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과 한국문학] '헐렁한 수다'로 함께 걸어 본 안동

  • 배지연 대구대 인문과학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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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6-30   |  발행일 2022-06-30 제22면   |  수정 2022-06-30 06:51
안동으로 떠난 인문학 여행
아동문학가 권정생의 생가
선비문화의 본원 도산서원…
지역소멸을 걱정하는 시대
다양한 목소리로 소통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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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지연 대구대 인문과학연구소 교수

지난 5월, 안동으로 특별한 여행을 다녀왔다. 지역 인문학 단체인 대구경북인문학협동조합(2014년 창립)에서는 매년 지역 인문학 총서 '인문학자들의 헐렁한 수다'를 출간해왔는데, 올봄에 간행된 '헐렁한 수다-안동편'의 출판을 기념하는 일종의 답사 여행이었다. 50여 명이 참가한 이번 여행은 저자들과 함께 이틀 동안 권정생 생가, 임청각, 백담 구봉령 종택, 264 와이너리, 도산서원, 봉정사와 하회마을 등 안동에 담긴 '인문'의 흔적을 따라 걸으며 저마다의 삶을 나누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여행은 안동시 일직면에 있는 권정생 생가에서 시작됐다. 우리 칼럼에서 여러 번 다뤘던 권정생은 평생 '강아지똥' 등 많은 문학작품을 통해 외로움과 슬픔을 지닌 이들과 공감하는 글쓰기를 해왔다. 타인의 슬픔을 오롯이 품어 안았던 권정생의 글에서 살아갈 힘을 얻은 이들은 자신만의 꽃을 피워냈으리라. 그런 점에서 권정생이 오랫동안 기거했던 일직면의 조탑마을은 '세상의 슬픔들이 꽃이 되는 곳'이라 불릴 만하다.

임청각으로 대표되는 고성 이씨 석주 가문은 3대째 9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항일명문가이다. 퇴계의 경(敬) 사상과 학풍을 삶으로 실천한 석주 가문은 한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대표한다. 백담 구봉령 종택에서는 불천위 제사를 지내며 전통의 맥을 이어가는 안동의 종가 문화를 체험했다. 일행을 극진하게 환대하는 종손 내외를 보며 스스로는 엄격하지만 타인에게 베풀고 나누는 종가의 문화가 새로운 문화자산이 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유교 사상과 선비문화의 본원을 찾아 도산면으로 향하는 길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두 문인과 마주한다. 도산서원으로 가는 돌담길을 걸으며 안동을 '추로지향(鄒魯之鄕)'이라 일컬었던 퇴계를 만났고, 그 후손인 육사의 시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청포도 와인 '광야' '절정' '꽃'을 맛보며 그들이 꿈꿨던 세상을 상상해보았다. 이날 안동에서 만난 이들의 삶터는 자신이 배우고 지향했던 바를 '앎'으로 그치지 않고 '삶'으로 행한 자들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이튿날 오전에 찾은 봉정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산사로, 소박하고 고즈넉한 산사의 정취를 맘껏 누릴 수 있는 곳이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인 극락전을 보고 대웅전을 지나 요사채 한 곁으로 난 문을 나서면 녹음에 물든 돌계단을 마주하게 되는데, 그 계단을 오르면 봉정사의 숨은 보물 영산암이 있다.

"전생이 용이었다는 석가모니/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법할 때 내렸다는 꽃비/ 그 이름을 딴 우화루 아래를 지나/ 영산암 응진전 앞에 서면 간밤 비가 내렸던가/ 만발한 나무 백일홍 아래 용을 닮은 솔가지에도/ 스님의 발자국에도 낙화 다시 붉게 피어 있다"(안상학의 시, '봉정사 영산암' 일부)

권정생 선생과의 인연으로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 사무처장을 맡기도 했던 시인 안상학은 천등산자락의 봉정사를 좋아했다. 그의 또 다른 시 '봉정사'에는 겨울의 봉정사가 담겨있다. 세상에 움직이는 것이라곤 진눈깨비밖에 없던 겨울 봉정사에서 화자는 "다시 세상으로 나가는 길"을 발견하고 있다. 오월의 봉정사 마당을 함께 거닐던 일행들도 저마다 세상으로 나가는 길을 찾는다. 탈 놀이판에서 현실의 고단함을 신명나게 날려버렸던 하회의 탈꾼들처럼, 헐렁한 수다를 떨며 안동 곳곳을 함께 거닐었던 이들도 저마다의 목소리로 세상으로 나선다. 지역 소멸을 걱정하는 이 시대, 다양한 방식으로 지역을 이야기하는 목소리들이 필요하기에 우리들의 수다는 계속된다.
배지연 대구대 인문과학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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