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뉴스] 팔순의 시각장애인 정연원씨 첫 수필집 내고 북콘서트

  • 천윤자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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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7-25 11:37  |  수정 2023-08-09 08:36  |  발행일 2023-08-09 제24면
화마에 아내와 시력 잃어
이후 20여년 삶 담담히 그린
'그리운 나무 그늘이여'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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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급시각장애인 정연원(앞줄 가운데)씨가 팔순을 맞아 최근 첫 수필집 '그리운 나무 그늘이여'를 출간하고 출판기념 북콘서트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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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의 1급시각장애인 정연원(가운데)씨가 첫 수필집 '그리운 나무 그늘이여' 출판기념 북콘서트에서 '저자와의 대화' 시간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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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을 맞아 최근 첫 수필집 '그리운 나무 그늘이여'를 출간한 정연원 전 대구시각장애인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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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수필집 출판기념 북콘서트에서 큰며느리와 손녀가 지켜보는 가운데 축하 케이크 촛불을 끄는 정연원씨.
"화재 사고로 아내와 시력을 잃었지만 '녹음도서' 읽기로 새로운 삶을 찾았습니다. 그러다 아비의 재활을 위해 온갖 정성을 기울여준 자식들 자랑을 하고 싶어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정연원 전 대구시각장애인문화원장이 팔순을 맞아 첫 수필집 '그리운 나무 그늘이여'를 출간했다. 지난 20일 북랜드출판사 내 '글이랑 라온'에서 열린 출판기념 북콘서트에는 그동안 함께 글쓰기를 해온 화요수필 문우들, 시각장애인문화원 회원들, 수필가, 그리고 큰며느리와 손녀 등 30여명이 참석해 정 전 원장의 출간을 축하했다.


발문을 쓴 장호병 한국문인협회 부회장이 작품세계를 소개하고, 오랫동안 함께 글쓰기를 해온 백제호씨가 축사를 했다. 문장작가회 여남희 회장은 에머슨의 시 '무엇이 성공인가'를 낭송했다. 이어 저자와의 대화 시간이 마련됐다. 원래 작곡가였던 정 전 원장은 신일전문대(현 수성대)에서 음악교수로 재직하던 2000년 불의의 화재 사고로 1급시각장애인이 됐다. 수필집 '그리운 나무 그늘이여'는 화마로 아내를 잃고 시력마저 빼앗겨 암흑세계에 놓인 그가 이후 20여 년 살아온 인생2막 이야기를 담고 있다.


책 제목 '그리운 나무 그늘이여'는 헨델의 오페라 '세르세' 제1막에 나오는 아리아의 제목에서 따왔다. '헨델의 라르고'라고도 불리는 이 아리아는 플라타너스 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던 페르시아왕이 나무 그늘의 고마움을 노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 전 원장의 표제작인 동명의 이 작품은 시골 중학교에 다니던 작가가 쌀 포대를 교습비로 지불하며 피아노를 배우게 해준 아버지에 대한 고마움과 그리움을 담은 글이다. 정 전 원장은 "아버지가 그리울 때면 '헨델의 라르고'를 듣고, 감사하고 싶을 때는 '그리운 나무그늘이여'를 부른다"고 했다.


이 책의 특별한 점은 작품에 등장하는 음악을 QR코드로 첨부해 둬 독자들이 글과 함께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책속에는 베토벤교향곡 6번 1악장 등 모두 11개의 QR코드가 있다. 표지 그림은 큰며느리인 정미영씨가, 5부(△그리운 나무 그늘이여 △영혼의 동반자 △가지 치는 나무 △꿀밤나무 숲에서 △곶감 )로 나누어진 본문 그림은 5명의 손주가 각각 그려 시아버지와 할아버지를 응원하고 있다.


북콘서트에서 화요수필 회원들은 정 전 원장의 작품집에 실린 '나는 걷는다' 전문을 돌아가면서 낭독했다. 사위와 딸의 보살핌으로 사물의 형태가 보일 정도로 시력을 회복한 작가가 하루 1만보 목표를 세우고 형제봉을 오르게 된 사연이다. 걸으면서도 끊임없이 녹음도서를 듣는 그가 접한 책은 1년에 600여 편에 이른다.


정 전 원장은 "베토벤 최고의 실내악 피아노 3중주 '대공'처럼 나에게도 '재활'이라는 이름의 3중주단이 만들어졌다. 피아노처럼 가장 역할이 많은 큰며느리, 바이올린처럼 예쁜 작은 며느리, 첼로처럼 전체를 받쳐주는 딸이 나의 재활을 돕는다"며 자식들에 대한 고마움을 전했다. 장호병 한국문인협회 부회장은 "베토벤이 청각을 잃고 피아니스트에서 작곡가로 변신해 예술세계의 우뚝한 별이 되었듯 시력을 잃고 20여년의 암흑세계를 헤쳐 나온 이야기 '그리운 나무그늘에서'는 글로 그린 정교한 악보이자 베토벤 못지않은 인간승리의 오케스트라다"고 평했다.


글·사진=천윤자시민기자kscyj83@hanmail.net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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