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뉴스-시민기자 세상보기] 딸의 꿈을 향한 '숭고한' 돈

  • 이원욱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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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5-16 10:36  |  수정 2023-05-16 10:37  |  발행일 2023-05-17 제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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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욱 시민기자

얼마 전 대구도시철도 역사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지하철 계단에서 지갑을 주워 역사에 맡긴 일이 있었는데, 주인이 지갑을 찾아가고 며칠 뒤, 나에게 감사의 의미로 호두과자를 맡기셨다는 전화였다. 감사히 마음만 받겠다고 거절하려니, 답례하는 성의에 대한 예의가 아닌 듯했다.


출근하던 중에 지하철 계단에 떨어져 있던 지갑을 주웠던 그날, 묘하게도 내 지갑을 깜빡하고 집에 두고 나왔다. 다행히 가방 속에 비상용으로 항상 가지고 다니던 천원 짜리 지폐 두어 장이 있었고, 교통비로 쓰면 되겠다며 안도했다. 그 때 지하철 계단에서 현금이 두둑한 지갑을 발견했다. 예고에 없던 비도 갑자기 내렸다.


이제 와 고백하자면 '만 원만 꺼내 우산을 사고, 저녁에 내 돈으로 메꿔서 돌려드릴까'하는 생각도 잠시 했었다. 그러나 주인분이 노심초사하며 지갑을 찾아 헤매고 다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곧장 분실물 센터로 향했다. 결국 그날 옷이 다 젖은 채 출근을 했다.


호두과자를 찾고, 감사히 잘 먹겠다며 지갑 주인과 통화를 했다. "그날 저희 가족이 운이 좋았는지 아이 대학 합격 소식도 듣고 잃어버릴 뻔했던 지갑도 찾았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기분 좋은 목소리가 전화기를 통해 전해졌다.


아침 일찍 딸아이의 대학 합격 소식을 듣고, 들뜬 마음으로 움직이다 지갑을 흘린 모양이었다. 지갑 속 현금은 딸 아이의 대학입학 등록을 위해 어렵게 마련한 목돈이라고 했다. 만약 우산을 사고 지갑을 밤늦게나, 다음 날 역사에 맡겼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아찔했다.


가끔 돈이 단순히 재화의 개념을 넘어서는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낡은 리어커에 의지한 채, 폐지를 주워 팔면서 평생을 모은 돈을 아무런 대가 없이 어려운 아이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기부한 할머니나, 연말 자선냄비 속에 매년 꾸준하게 거금을 보내는 익명의 천사 또한 돈과 관련한 가슴 따듯한 이야기다.


무엇보다 세상에서 가장 값진 돈은 힘겹게 벌어 본인에게 엄격하게 쓰더라도,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서는 아낌없이 쓰는 돈이 아닐까. 사랑하는 이의 꿈을 이루게 하는 돈. 그날 나를 스쳐 갔던 돈은 숭고했다.
이원욱 시민기자 judge520@naver.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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