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 세월 헤치며 의학교육 선도…국내 의료발전의 굵직한 기틀

  • 강승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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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8-29  |  수정 2023-08-29 07:43  |  발행일 2023-08-29 제13면
경북대 의과대 100주년 발자취

1923년 대구자혜의원 사립의학강습소로 출발 '근대의학교육의 터전'

이후 지역민 성원 힘입어 도립의학전문학교 승격…1952년 경북대 개교

연구시설·교수진 확충 등 교육환경 개선 적극 투자…매년 출중한 의사 양성

격동의 세월 헤치며 의학교육 선도…국내 의료발전의 굵직한 기틀
2016년 열린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표석 제막식. 우중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참석하는 등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경북의대 제공>


경북의대 개교 100주년은 과거 성취와 역사를 되새기는 좋은 기회다. 그리고 향후 100년 동안 어떤 변화와 발전이 있을지 상상해보는 계기로도 활용될 수 있다. 이를 기념하는 다양한 행사는 의학계와 지역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격동의 세월 헤치며 의학교육 선도…국내 의료발전의 굵직한 기틀

◆한강 이남, 근대의학교육 문 열어

1923년 7월 대구자혜의원 부속 사립의학강습소가 강습기간 3년으로 설립 인가받았다. 이로써 한강 이남에서 근대의학교육의 터전이 시작됐다. 이듬해 경상북도립 대구의학강습소로 승격됐고, 1926년 4년 과정으로 개편됐다. 1927년 한국인 22명을 포함한 29명을 첫 졸업생으로 배출했다. 1930년 조선총독부 지정 의학교로 승격됐고, 졸업과 동시에 무시험으로 조선 내 의사 자격을 부여받았다. 지역 주민들의 도립의학전문학교 승격 운동에 힘입어 1933년 도립의학전문학교로 최종 승격됐다. 교실은 대구자혜의원 건물을 일부 빌려 사용하다가 1931년 303㎡의 목조건물인 해부실과 158㎡의 강의실이 준공됐다. 본관 신축은 1932년 착공식을 거행한 후 1933년 준공돼 그해 12월 낙성식을 거행했다. 대구의학전문학교는 1933년부터 1945년 광복 직전까지 760명가량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전쟁 혼란 속에서 국립 의과대학으로 성장

1945년 광복 후 대구의학전문학교는 도립 대구의원을 부속의원으로 공식 개교했다. 1946년 단과대학으로 승격해 대구의과대학이 됐다. 한국전쟁 시기에도 종합대학 건설과 교육의 필요성이 제기돼 1951년 의과대학장 고병간을 중심으로 사범대학장, 농과대학장, 대구대학장 등 4명이 발기해 국립종합대학교 건설을 위한 위원회가 구성됐다. 그리고 수차례 협의를 거쳐 마침내 1951년 10월 국립대학교 설립이 인가됐다. 1952년 5월 도립 대구의과대학과 국립 대구농과대학, 국립 대구사범대학이 합쳐지며 국립 경북대가 개교했고, 부속병원은 경북대 의과대학 부속병원으로 명명됐다. 1952년 9월 고병간이 총장에 취임했고, 9월 배종호가 의과대학장에 선임됐다. 1953년 의과대학 의예과가 문리과 대학의 의예과로 이관됐다. 이는 오늘날 경북대 의과대학의 기본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격동의 세월 헤치며 의학교육 선도…국내 의료발전의 굵직한 기틀
1910년대 대구자혜의원 모습. 1907년 문을 연 대구 동인의원을 매입했다. 그래서 모습은 동인의원 때와 같다. 당시 병원 부지는 현재 대구시청 건너편과 교동시장 사이의 한 블록을 차지할 정도로 넓었다. <경북의대 제공>

◆선진 의료체계 기틀 마련

1953년부터 UNKRA(유엔한국재건단)는 의학교육 및 의료의 재건과 부흥을 위해 경북대 의과대학과 부속병원을 대상으로 재건 공사, 교사 신축, 이동클리닉, 간호사 교육 등을 원조했다. 또한 스위스 연방위원회에 기술 자문 지원을 요청해 14명의 스위스적십자사 의료사절단 인력이 의과대학 부속병원에 파견돼 의사와 간호사를 훈련시켰다. 스위스적십자사 의료사절단은 길게는 3년을 대구에서 체류하며 병원과 검사실, 혈액은행 운영을 선진화시켰다. 극동아시아 의학교육 발전을 지원해 온 CMB는 국내 최초로 경북대 의과대학을 1953년부터 지원했다. CMB는 경북대 의과대학 교수진에게 미국 의과대학 학위 및 연수 지원을 비롯해 실험 기자재 및 장비, 의과대학 시설, 의학도서관 건립, 의학 연구 프로젝트 등을 지원하며 1969년까지 이어졌다. UNKRA와 CMB의 의학교육 기자재 및 시설 원조, 그리고 스위스적십자사 의료사절단의 기술자문 원조 덕분에 경북대 의과대학과 부속병원은 내실 있는 교육과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이뿐만 아니라, 혁신적 교육과 연구를 통한 지역사회 의료 발전이라는 전후 의료 복구의 주요 모델이 될 수 있었다.

◆대한민국 의료에서 선구적 업적 일궈

경북의대는 1950~60년대 한국 의료의 발전을 주도했다. △최초 폐절제술(고병간) △초창기 신경외과학 발전(이주걸) △최초 저온개심술(이성행) △중력생리학 분야 개척(채의업) △법의학 분야 창립(김만달) △의학교육 전환 기여(배종호) △최초 한글판 약리학 교재 출판(김종석) △콜레라·이질 등 장내세균학 분야 선도적 연구(전도기) △대구·경북 지역사회의학 주도(이성관) △우심도자술 성공 및 심폐기능 연구 개척(박희명) △소화기 내시경을 이용한 국내 최초의 조기위암 발견(정극수) △재생불량성 빈혈 연구 및 혈액학 분야 선도(황기석) △역동적 정신치료 도입 및 동서통합정신치료 분야 주창(이동식) △진균학 분야 선도(서순봉) △간흡충면역진단법 개발(최동익) △수부외과 주도(김익동) 등 분야별로 굵직한 업적을 세우며 명성을 높였다.

◆교육과 연구 공간 확장으로 발전 토대 구축

의과대학 학생 정원 증가에 따른 교실, 실험실 및 연구실 부족을 해소할 목적으로 1970년부터 설립을 준비해 온 신관은 1975년 3월 전체면적 8천653㎡ 규모로 착공됐다. 8월 4층 중 2층이 완성돼 기초교실의 실험실, 후생복지시설 및 학생회의실로 사용했다. 1976년 3·4층을 준공해 강의실 및 실험실, 간호학과 연구실이 이동했다. 1981년 학생회관을 추가로 건설하면서 새롭게 신관 교정이 단장됐다. 1986년 신관 북편 건물을 완성해 신관은 현재와 같은 사각형 모양을 갖추게 됐다. 어려운 여건에도 신관 및 학생회관이 준공됨으로써 동인동 캠퍼스의 교육 연구 인프라가 크게 확장되는 데 기여했다. 동인동 캠퍼스의 시설 개선은 1999년 신축 강의동 개관으로 이어졌다.

◆동창회, 장학사업과 학교 발전 지원

경북의대 동창회는 1945년 대구의학전문학교 출신 조선인들을 중심으로 처음 조직되기 시작했다. 대구뿐 아니라 서울, 부산 등 각지에 조직된 경북의대 동창회는 모교가 전후 재건에 힘을 쏟을 때 갖은 난제 해결을 도왔다. 특히 1960년대 북미주동창회가 창립된 직후 장학기금 모금에 앞장서며 모교 도서관에 직접 지원했고, 미국으로 연수 오는 교수들의 경비를 보조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974년 '안행' 이란 회지가 창간됐고, 1980년 동창회 사무실을 본관에 마련했다. 1987년 동창회 장학재단이 별도 법인화되면서 모교 지원 창구가 일원화·체계화됐다. 동창회 장학사업은 더욱 확대돼 2022년까지 총 1천613명이 동창회 장학기금의 수혜를 받았다. 또한 2003년부터 학술연구, 의료봉사 및 사회공헌 등 각 분야에서 주요한 업적을 남긴 동문들을 기리는 안행대상을 수여하기 시작하며 동문들의 활약과 우애를 나눴다.

◆기금교수제도 도입으로 교수진 확충

1991년 제정된 국립대병원 설치법 제15조에 따라 대학병원은 진료, 학생 및 전공의 교육과 수련, 연구 등을 목적으로 임상교수요원을 둘 수 있게 됐다. 이에 근거해 병원 임상(기금)교수제도가 실시됨에 따라 1994년 최초로 3명의 임상(기금)교수가 신규로 발령받았다. 임상교원 제도는 병원 진료 및 교육, 연구에서 부족한 인력을 채용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학생교육의 질을 높이는 데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었다. 1996년부터는 병원장 발령의 임상교수에서 총장 발령의 기금교수로 명칭이 변경됐다. 1996년 7월 총 25명의 기금교수가 임명된 이래 2001년 40명으로 그 수가 증가했다. 교수 1인당 학생 수 5.3명으로 국내 의과대학 중 교수 비율이 높은 축에 속하게 된 것이다. 2022년에는 총 166명으로 전체 교원 수의 50%에 달했다.

◆교육과정 혁신적으로 개편해 학생 중심 의학교육 실현

1996년 한국의과대학장협의회에서 의학교육 인증평가제도 도입을 확정하자 경북의대는 이에 능동적으로 대처했다. 1993년 한국의과대학장협의회의 '의과대학 의학과 예비평가 사업'에 참여했고, 1996년 정식 평가인정에 대비해 1993년도부터 교과과정 개편을 시작해 1995년에 개정을 완료했다. 순환기학 통합강의 도입, 소그룹 PBL 도입 등이 이뤄졌다. 또한 2000년 제1주기 의과대학 인정평가가 실시됨에 따라 교육과정을 대폭 개혁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1997년 해외 의과대학 및 병원을 방문 참관하고 100명에 가까운 교수진이 다양한 소분과위원회를 구성해 대대적인 개편 작업을 진행했다. 새로운 교육과정은 자율학습, 문제 중심, 환자 중심 의료인을 양성한다는 목표 아래 주입식·암기식 교육을 학생 중심의 토론식·문제해결식으로 바꾸고 통합교육과정을 기능별, 계통별로 편성했다. 블록식 강의, 자율선택임상실습 등도 도입했다. 대대적인 교육과정 개편을 통해 선진 의학교육을 구현하고 글로벌 의학교육 개편 흐름에 부응하고자 온 힘을 쏟았다. 교육과정의 선도적 개편은 의학전문대학원 체제 도입에 따라 2009년 교육과정 개편, 그리고 의과대학 체제 복귀에 따라 2015년 의예과 교육과정 개편, 2017년 의학과 교육과정 개편 2020년 의과대학 교육과정 개편으로 이어졌다.

◆칠곡(학정동)에 새로운 캠퍼스·실습 병원 오픈

동인동 캠퍼스의 노후화와 공간 부족 문제로 제2캠퍼스 설립에 대한 요구가 증가했다. 1996년 경북대 본부에서는 칠곡 동호동 농대 부속 실습장 부지에 의치대 이전 및 제2 대학병원을 설립하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칠곡캠퍼스 신설이 가시화됐다. 그러나 IMF 위기로 재원 확보가 쉽지 않아 건립 계획은 늦추어질 수밖에 없었다. 2005년 정부로부터 칠곡병원, 지역암센터, 노인보건의료센터의 건립인가를 받아 2007년 착공해 2010년 7월 준공했다. 그리고 2011년 칠곡경북대병원이 개원했다. 곧이어 메디컬컴플렉스 조성 계획의 일환으로 2013년 학정동 캠퍼스에 의과대학 교수 연구시설인 의생명과학관 1호관(연구동)이 준공돼 동인동 캠퍼스의 연구시설과 기초의학교실 일부가 이전했다. 2017년 의과대학 학생 교육시설인 의생명과학관 2호관(교육동)이 준공됐다. 2017학년도 2학기부터 의학과 1학년 임상의학 교육은 학정동 캠퍼스에서 실시했다. 새로운 병원과 캠퍼스의 준공으로 학생 실습 및 교육 시설 인프라가 크게 확대된 것은 물론, 교육 및 실습 환경도 획기적으로 개선됐다.

◆의과대학 체제 전환

의학전문대학원은 대학교육 대중화 시대에 알맞은 전문성과 경쟁력을 갖춘 의사를 양성하자는 취지로 도입 추진됐다. 경북대는 2002년 3월 교육인적자원부 측에 2004년부터 전문대학원으로 전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2002년 11월 전환을 확정했다. 직제 개편과 교육과정 개편 등을 준비한 후 2004학년도부터는 의예과 신입생을 선발하지 않았으며, 2006년 정원 110명의 의학전문대학원으로 전환했다. 그러나 당초 취지와는 다르게 많은 학생이 의사라는 안정적인 직업을 택하기 위해 의전원에 입학하고, 졸업 후 진로도 거의 진료 의사가 되기를 원했다. 결국 교육과학기술부는 2010년 대학별로 의과대학 및 의학전문대학원 중 자율적으로 선택하고 운영하는 것을 골자로 한 의학교육학제 개선계획을 발표했다. 그리고 경북대 의과대학은 2017년부터 의과대학으로 복귀하기로 결정했다. 이로써 의학전문대학원 체제는 2016년 종료 됐고, 11번의 의학전문대학원 졸업생을 배출한 후 경북대 의과대학 체제로 다시 복귀했다. 의학전문대학원으로의 전환과 의과대학으로의 복귀를 경험하며 대학은 체제, 대학문화, 전통 등에서 많은 변화를 겪게 됐다.

강승규기자 kang@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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