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뉴스] "마음으로 보고 몸으로 느껴요" 시각장애인의 봄나들이

  • 임훈송은석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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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4-18 13:54  |  수정 2023-08-09 08:44  |  발행일 2023-04-19 제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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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문학기행 참가자들이 무사히 행사를 마치고 갈계숲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거북바위
참가자들이 도우미의 도움을 받으며 거북바위 앞 돌다리를 건너고 있다.

"발밑에서 바스락대는 대지의 느낌, 물소리, 새소리, 코끝을 스치는 숲 향기와 손끝으로 전해오는 나무와 꽃. 우리는 마음으로 보고 몸으로 느끼며 세상과 대화합니다."


'시각장애인에게 여행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박덕수(75)씨의 대답이다. 그는 40대에 시력을 잃은 중도 시각장애인이다.

지난 14일 대구점자도서관(관장 강춘구) 주최로 제11차 독서문학기행이 열렸다. '거창의 봄, 풍류에 취하다'란 테마로 열린 행사에 시각장애인과 도우미를 합쳐 80여 명이 참가했다. 첫 일정은 수승대 출렁다리였다. 202개의 가파른 계단을 올라 240m 길이의 출렁다리를 건넌 후, 산기슭으로 나 있는 700m 둘레길을 걸어 수승대 거북바위에 이르는 코스다.

주최 측에서 자신 없는 참가자는 차량으로 이동할 것을 권했지만, 대부분이 출렁다리 코스를 완주했다. 81세 박명자 할머니도 있었다. 코스 내내 박 할머니 곁에는 도우미로 함께 한 외손녀가 자리했다. 박 할머니에게 외손녀는 '눈'이었다. 흙, 돌, 나무뿌리, 계단 등 바닥 상황을 꼼꼼하게 할머니에게 전했고, 수시로 길 가까이 있는 나뭇가지를 당겨 할머니가 만져볼 수 있게 했다. 70대 초 시력을 완전히 잃은 박 할머니는 옛 기억이 떠오르는지 외손녀와 함께 참꽃을 따 먹기도 했다.

둘레길을 걷는 도중 고마운 분들도 만났다. 반대편에서 오는 여행객들은 참가자들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처음엔 좁은 둘레길에 두 사람씩 나란히 손을 잡고 걸어오는 모습을 불편한 시각으로 바라봤지만, 이내 시각장애인용 지팡이를 보고 길을 양보했다.

수승대 거북바위 앞. 시원스레 흘러내리는 위천계곡 물소리가 참가자들의 발걸음을 붙들었다. 참가자들은 잠시 너럭바위에 앉아 계곡물에 손을 담갔다. 청각, 촉각, 후각을 동원해 그들만의 방식으로 거창 제일 경승지 수승대를 즐겼다.

점심 식사 후 창포원을 거쳐 숲옛마을에서 떡메치기 체험을 했다. 시력은 잃었지만 떡메 치는 솜씨는 비장애인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청각과 촉각만으로도 마치 눈으로 보고 치는 듯 떡메는 반죽 중심에 정확히 내리꽂혔다.

마지막 일정으로 참가자들은 가랑비를 맞으며 갈계숲을 걸었다. 겹벚꽃이 예쁘게 피었다고 알려주니 "꽃색깔이 연분홍이냐, 진분홍이냐"며 물었고, 바닥이 흙길에서 잔디로 바뀌자 "바닥이 매트냐, 잔디냐"며 다시 물었다. 마음으로 보고 온몸으로 느끼는 게 시각장애인의 여행 방식이다.


글·사진=송은석 시민기자 3169179@hanmail.net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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