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뉴스] "나처럼 못 배워 고통받지 않길"…80대 기부천사 끝없는 고향사랑

  • 김점순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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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7-04 15:37  |  수정 2023-07-05 08:44  |  발행일 2023-07-05 제21면
박자연 회자장학회 이사장
경양식 가게 차려 자수성가
성주에 평생 모은 11억 쾌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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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자연 회자장학회 이사장이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과 함께 포즈를 취했다. 김점순 시민기자 coffee-3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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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자장학회에서 지난 5월 성주중학교 가천분교 입학생 7명에게 장학금을 수여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첫째줄 모자 쓴 사람이 박자연 이사장. <박자연 이사장 제공>


지난달 20일 성주군 가천면 가야산 능선의 한적한 산골 마을. 전 재산을 성주군에 기증하고 매년 성주중 가천분교 입학생 1인당 100만원 씩 장학금을 전달하는 '회자(膾炙)장학회' 박자연(88) 이사장을 만났다. 낡은 '몸빼바지(일바지)'와 티셔츠 차림의 소박한 모습이었다. "아이고, 신문에 낼 이야기도 아닌데 이 먼 길을 오셨네요." 박 이사장이 겸연쩍게 웃었다.

성주 가천이 고향인 박 이사장은 2남 4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10살 때 아버지를 졸라 겨우 초등학교에 입학했지만, 그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학업을 중단해야 했다. 15세에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났다. 시골에서 농사지을 땅 한 평도 없어 희망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19세에 낯선 도시 부산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부산과 서울을 오가며 가난에서 해방하고자 악착같이 일하며 돈을 벌었다.

36세인 1973년 그동안 모은 돈으로 서울 종로구에 경양식당을 개업했다. 입소문이 나면서 유명 인사들이 찾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돈을 벌면서도 가슴 한켠에 항상 배우지 못한 아쉬움이 컸다. 무엇보다 고향의 후배들이 자신처럼 배우지 못한 한(恨)을 가지고 살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현재 학령인구 감소로 폐교된 가천고교 설립(1975년)에도 앞장섰다. 또 성주중 가천분교장의 전신인 가천중에 회자(膾炙) 장학회를 만들어 학생들을 지원했다. 회자(膾炙)는 '널리 칭찬을 받으며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는 의미다.

가천중의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 박 이사장은 지난 2020년 가천초등 학생 5명에게 340여만 원을 기부했고, 2021년 가천중 입학생·졸업생 7명, 2022년 8명, 2023년 7명에게 각각 100만원 씩 장학금을 지급했다. 성주중 가천분교를 졸업해 성주군 소재 고교로 진학하는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기도 했다. 식당을 운영하면서 1970~80년대 뜻을 같이한 출향민 3~4명과 함께 가천중·고교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박 이사장은 "장학금을 줬던 청년 중 한명이 대학 교수가 됐는데 얼마 전 찾아와 정년퇴직했다며 '엄마, 감사해요'라며 50만원을 주더라"고 말했다.

박 이사장은 서울에서 23년 동안 장사를 했다. 평소 어려운 이웃을 돕고, 봉사와 선행에 앞장서 1989년부터 1991년까지 서울 한별라이온스클럽 회장을 역임했다.

2015년 성주 가천으로 귀향해 자신이 평생 취미로 모은 미술 작품을 내건 이름 없는 미술관도 열었다. 미술관에는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이 한자로 쓴 '사필귀정' 휘호를 비롯해 크고 작은 작품 106점이 전시되어 있다.

박 이사장은 2021년 12월 평생 모은 재산 11억 2천 600여 만원 상당의 대지와 건물, 임야 등을 성주군에 기증했다.

"고향 성주를 위해 마지막으로 작은 기여를 하고 싶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전쟁과 보릿고개를 겪는 등 고생을 많이 하고 배우지 못함이 평생 한이 됐는데, 어려운 사람들이 꼭 필요한 곳에 사용하길 바랍니다."

박 이사장은 자신에게 잘 투자하지 않는다. 지금도 구멍 난 양말은 물론 속옷을 꿰매 입을 정도로 근검절약을 실천한다.

"여기는 물 맑고 공기 좋아 살기도 좋아예. 지나는 길 있으면 한 번씩 들려 차 한잔하고 가이소. 1층에서 자고 가도 됩니더." 박 이사장의 고향 사랑이 예사롭지 않다.

글·사진=김점순 시민기자 coffee-33@hanmail.net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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