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여행] 예천 용궁면 용궁역, '토끼간빵' 파는 간이역…역 앞 시장 용궁순대·양조장도 명물

  •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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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7-01   |  발행일 2022-07-01 제16면   |  수정 2022-07-01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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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궁역은 1928년에 보통역으로 시작해 2004년에 무배치 간이역이 됐다. 현재의 역사는 1960년대에 지어진 것이며 '토끼간빵'을 만들고 파는 베이커리 카페로 이용되고 있다.

뜨겁다. 높은 건물도, 무성한 가로수도 없이, 낮은 건물들만이 길 양안에 늘어서 있다. 소음도 없고 새소리도 없다.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많은 차이 낮은 건물이 드리운 고양이 이마 만한 그늘에 낮잠처럼 자리한다. 예천 용궁면(龍宮面)의 면 소재지인 읍부리의 평일 낮 풍경이다. 동서로 난 읍내거리는 2㎞가 채 되지 않는다. 가시적인 남북의 거리는 400m 정도다. 서쪽 끝에는 금천(錦川)이 흐른다. 동쪽 끝에는 금천의 지류인 기천(箕川)이 흐른다. 천과 천 사이의 작은 땅이다. 연못처럼 잔잔하고.

역장·역무원 없는 무배치 기차역
서쪽 잔디밭 관광테마사업 완료 땐
조형물·영상관 들어서 볼거리 기대
용궁시장 안 순대전문 식당 10여곳
병천·백암순대와 '3대 순대'로 유명
시장 끝 붉은벽돌 2층집 용궁양조장
향토뿌리기업이자 산업유산으로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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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용궁역에서는 관광테마 조성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용궁 대신과 정어리 떼, 고래 꼬리 등의 조형물과 파고라, 영상관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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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궁시장은 상설시장이지만 4일과 9일마다 오일장이 열린다. 시장 안에 용궁면의 자랑인 제유소와 순대집이 여럿이다.


◆용궁역

그 가운데에 용궁역이 자리한다. 일제강점기인 1928년에 보통역으로 시작했다. 당시에는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1944년에는 일제가 전쟁물자 조달을 위해 경북선 점촌, 안동 구간의 철로를 철거하면서 폐역이 됐다. 이후 1966년에 경북선을 다시 놓으면서 역도 되살아났지만 도로가 나고 자동차가 보급되면서 이용객은 점점 줄어들었다. 결국 2004년, 용궁역은 역장과 역무원이 없는 무배치간이역이 되었다.

현재의 용궁역사는 1960년대에 지은 것이라 한다. 직교형 박공지붕에 잘 익은 감빛의 기와가 올라 있다. 최초의 역사와 거의 비슷한 모습이라 생각된다. 용궁역에는 지금도 김천과 영주 방면으로 가는 무궁화호 열차가 선다. 역무원이 없다 보니 용궁역에서는 기차에 올라 승무원에게 직접 표를 사야 한다.

역사 입구에서 노란 토끼가 손짓한다. 역무원이 없는 용궁역 역무실은 베이커리 카페다. 제빵실도 갖추고 있다. 이곳에서는 '토끼간빵'을 판다. 용궁이라는 지역 명에 고대소설 '별주부전'의 이야기를 더해 개발한 빵이다.

용궁이라는 지명은 오래되었다. 신라 때는 축산(竺山)이라 했다. 고려 초에 용주(龍州)가 되었다가 고려 현종 9년인 1018년에 용궁(龍宮)이 되었다. 과거 이곳엔 깊고 푸른 연못이 있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그 연못 아래 신비로운 용이 살고 있다고 믿었다. 용은 마을의 수호신이었고 가뭄이나 질병이 발생하면 마을 사람들은 함께 모여 제사를 올렸다고 전한다. 천 년이 넘은 이름이고 바닷속 그 '용궁'을 뜻하는 것도 맞다.

예천 용궁면을 본관으로 하는 용궁곡씨(龍宮曲氏)가 있다. 시조는 곡긍회(曲矜會)로 중국에서 고려에 귀화하여 고려 태조 때 벼슬을 지낸 인물이다. 그가 중국 용천(龍川) 출신이라 한다. 곰곰 생각해 보면 축산에서 용주가 된 데에 곡긍회의 고향 용천이 무관할 것 같지가 않다. 여하튼 소설 속에서 토끼의 간은 병든 용왕의 생명을 구하는 영약으로 표현된다. 용궁의 '토끼간빵'은 예천군 내에서 재배한 통밀가루와 팥, 호두 등을 이용해 만든다. 헛개나무 추출물을 넣어 실제 간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용궁역 서쪽에 잔디밭이 넓다. 사각의 단순한 매스에 박공지붕을 올린 붉은 벽돌 건물이 한 채, 과거 승강장으로 추측되는 프레임에 유리로 공간을 만든 건물이 한 채 있다. 그리고 잔디밭 가장자리에 몇 그루 풍성한 나무가 우물처럼 짙은 그늘을 드리운다. 지금 용궁역에서는 관광테마 조성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예천군과 한국철도공사 경북본부가 상호 협력을 통해 용궁역 볼거리를 만드는 중이라 한다. 역 중앙광장에는 용궁의 대신들이 방문객을 맞이할 예정이다. 잔디밭에는 파고라가 세워지고, 정어리 떼와 고래 꼬리 조형물이 들어서고, 건물은 영상관이 될 예정이다.

용궁역 동쪽은 휑하다. 공사 안내판에 따르면 주차장이 들어설 모양이다. 옛날에는 우시장이 있었다. 울타리로 선 나무들 너머로 용궁역의 옆모습이 곧장 보이는 자리였다. 10년도 더 전인 어느 겨울 새벽, 우시장의 대단한 풍경 속에 서 있었던 적이 있다. 희부윰한 안개 속에서 태양 빛이 밝아오며 우시장은 한산해졌고, 동시에 용궁 장터는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감당할 수 없는 사룟값 때문에 소를 팔았다는 아저씨는 후련한 듯 말했다. "순댓국이나 먹으러 가자. 아가씨도 같이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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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남쪽 용궁시장 앞길은 벽화거리다. 용왕님, 토끼, 순대, 참기름 등이 모두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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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궁양조장 건물은 1950년대에 지어진 것이라 한다. 현재의 양조장 건물이 들어서기 전에도 이곳에 양조장이 있었으며 술 빚는 터의 역사는 100년을 훌쩍 넘어선다고 한다.


◆용궁순대, 용궁시장, 용궁 양조장

역 앞 거리에서 왼편을 바라보면 네다섯 정도의 순대집 간판이 보인다. 오른쪽으로 가면 우체국과 파출소 지나 용궁시장이 시작된다. 시장 안에도 순대집이 여럿이다. 이 조그마한 면 소재지 안에 순대 전문 식당이 10여 곳 된다고 한다. 적지 않은 숫자다. 용궁순대는 유명하다. 천안 병천순대, 용인 백암순대와 함께 3대 순대로 불린다. 대부분 순대는 돼지의 소창 또는 대창으로 만들지만 용궁순대는 막창으로 만든다. 보통의 순대보다 피가 두툼하고 생각과 달리 육질이 연하다.

1970년대 후반, 용궁면의 동쪽 개포면에 공군비행장을 지었다고 한다. 당시 공사에 투입된 노동자를 상대로 한 식당이 여럿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대폿집을 겸한 '대은집'이 가장 인기였다고 한다. 주 메뉴는 선짓국과 오징어불고기였다. 대은집에 사람이 몰리자 하나둘 식당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대은집 할머니의 손맛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어 선지 대신 선택한 메뉴가 순대였다. 술안주로 내는 오징어불고기는 그대로 따랐다. 용궁면의 순대식당은 요즘도 순댓국과 오징어불고기를 함께 판다.

용궁시장은 상설시장이지만 4일과 9일에 오일장이 열린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장날이면 일대 장사꾼들이 수십 리를 멀다 않고 달려왔고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고 한다. 읍내에는 극장도 있었단다. 극장이 없어지고 그 자리에 교회가 들어선 지도 세월이 꽤 지났다. 한산하다. 순대집 문만이 열렸다가 닫힌다. 어디선가 고소한 냄새가 난다. 참기름 냄새다. 으레 방앗간을 떠올리지만 용궁시장에는 '제유소'라는 간판이 달려 있다. 시장제유소, 읍부제유소, 동부제유소 등 제유소도 여럿이다. '시장제유소'는 2009년에 텔레비전 프로그램 '1박2일'에 나오면서 전국적으로 이름이 났다. 용궁극장 간판을 그리던 아저씨가 '시장제유소' 간판 글씨를 써주었다는데 지금은 새로운 입체 간판이 지붕에 올라 있다.

시장 끝자락에 붉은 벽돌로 지은 단정한 이층집이 있다. 현관문 입구의 캐노피에 술 취한 막걸리 통이 올라서 있다. 용궁양조장이다. 양조장 건물은 1950년대에 지은 것이라 한다. 정확한 자료는 없지만 현재의 양조장 건물이 들어서기 전에도 이곳에 양조장이 있었으며, 술 빚는 터의 역사는 100년을 훌쩍 넘어선다고 한다. 어려운 시절도 있었다. 용궁양조장도 '1박2일'에 소개되면서 버텨낼 힘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지역의 명소이자 향토뿌리기업이자 산업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아이고 리모컨이 고장 나가지고 텔레비전이…" 오래된 이웃을 대하는 듯 아주머니의 수다가 길어진다. "오늘 새벽에 떴어. 몇 통?" "10통." 손가락이 빨개질 만큼 막걸리를 사 들고 간다. 토끼간빵이 있으니 간은 문제없다. 허물어져 가는 돌담 앞에 가지런히 놓여 있던 채소들, 걸음마다 먼지가 일던 흙길, 새벽 소들의 뜨거운 입김, 가지를 늘어뜨린 수양버들 따위가 생각난다. 장날이 터질 듯 성했고, 누군가는 아가씨라 불렸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여행 Tip

경부고속도로 대전 방향으로 가다 김천분기점에서 45번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타고 북상주IC로 나간다. 톨게이트 앞 역곡교차로에서 함창 방면으로 우회전해 직진, 윤직교차로에서 오른쪽 안동, 예천 방향으로 계속 직진하면 예천 용궁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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