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미시즈 해리스 파리에 가다'(안소니 파비안 감독 · 2022 · 영국, 프랑스)…"우리에겐 그 어느 때보다 꿈이 필요해요"

  • 김은경 영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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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7-21 08:48  |  수정 2023-07-21 08:50  |  발행일 2023-07-21 제3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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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경 (영화 칼럼니스트)

얼마 전, 오랜 버킷리스트였던 그리스와 이탈리아 남부를 여행했다. 장시간의 비행 중 제공되는 다양한 음식과 풍성한 영화가 아니었다면, 여행은 시작도 전에 지쳐 버렸을 것이다. 기내 영상에는 '슬픔의 삼각형'과 '미시즈 해리스 파리에 가다'처럼, 평소 보고 싶던 영화가 가득했다. 특히 두 영화는 귀국 후 한 번 더 챙겨 봤을 만큼 좋았다. 신랄한 블랙 코미디인 '슬픔의 삼각형'과 달리 '미시즈 해리스 파리에 가다'는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코미디다. 이왕이면 보고 나서 행복해지는 영화를 추천하고 싶다. 스트레스 많은 세상, 영화에서까지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물론 개인적 견해다.

1957년 런던, 전쟁에 나간 남편의 사망 소식을 들은 미시즈 해리스는 여러 방법으로 모은 돈을 가지고 난생처음 파리에 간다. 목적은 디오르의 명품 드레스를 사는 것이다. 청소부로 일하던 주인집의 황홀한 디오르 드레스는 그녀를 꿈의 세계로 인도한다. 모두가 만류하지만, 과감하게 파리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간신히 찾아간 디오르 매장에서 문전 박대를 당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여러 가지 경험들이 펼쳐진다. 애초에 계획했던 당일치기 여행은 어림없는, 긴 여정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미국 작가 폴 갈리코 원작으로, 1992년에도 영화로 제작된 바 있다. "마음속에 품고 있는 꿈이 있나요?"라는 포스터 문구가 말해주듯, 이 영화는 꿈에 대한 이야기다. 엎치락뒤치락하는 이야기가 재미있고, 착하고 용감한 주인공이 마침내 행복해지는 영화다. 그 과정에 수많은 좌절과 역경이 기다리고 있음은 당연하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미소가 번져오고, 마음이 따뜻해진다. 성인용 동화 같은 면이 있지만, 인생을 향한 메시지가 있고, 디오르의 드레스만큼 기품이 있다. 배우들의 연기가 매력적인데, 특히 미시즈 해리스 역의 배우 레슬리 맨빌의 연기가 빛난다. 화려한 패션쇼도 눈을 즐겁게 한다. 흥행은 성공하지 못했지만 여러 매체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선의로 빚은, 디오르의 드레스만큼 아름다운 이야기"라는 평이 영화를 잘 표현한다.

베스트셀러 '여행의 이유'에서 김영하는 "모든 여행은 끝나고 한참 시간이 지나서야 무엇이었는지 알게 된다"고 했다. 오랜 꿈이었던 나의 여행은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본다. 아테네도, 산토리니도 아름다웠다. 나폴리도, 소렌토도, 카프리섬도 꿈결 같았다. 일상으로 돌아오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파리에서 돌아온 미시즈 해리스는 어땠을까. 신기한 것은 온갖 우여곡절을 겪고 돌아온 그녀의 얼굴에 광채가 난다는 것이다. 입고 있는 디오르 드레스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꿈을 이룬 자의 긍지 같은 것이다. 그녀에게는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온 이의 지혜와 당당함이 있었다. 나의 여행 이후도 아주 조금은, 그녀를 닮았으면 좋겠다.

꿈을 이룬 자의 당당함으로, 혹은 꿈을 좇는 자의 생기와 열정으로, 가슴 뛰는 삶을 살기 바란다. '꿈꾸는 청소부' 미시즈 해리스의 말을 중얼거려본다. "우리에겐 그 어느 때보다 꿈이 필요해요"라고.

영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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