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부터 바닷길까지, 포항 힐링로드 .11] 호미반도 둘레길…아우성치거나 적요하거나…매 순간 놀라운 '미혹의 길'

  • 류혜숙 작가,박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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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9-14   |  발행일 2022-09-14 제22면   |  수정 2022-09-14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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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반도 해안둘레길 2코스 선바우길은 선바우 앞에서부터 바다 위를 걷는 해상 데크길이 시작된다. 이 길은 접근하기 힘든 해안 절벽과 기암괴석들을 바로 옆에서 볼 수 있어 인기가 높다.

영일만의 가운데에 자리한 포항 신항의 남쪽으로 유난히 보드라운 모래의 청림 해변과 연오랑과 세오녀가 바위를 타고 바다 너머로 떠나갔다는 전설의 도구 해변이 길게 이어진다. 여기서부터 해안선은 호랑이 꼬리의 윗선을 따라 동진하면서 임곡·입암·마산·흥환·발산·대동배·구만과 같은 무구한 이름의 마을들을 지난다. 길은 한시도 바다로부터 눈길을 거두지 않고 이어져 저 상생의 손이 기다리고 있는 호미곶에 다다른다. 청림에서 호미곶까지, 약 25㎞에 4개 코스로 이루어진 이 길을 '호미반도 해안둘레길'이라 한다. 지나가고도 머무는 바다와 함께, 만에서 대양으로 향하는 미혹의 길이다.

청림해변 초반은 해병대 상륙훈련장
주민·여행자 위해 낮 시간대만 개방
입암리 선바우 앞서 시작 해상데크길
해안절벽·기암괴석 가까워 인기 높아
발산리엔 천연기념물 모감주 군락지
바람 거센 구만길 지나면 '상생의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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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반도 해안둘레길 1코스 연오랑세오녀길에서 만나는 '연오랑세오녀 테마공원'. 바다를 향해 미끄러지는 가벼운 산언덕에 자리하고 있다.

◆1코스 연오랑세오녀길

호미반도 해안 둘레길의 1코스는 '연오랑세오녀길'이다. 시작점은 청림운동장으로 포항시에서 둘레길 행사를 열 때면 이곳에서 출발한다. 주변에 너른 주차장과 쉼터·화장실 등이 잘 갖춰져 있고 바다는 지척이다. 청림 해변의 초반은 해병대 상륙훈련장이다. 일반적으로 개방하지 않는 곳이지만 마을 주민들과 둘레길 여행자를 위해 낮 시간대에만 개방하고 있다. 달빛 같은 모래밭이 펼쳐져 있고 해송의 숲이 길고 푸르게 뻗어 나가는 가운데 데크길이 나 있다.

청림(靑林)은 바닷가에 긴 숲이 있어 생긴 이름이라 한다. 지금 솔숲은 어려서 사방으로 탁 트인 풍경을 선사한다. 언젠가는 어엿한 청림으로 자라나 방풍림의 역할을 톡톡히 하겠지만 그때는 지금과 같은 풍경을 보지 못할 것이다. 환하고도 적요한 길은 도구해수욕장으로 부드럽게 연장된다. 한여름에는 사람들로 가득 찬다는 도구 해변은 800m나 뻗어 나가고 풍요롭고 눈부신 빛에 흠뻑 젖어 있다.

도구해수욕장을 지나면 임곡리다. 마을에 들어서면 연오랑과 세오녀를 주제로 한 벽화들이 오래된 설화를 이야기해 준다. 조용한 항구에 정박한 어선들은 바다의 호흡에 맞춰 삐걱거리고 길고양이들은 소리도 없이 느긋하게 골목길을 누빈다. 임곡항의 위쪽, 청룡회관 앞을 지난다. 해병대가 운영하는 휴양시설이었던 청룡회관은 지난해 호텔마린으로 바뀌었다. 최근 전망 좋은 숙소로 입소문이 조금씩 나는 중이다.

임곡 촌락의 동쪽 끝에 다다르면, 바다를 향해 미끄러지는 가벼운 산언덕에 '연오랑세오녀 테마공원'이 펼쳐진다. 바다를 마당으로 가진 공원이다. 전시실인 귀비고를 중심으로 신라마을·한국 뜰·일본 뜰, 연오랑과 세오녀가 일본으로 타고 간 바위이자 세오녀가 짠 비단을 싣고 돌아왔다는 쌍거북 바위 등 공원은 연오랑과 세오녀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바닷가 벼랑에는 커다란 누각인 일월대가 자리한다. 누각에 오르면 만 너머의 도시와 동쪽의 수평선이 한눈에 들어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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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반도 해안둘레길 4코스 호미길에서는 청어 떼를 기다리듯 바다를 주시하는 독수리바위가 눈길을 끈다.

◆2코스 선바우길

호젓한 억새의 오솔길과 소나무와 대나무가 울창하게 어우러진 숲을 통과해 검은 갯돌 해안을 지나면 6m 정도 높이의 뾰족한 바위가 우뚝 서 있다. 2코스가 시작되는 입암리의 선바우다. 선바우 앞에서부터 바다 위를 걷는 해상 데크길이 시작된다. 나란히 걸어도 될 만큼 폭이 넓고 단차 없이 평탄해 걷기에 아주 편하다. 특히 이 길은 접근하기 힘든 해안 절벽과 기암괴석들을 바로 옆에서 볼 수 있어 인기가 높다. 선바우를 지나면 여왕바위·손바닥 바위·남근바위·폭포바위·소원바위·킹콩바위·힌디기 등이 줄줄이 등장한다. 이 일대는 신생대 제3기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지형으로 오랜 시간 풍화되어 조각된 암석들이 대단한 장관을 보여준다. 이들 중 흰빛을 띠는 힌디기는 화산재가 쌓여서 만들어진 벤토나이트 암석으로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것이다. 힌디기 바위 구멍에 돌을 던져 넣고 소원을 빌면 부자가 된다는 전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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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반도 해안둘레길 2코스 선바우길에 자리한 자갈해변.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에 달그락거리는 자갈들의 소리가 마치 자장가처럼 평화롭게 들린다.

힌디기에서 자갈해변을 지나 데크길을 조금 가면 하선대(下仙臺) 전망대가 나온다. 하선대는 바다 가운데 살짝 드러난 바위섬으로 마을 사람들은 '하잇돌'이라고도 부른다. 동해의 용왕이 매년 칠석날 선녀들을 초청해 놀았다는 곳이다. 하선대에서부터 마산리가 시작된다. 마을 뒷산이 뛰어가는 말의 형상이라 마산 또는 말미라 부르고 산에 말을 놓아 먹였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마산리 항구에서 흥환으로 가는 길 역시 먹바우·비문바우·미인바위·신랑각시바위·군상바위 등이 즐비한 기암의 해변이라 매 순간이 놀라움이다. 머지않아 흥환 간이해수욕장이다. 작은 솔숲을 가진 작은 해변을 지나 흥환리 항구에 닿는다. 항구의 가장자리에 장기 목장성 비각이 바다를 향해 서 있다. 비각 안에는 군마 등을 키우고 관장했다는 비와 목장을 관장하던 감목관(監牧官)의 공덕비 등이 함께 세워져 있다.

◆3코스 구룡소길

흥환 항구에서부터 3코스가 시작된다. 크고 판판한 돌을 이어 길을 낸 해안길을 따라가면서 온갖 형상과 질감이 기묘한 바위들을 본다. 그러고 나면 봄마다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산과 골짜기에 꽃이 만발한다는 발산(發山)리다. 장군이 아이를 업고 영일만으로 걸어가는 모양이라는 장군바위를 지나면 발산리 항구다. 이 마을에는 세계 희귀 수목이자 천연기념물 제371호인 모감주나무의 최대 군락지가 있다. 여름에 피어났던 노란 꽃은 지고 이제 열매가 익어간다. 발산리에서 대동배리로 향하는 해안에는 절벽 아래 갯바위들과 자갈이 펼쳐져 있다. 길은 그리 길지 않지만 거듭거듭 돌아보게 되는 아름다운 길이다.

그러다 숲으로 덮인 암벽을 오른다. 동을배봉이라 부르는 벼랑이다. 벼랑 아래는 고려 충렬왕 때 아홉 마리 용이 승천했다는 구룡소가 있다. 구룡소에는 용들이 승천하면서 남긴 9개의 굴이 있는데 그중 5리가량 되는 깊은 굴은 옛날 도승들의 수도처였다고 전한다. 파도가 거칠게 들이친다. 흰 물보라가 거세게 밀고 들어오더니 왈칵 쏟아져 나간다. 소름 돋는 아우성이다.

벼랑에서 내려와 거친 낙석지대를 재빨리 돌아 나오면 대동배1리 마을이다. 대동배리의 옛 이름은 학달비(鶴達飛)다. 마을 사람들은 한달비라는 예쁜 이름으로 불렀다. 먼바다에서 보면 학이 날아가는 모습이라 한다. 좁은 자갈해안을 따라 대동배2리로 간다. 몇 채의 집들을 지나 유독 하얀 돌들의 바닷가에서 해상 데크가 이어진다. 굽이진 벼랑의 모서리에서 모아이상 바위가 턱을 살짝 들고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모아이상보다 좀 더 잘생긴 얼굴이다.

◆4코스 호미길

대동배 2리를 지나면 해안가 구만길이 호미곶으로 향한다. 거대한 침묵이 내려앉은 듯 고요하고 적요한 길이다. 그 길옆에 점점이 내려앉은 갯바위들로 팽팽하게 긴장하고 있는 구만리 바다가 열린다. 바람과 파도가 거센 날이면 청어 떼를 토해내었다는 바다, 그 청어들을 사람들이 까꾸리(갈고리)로 끌어 모았다고 까꾸리개라 부르는 바다다. 갯바위들 사이에 독수리 모양의 바위가 청어 떼를 기다리는 듯 바다를 주시한다. 까꾸리개 언덕길에는 고향 호미곶을 노래한 서상만 시인의 '나 죽어서' 시비가 서 있다.

구만길 바람이 세다. 구만리에는 '내 밥 먹고 구만 허릿등 쐬지 마라'는 말이 있다. 호미곶면사무소가 있는 언덕을 허릿등이라 하는데 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는 곳이라 생긴 말이다. '봄 샛바람에 목장 말 얼어 죽는다'는 속담도 이 지역에서 생겼다고 한다. 바람이 불어, 모든 계절이 아름다웠다고 기억한다. 덧없는 아름다움으로 가슴 먹먹한 길이 저 앞으로 나아간다. 적요했던 구만길은 대보항이 가까워지자 요란해진다. 방파제는 내항의 바다를 주름살 하나 없이 펴놓았고 그 문진 같은 방파제 너머로 갯바위들이 새 떼처럼 앉아 곶을 향해 와글와글 전진한다. 대양을 향해 시나브로 걸어가는 땅, 그 끝에서 호미곶의 실루엣이 아슴아슴 다가온다. 그 바다에 상생의 손이 기다리고 있다.

글=류혜숙<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공동기획 : 포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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