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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완 논설위원 |
로마제국 17대 황제 코모두스는 폭군이면서 무능했다. 로마 쇠락의 시작점도 코모두스 재위 때였다. 코모두스는 자신을 신격화하고 기행을 일삼았다. 스스로 검투사가 돼 콜로세움 경기장에 서기도 했다. '어느 날 경기장에서 원로원 의원들이 맨 앞줄에 앉아 관람하고 있었다. 그날 코모두스의 상대는 타조였다. 코모두스는 돌진해오는 타조를 단칼에 베었다. 그런 다음 의원들을 돌아보며 칼을 한 번 휘둘렀다. 마음만 먹으면 너희들 목도 이렇게 순식간에 날려버릴 수 있다는 듯이'(시오노 나나미 '로마인 이야기-종말의 시작'). 암군 코모두스는 현군 아우렐리우스의 친아들이다. 로마 '최고의 황제'가 낳은 로마 '최악의 황제'였다.
무능한 임금 선조와 인조는 전란을 불렀고, 역시 무능한 패륜군주 수양제는 왕조의 단명을 자초했다. '군주론'을 쓴 마키아벨리는 "국민에겐 무능한 군주보다 차라리 사악한 군주가 낫다"고 했다. 경국지색(傾國之色)? 미인이 나라를 기울게 한다? 아니 군주의 무능이 나라를 기울게 한다. 공직자의 무능은 재앙을 빚는다.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조직위원회에서 '무능의 극치'를 봤다. 잼버리 조직위는 지난 8일 충남 홍성군 혜전대학 기숙사에 예맨 대원 175명을 배정하겠다고 통보했다. 홍성군과 혜전대는 환영 현수막을 걸고 출장뷔페 음식도 준비했다. 하지만 이튿날 저녁때까지 이들은 오지 않았다. 조직위는 예맨 대원들이 우리나라에 입국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이날 밤늦게야 확인했다. 같은 날 경기도 고양시 NH인재원에 배정된 시리아 대원 80명도 입국하지 않았다. 조직위가 대원들 입국 여부조차 모른다? '개판 5분 전'의 상황이 이랬을까.
국민의힘이 잼버리 파행의 책임을 엄하게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직 감찰, 감사원 감사, 강제수사까지 주문했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조직위와 전북도 등 관련 기관 담당자를 다 포함해야 한다. 한데 강제수사까지 동원하겠다며 왜 국정조사는 언급하지 않는지 의아하다.
반추해보니 윤석열 정부에선 '읍참마속'이 없었다. 대통령과 연이 닿는 '성골' 고위직에겐 책임을 묻지 않았다. 159명이 희생한 이태원 사고에도 행안부 장관과 경찰청장은 건재했다. 오송 참사 때도 충북도지사와 청주시장은 열외로 돌렸다. 선출직이어서 그랬다나. 선출직은 신성불가침인가. LH(한국주택토지공사) 무량판 아파트 사태도 임직원의 무능과 부패에서 비롯된 것 아닌가. 하지만 윤 대통령은 이한준 사장에게 책임을 묻기는커녕 복마전 LH의 혁신을 맡겼다.
해병대 수사단장 파문도 요상하다. 수사 주체가 졸지에 '집단항명 수괴' 혐의를 받다니. 상식적이진 않다. 외압의 냄새가 물씬 난다. 항간엔 이명박 정부 청와대에 같이 근무했던 소위 'MB 카르텔'의 파워가 작동했다는 소문이 나돈다.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은 해병대 수사단의 태생적 한계다. 이러고서야 고위직 문책이 가능하겠나.
읍참마속을 '삼국지'의 서사로만 치부하면 무능을 징비하기 어렵다. 사연(私緣)과 진영 논리를 넘어 일벌백계로 무능과 무사안일을 응징해야 한다. 알베르 카뮈는 "어제의 범죄를 벌하지 않는 건 내일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일"이라고 했다. 오늘의 무능에 눈 감는 건 미래의 인재(人災)를 방치하는 거나 다름없다. 징비는 징계할 징(懲), 삼갈 비(毖)다. 직위 불문, 친소 불문 엄히 책임을 물어야 비로소 경계하고 삼갈 것이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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