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뉴스] 93세 할배가 이끄는 성암산 지킴이..."오늘도 오른다, 쓰레기 주으러"

  • 천윤자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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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5-09 11:06  |  수정 2023-05-09 12:57  |  발행일 2023-05-17 제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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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경북 경산 성암산에서 장권국(맨앞) 어르신 등 일행이 쓰레기를 주우며 등산하고 있다.

"나이 들어 할 일이 없으니 매일 산에 오르는 거지 뭐. 사람도 만나고 즐거워. 쓰레기는 버리고 가는 사람이 있으니 그냥 줍는 거야."


지난 3일 경북 경산 성암산 제6체육시설. 올해 93세의 장권국(경산 옥산동) 어르신이 나타나자 미리 와 있던 몇몇 사람들이 기구운동을 멈추고 "할배"하며 반갑게 맞는다. 오래 전부터 호칭을 그렇게 정한 듯하다. 너무 친근하게 대화를 주고받기에 단체에 소속된 사람들이냐고 물어 봤더니 고개를 가로 젖는다. 일행 중 한 명이 "에이~ 단체는 무슨…. 전부 다 제각각 따로 따로 (산에) 왔다가 산에서 자주 만나게 되다 보니 친하게 된 거지"라며 웃는다. 장 옹을 제외한 일행의 연령대는 60~80대로, 대부분 퇴직 후 시간적 여유가 생긴 사람들이다.


장 옹은 "경기도에서 살다가 경산으로 이사 온 후 성암산 아랫마을 옥산동에 쭉 살고 있다"며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성암산에 오른 지 10년이 넘었다"고 했다. 일요일엔 왜 등산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일요일은 자녀들이 오기도 하고 또 일주일에 하루는 쉬는 날도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답했다. 정년퇴직 후로도 72세 때까지 용역회사에서 일을 했다는 그는 "일을 더 할 수도 있었는데 '나이가 많아 혹시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나' 회사에서 염려하는 것 같아 그만두었다"고 했다.


오랫동안 출근하던 습관 때문인지 산에 오르는 것도 출근하듯 한다. 오전 10시30분쯤이면 어김없이 제6체육시설에 도착한다. 일행은 쉼터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하고는 남쪽으로 난 정상 가는 길이 아닌 뒤쪽으로 난 비교적 평탄한 길을 택했다. 장 옹이 앞장을 서고 몇 사람이 뒤따른다. 일반 등산객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들의 준비물 중에는 '집게'가 있다는 것. 가는 동안 쓰레기를 주워 봉투에 담는다. 목표한 지점에 도착하고 보니 바로 '바람고개'다. 오면서 주운 쓰레기는 이미 봉투 하나를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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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권국(앞줄 가운데) 어르신과 성암산 지킴이들이 본격적인 등산을 하기 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신현락(여· 66·중방동)씨는 "친정아버지 같은 어른이 매일 올라오셔서 자연보호까지 하시니 함께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며 "오늘은 비교적 적은 인원이 모였다. 약속 없이도 매일 10여 명에서 20여 명이 함께 할 때도 있다. 처음 시작할 때보다 그래도 쓰레기가 많이 줄어든 것 같다"고 했다.

 

자리를 잡은 후 각자 메고 온 배낭을 열고 마치 소풍 온 듯 가져온 간식을 꺼내 놓는다. 계란·참외·오렌지·떡·호두파이·커피…. 장 옹도 사과 하나를 꺼내 놓는다. 삽시간에 푸짐한 '산상(山上)뷔페'가 차려졌다. 권헌출(83·압량읍)씨는 "이틀에 한 번씩 산에 오른 지 11년째다. 자주 오다 보니 자연스레 친구가 되고 뜻이 맞아 같이 쓰레기도 줍고 산불감시도 하며 정을 나눈다"고 했다. 유석수(70·옥산동 )씨는 "양심이 찔려서 그런지 쓰레기를 벼랑에 던지는 사람들이 많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마음이 편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는 사이 산은 병든다"며 차라리 눈에 띄는 곳에 버려 주길 바랐다. 그는 이어 "여기 함께하는 분들은 모두 성암산 지킴이다. 불편사항이나 위험한 곳은 시청에 건의도 한다"며 "이곳에 정자 하나 지어 주면 더없이 좋겠다"고 했다.


글·사진=천윤자 시민기자 kscyj83@hanmail.net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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