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 장애인 서인수 시인. |
초록 눈은 하늘의 표정을 읽고
잎과 잎 사이 구름의 노래를 듣고 있네
나는 초등학교 삼학년 때 주운 폭탄
폭발 사고로 청신경 마비되어 고도난청 되었네
말을 한마디라도 더 알아들으려고
지나가는 입술을 뚫어져라 쳐다보네
나무와 나는 참 닮았네
나무는 밤하늘 달빛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나는 사람들 입술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나무는 별들하고 수화를 하고
나는 하늘나라 어머니하고 수화를 하고
나무와 나는, 슬픈 마음이 참으로 닮았네
<수화하는 나무>
"남의 입술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겨우 말을 알아채고, 들을 수 없으니 늘 세상 밖에 혼자 떨어져 외로웠다"고 말하는 시인은 "그저 가슴이 답답하여 시를 썼고, 답답한 마음이 진정되면 시 낭송을 했다. 목청이 녹슬지 않도록 자꾸자꾸 말문 여는 연습을 한다"고 했다.
그가 시와 만나게 된 것은 도서관 시 창작교실에서다. 들을 수 없으니 속기사와 동행했다. 강사의 입술과 속기사의 기록을 번갈아 보며 열심히 공부했다. 자신보다 더 힘든 장애우들이 희망 잃지 말길 소망한다는 그에게 시와 수필 쓰기는 마음을 치유하고 평생 응어리진 가슴의 한을 풀어주고 있다. 이제 그는 눈으로 소리를 보고 매화 향기도 말처럼 듣는다.
눈으로 바라보는
비바람 소리
솔 향기 코로 맡으며
시원하게 흐르는 계곡물 소리 본다
귀가 멀어
나는,
새소리를 본다…
<'소리를 보다' 중에서>
매화꽃 향기는 말처럼 들렸네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귀머거리인 나는
흘러가는 구름의 말을 알아들으려고 하였네…
어느 날 엄마가 사 오신 보청기를 끼었네
말소리 못 알아들어 왕왕 소리만 나던 나의 귀
사랑하는 그녀를 처음 만난 날처럼
그날 종일 내 귀엔 매화꽃만 피었네
<'매화꽃이 피었네' 중에서>
김동원 시인은 해설에서 "서인수의 시집은 크게 장애인의 애환과 애절한 사모곡과 시에 대한 간절함으로 요약된다. 그에게 언어는 씻김의 장소이자 소통의 공간이다. 상처를 치유하는 역할이자 방백의 성소이기도 하다"고 평했다.
글·사진=천윤자시민기자kscyj8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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