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과 한국문학] 참다운 세상의 발견, 홍대용의 '의산문답'

  • 조유영 제주대 국어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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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1-20   |  발행일 2022-01-20 제22면   |  수정 2022-01-20 07:16
조선 실학자 홍대용의 명저
서양 문물로 변화된 세계관
성리학 비판·평등사회 주장
자연중심주의 세계관 통해
인간의 반성적 사고 일깨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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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영 제주대 국어교육과 교수

조선 후기 실학자 담헌(湛軒) 홍대용(洪大容·1731~1783)은 충청도 천원군(현 천안시) 수촌마을에서 당시 노론의 유력 가문에서 맏아들로 태어났다. 하지만 출세길이 보장되어 있는 과거를 일찍이 포기하고 김상헌을 배향했던 석실서원에서 학문에만 전념하였으며, 북학파로 알려진 박지원·박제가 등과 교유하기도 하였다.

그의 생애에서 가장 결정적인 사건은 35세(1765) 때 동지사(冬至使) 서장관(書狀官)이 된 숙부 홍억을 따라 자제군관으로 청나라 연경(현 베이징)을 다녀온 일이었다. 그는 연경에 머무르며 천주교 선교사들과 교류하면서 서양의 앞선 과학기술을 경험하였고, 청나라 지식인들과의 토론을 통해 자신의 세계관을 확립하였다. 그리고 '의산문답'은 그의 변화된 세계관과 사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의산문답'은 중국 남만주의 명산 의무려산을 배경으로 가상의 인물인 실옹(實翁)과 허자(虛者)의 문답으로 구성된다. 작품에 등장하는 허자는 30년간 독서를 통하여 당대 유학에 대한 모든 것을 체득한 이로, 60일간의 베이징 방문을 통해서도 실익이 없자 낙심한 상황에서 의무려산에 은둔하고 있는 실옹을 만나는 인물이다. 결국 허자는 홍대용, 본인을 비롯한 당시 성리학에 얽매여 있던 조선의 선비들을 상징한다. 이에 비해 실옹은 청나라와 서구의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인 실학자라 할 수 있으며, 허자의 학문적 허위의식을 지적하는 인물이다.

작품에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펼쳐지는데, 조선의 주류 학문인 성리학의 한계를 지적하기도 하고, 인간과 만물에 대한 다양한 의견과 천문 지리와 천체의 운행에 대한 자연과학적 담론이 펼쳐지기도 한다. 또한 당시 조선 사회가 맹신했던 중국 중심의 화이관(華夷觀)이 가진 문제점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중에서 허자가 "하늘과 땅 사이 만물 중에 오직 사람만이 귀하다"고 하자, 실옹은 "무릇 사람의 오륜은 사람의 예의일 뿐이다. 떼를 지어 다니면서 서로 불러 먹이는 것은 짐승의 예의, 여러 줄기가 하나로 뭉쳐져 잎이 무성한 것은 초목의 예의이다.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사람이 귀하고 만물이 천하고, 만물의 입장에서 보면 만물이 귀하고 사람은 천한 것이며, 하늘의 입장에서 보면 사람이나 만물이 다 마찬가지일 뿐"이라고 언급한다.

이처럼 홍대용은 사람과 만물에는 귀천이 없다는 자연 중심적 세계관을 주장한다. 그리고 이러한 세계관을 인간 사회에 적용한다면 결국 인간과 인간 사이에도 당연히 귀천이 있을 수 없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평등한 사회, 누구나 인간으로서의 권리와 기회를 갖는 사회를 홍대용은 꿈꾸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밖에도 '의산문답'에는 현대인들에게도 충분히 공감을 받을 만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많이 담겨져 있다. 특히 작품에서 역설하고 있는 '역외춘추론'을 통해 절대주의적 세계관이 가진 폐해와 상대주의적 세계관의 가치를 함께 생각해 볼 수도 있고, 자연중심주의적 세계관을 통해 인간중심주의에 의해 파괴되고 있는 자연환경에 대한 반성적 사고를 일깨울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홍대용의 '의산문답'은 200여 년의 시공간을 뛰어넘어 지금도 우리에게 유의미한 가치를 전해주는 시대의 명저이자 고전이라 할 수 있다.
조유영 제주대 국어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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