 취하했다.
그는 선수들을 상대로 수기치료, 물리치료 등 무면허 의료행위를 하고, 그 대가로 선수 21명으로부터 7년간 356회에 걸쳐 2억여원을 뜯어낸 혐의로 기소됐다. 또 마사지나 근육을 풀어준다는 등의 명목으로 여자 선수들을 강제추행하고 유사강간한 혐의도 받았으며, 최 선수가 아침에 복숭아를 먹지 않았다고 거짓말한 이유로 최 선수와 다른 선수들을 폭행한 혐의 등으로도 재판에 넘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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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 직장운동부 운동처방사로 일하며 고(故) 최숙현 선수를 비롯해 운동선수들을 폭행한 혐의를 받은 안주현씨가 지난해 7월 오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대구지방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영남일보 DB> |
고 최 선수 사건으로 파생된 재판들도 마무리 단계에 있다.
지난 12일, 대구지법 형사12부(부장판사 이규철)는 사기 혐의로 기소된 김규봉 전 감독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그는 2017년 1월, 실제로 전지훈련에 참가하는 선수단 인원은 7명임에도 9명이 참가하는 것처럼 경비를 산출한 허위 훈련계획서를 경주시체육회에 제출하는 등, 2019년 1월까지 9차례에 걸쳐 2억8천500만원여의 지방보조금을 가로챈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부는 함께 기소된 전(前) 경주시체육회 사무국장, 전 경주시 공무원 등 관계자 5명의 '사기' 혐의에 대해선 "피고인들이 공모해 경주시체육회를 '기망'하고 돈을 뜯어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단, 사기 혐의와 함께 '공문서위조' 혐의도 받았던 경주시 소속 체육팀 관계자의 경우, '출입국 사실 증명서' 5장을 위조해 제출한 사실이 인정돼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앞서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위반죄로도 기소된 안주현씨는 지난 6월 대구지법으로부터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안씨는 지난해 7월 22일에 열린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철인 3종 경기 선수 가혹행위 및 체육 분야 인권 침해에 대한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하라는 요구서를 받고도 출석하지 않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또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의 '동행 명령장'을 수령하고도 청문회 출석을 거부한 혐의로도 기소됐다. 안씨와 검사가 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하지 않으면서 이 판결은 확정됐다.
◆22세에 세상 등진 최숙현...선수 인권보호 강화조치 생겨나
고 최 선수의 안타까운 사연은 지난 6월 그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서 세상에 드러났다. 그는 당시 어머니에게 "엄마 사랑해. 그 사람들 죄를 밝혀줘"라는 문자 메시지를 남기고 세상을 등졌다. 고인이 숨지기 앞서 4개월 동안 고인이 경주시청, 검찰, 경찰, 대한체육회, 대한철인3종협회, 국가인권위원회 등에 피해 사실을 알렸음에도, 어느 한 곳에서도 도움을 받지 못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안타까움을 더했다.
최 선수 사망 후, 운동계 만연한 폭력을 근절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르면서 관계 당국, 국회 등은 대책을 마련했다. 일각에선 '사후약방문'식 사태 수습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국회는 '국민체육진흥법 일부개정법률안', 일명 '최숙현법'을 제정했다. 지난 2월부터 시행에 들어간 최숙현법은 △체육인에게 인권침해·비리 인지 시 즉시 신고 의무 부과, 신고자·피해자 보호 조치 강화 △직권조사 권한 명시, 조사 방해·거부 시 징계 요구 등 스포츠윤리센터 조사권 강화 △가해자에 대한 제재 및 체육계 복귀 제한 강화 △상시적 인권침해 감시 확대 및 체육지도자 등에 대한 인권교육 강화 △체육계 표준계약서 도입 및 실업팀 근로감독·운영관리 강화 등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지난 3월 인권위는 경주시와 경주시체육회의 관리 감독이 부실했다는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김규봉 전 감독과 장윤정 전 선수는 대한철인3종협회에서 '영구제명'처리됐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학생선수 인권보호 강화 방안'을 발표했고, 교육부는 매년 '학생선수 폭력 피해 전수조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최근 발표된 올해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 초·중·고 학생선수 351명(0.63%)이 폭력 피해를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신체폭력은 지난해(47.9%)에 비해 올해(30.3%) 감소했지만, 오히려 언어폭력 비중은 지난해 42.7%에서 올해 51.7%로 증가했다. 특히 중·고등학교 학생선수의 언어폭력 증가 및 신체폭력 감소 폭이 초등학교 선수에 비해 상대적으로 큰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부는 이번 결과를 바탕으로, 가해자 중 학생 선수에 대해선 학교폭력 사안처리 절차에 따라, 학교운동부 지도자에 대해선 아동학대 신고 및 징계처리 절차에 따라 조치하고 있다. 이달까지 조치를 완료할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폭력 정도가 심각하거나 조직적 은폐·축소가 의심되는 사인은 교육부·교육청 합동 특별조사를 실시한다는 방침이다.
한편, 지난 1월 대구지법에서 있었던 안주현씨에 대한 1심 선고 후, 고 최 선수의 아버지는 "딸이 세상을 등지며 '운동 가혹행위'의 심각성을 몸으로 표시했다고 생각한다. 딸이 마지막 문자로 '진실을 밝혀달라'는 이야기를 남겼는데, 사회적 관심 덕분에 많은 진실이 밝혀졌다. 앞으로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게 지속적인 관심을 부탁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서민지기자 mjs858@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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