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뉴스] '85세 화가' 홍주순 할머니 "그리고 또 그려요"

  • 이명주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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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4-05 16:20  |  수정 2023-04-12 07:58  |  발행일 2023-04-12 제21면
북구 중안노인복지센터서 15일까지 전시회
2021년 색칠 공부 통해 그림의 매력에 빠져
"아프지만 마음은 편해...모든 그림이 예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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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를 앞두고 고향집(군위군 금매리)그림을 들고 홍주순 할머니가 활짝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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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감이 돋보이는 풍경화를 앞에 두고 홍주순 할머니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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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를 앞두고 홍주순 할머니가 직접 쓴 감사의 편지글.

"내 집이 10층이에요. 밤새도록 텔레비전 틀어놓아도 뭐라 하나. 불을 켜도 뭐라 하나. 자다가 일어나서 그리고, 그렇게 매일 그리다 보니 스물다섯 장짜리 스케치북, 12권이나 그렸어예."


홍주순(85) 할머니가 색칠 공부로 그림을 배운지 만 2년 만에 전시회를 한다. 지난달 31일부터 시작된 오는 15일까지 북구 중안노인복지센터(북구 읍내동)에서 열린다.


홍 할머니는 청각장애와 관절염을 앓고 있어 거동이 편치 못하다. 폐 기능까지 좋지 않아 말씀하실 때마다 숨이 찬다. 그런 홍 할머니에게 그림이란 또 다른 인생의 장이 펼쳐졌다.


"그림을 그리다 보면 아무 생각 없이 빠져들어요. 누가 문을 열고 들어와도 몰라요. 아픈 것도 잊고. 우울증도 모르고 살고 있어예."


홍 할머니는 2021년 코로나19로 인해 바깥출입이 힘들 때 처음 색칠 공부를 접했다.


"한 장은 색깔이 칠해져 있고, 한 장은 색깔이 없는 그림책인데 색칠을 하다 보니까, 방안 너머 정자가 보이고 조그만 산이 보이고 그 너머 아파트도 보이는 거예요."


할머니의 색칠 공부는 그림에 대한 눈을 뜨게 했다. 쓰레기 버리는 곳에 책이 있으면 주어오고 잡지, 신문지도 허투루 보지 않고 챙겨와서 그림의 도구로 사용했다. 그림이 나온 면을 자르고 교회 달력, 새만 있는 그림책도 훌륭한 교본이 됐다. 교회 달력은 멋진 풍경화로, 갖가지 새는 세밀화로, 할머니 기억 속 고향 금매리가 작품으로 탄생했다. '꽃피는 4월' '내 고향 금매리' '옥선아 어여 어서 가자' '내가 꿈꾸는 집' 등 다양한 제목의 그림은 전시공간이 부족할 정도로 많아졌다.


홍 할머니의 전시회가 열리는 데는 22년 동안 인연을 이어온 김정자씨의 노력이 컸다. 중안노인복지센터 상담실장이자 사회복지사인 김씨는 할머니의 그림 솜씨를 예사롭게 넘기지 않고 작품으로 태어나도록 했다. 전시장이 된 노인복지센터에 포토존을 만들고 사비를 털어 액자도 맞췄다. 할머니의 자녀들도 오고 이웃 동네 주민도 함께 감상할 자리를 마련했다. 한때 칠곡에서 개인도서관인 무지개 도서관을 운영한 경험이 바탕이 됐다.


김씨는 "홍 할머니는 점잖고 온유하다. 삶 자체가 아름다운 분이다. 아픈데도 항상 주변을 돌본다"고 했다.


늘 따뜻한 홍 할머니지만, 녹록지 않은 삶의 연속이었다. 46세에 홀로 돼 5남매를 키웠다. 고향인 군위에서 농사를 짓고 살기가 너무 힘들어 대구로 왔다. 염색공장에서 10년을 일하는 동안 다치는 일도 허다했다.


"공장에서 다쳐 병원에 누워 있는데 퇴사하라고 왔어예. 그때 육십이었어예. 아이들도 한창 학교 다닐 때라 그저 누워 있을 수 없어 아픈 몸을 이끌고 나왔지예."


홍 할머니는 큰아들을 가슴에 묻은 아픈 상처도 있었지만, 하나님이 항상 사랑해 주셔서 살아올 수 있었다며 감사해 했다.


"나는 지금 아프지만, 마음이 젤 편안해요. 자식을 보면 모든 자식이 이쁘듯이 그림도 마찬가지예요. 모두 예쁘고 귀해요."


이제 그림은 할머니의 위안이자 즐거움이다. 전시회를 앞두고 감사의 긴 편지가 눈길을 끈다.
'좋은 세상을 만나 나라에서 노인복지법이 생겨서 노인들이 살맛 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던 이 인생 홍주순은 온몸이 다친 몸이 되어 잘 걷지도 못하고 집안에서 앉아서 기어 다니던 인생이 주변의 도움으로 너무 행복하고 감사합니다.'

 

글·사진=이명주시민기자 impsee@hanmail.net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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