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로 가는 청정관광1번지 산소카페 청송 .12] 야송미술관과 객주문학관

  • 류혜숙 작가,박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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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1-01 08:06  |  수정 2023-12-12 11:08  |  발행일 2023-11-01 제17면
'한국화 이원좌·소설 김주영' 청송이 낳은 두 거목 삶·작품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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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좌 화백의 작품 수백 점을 소장한 청송야송미술관은 2000년 폐교된 신촌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한 경북도 최초의 공립미술관이다.

거대한 그림이 있다. 화가는 이 그림을 위해 수년간 산을 오르내렸고 6개월간 오체투지의 자세로 종이 위에 그 모습을 옮겼다. 그림이 완성되던 날 그는 감격하여 두 손과 두 발, 그리고 얼굴까지 던져 낙관했다. 그는 야송 이원좌다. 일평생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강산을 수묵화로 그리는 일에 매진한 한국화가다. 거대한 소설이 있다. 소설가는 수년간 거리를 떠돌며 사람들과 먹고 자며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였고 또 수년에 걸쳐 섬세하고도 뜨겁게 그들의 삶을 그려냈다. 평범한 백성들의 근력과 근성이 역사를 이끌어간다는 확고한 사관으로 글을 써온 작가, 그는 소설가 김주영이다. 이들의 세계를 담고 있는 공간이 청송에 있다. 야송미술관과 객주문학관이다.

청송 군립 야송미술관
2005년 개관한 경북 최초 공립미술관
야송 소장 미술 작품 등 400여점 보유
46m '청량대운도' 전시한 별도 건물도

객주문학관
폐교된 고교 건물 고쳐 2014년에 개관
소설 '객주' 등 김주영 문학세계 담아
문학관 내 집필실서 작가 작업 이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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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주영의 대하소설 '객주'를 이름으로 내건 객주문학관 역시 폐교된 진보 제일고등학교 건물을 고쳐 2014년부터 운영하고 있다.

◆청송 군립 야송미술관

청송 진보면 신촌리에 '야송미술관'이 있다. 2000년 폐교가 된 신촌초등학교를 군에서 사들여 리모델링한 경북도 최초의 공립미술관이다. 2005년 개관한 미술관은 2층 규모로 이원좌 화백이 소장하고 있던 한국화 및 도예작품 등 350점, 국내외 유명 화가와 조각가들의 작품 50여 점을 보유하고 있다. 야송이 수십 년간 수집한 미술 관련 서적과 희귀사료 1만5천여 점을 접할 수 있는 미술도서관도 있고 다양한 기획전시와 미술교육 강좌도 이뤄지고 있으며 운동장은 국내외 유명 조각가와 설치 작가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야외조각공원이다. 미술관 옆에는 '청량대운도기념관'이 자리한다. 봉화의 청량산을 그린 '청량대운도'라는 단 하나의 그림을 위해 나라에서 지은 전시관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움찔한다. 높이 7m, 길이 46m의 그림이 전시관을 가득 채우고 있다. 멀리 문수지맥과 덕산지맥의 출렁임 사이로 낙동강이 굽이치는 가운데 청량산이 펼쳐진다. 강렬하면서도 세밀하고 질박한 세계가 전시관이라는 공간을 스스로 지우며 확장되는데 나는 더 높은 구름 속에서 세상을 완상하는 듯하다.

야송 이원좌는 청송사람이다. 그는 1939년 청송 파천면에서 태어나 지경초등학교를 졸업했다. 7세 때 부친이 돌아가셨는데, 아들의 재능을 꿰뚫어 보았던 아버지는 부인에게 이런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이 아이는 그림에 특별난 재주가 보이네. 그러나 종이 수십 트럭을 쓴 뒤에야 그 재주가 피어나는 법인데, 아비 된 나는 이 아이에게 단 한 장의 종이도 사주지 못했네. 그게 한이네. 자네가 내 한을 풀어주시게. 이 아이가 종이를 요구하면 빚을 내서라도 소원을 들어주시게.' 이후 야송은 실제로 종이 걱정을 해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야송은 중고등학교를 대구에서 다녔다. 판자촌에 살며 어머니는 국수 장사를 했고, 야송은 낮에는 우산공장에서 일을 하며 야간학교를 다녔다. 그러면서도 중학교 2년 동안 그린 수채화가 1천700장이나 된다니 그의 아버지도 그의 어머니도 소년 야송도 그저 놀랍다. 그는 홍익대학교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중학교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리고 휴일이나 방학 때면 전국 각지의 강산을 여행하며 수묵산수화를 그렸다. 12년간 교직에 있던 그는 이후 그림에 집중하기 위해 교사직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산수화에 매달리게 된다. 산과 들, 바위와 폭포, 바다, 섬, 해운과 산운, 낙조, 달빛 흐르는 밤의 소나무, 가을 달밤의 소나무, 한겨울 바람 속의 소나무, 눈 내린 산, 물고기들, 자연 속의 사람들과 집들 등 그는 한국의 산천과 만물을 사랑하고 숭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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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청송야송미술대전 수상 작품들이 청송야송미술관 곳곳에 전시돼 있다.

그의 산수화들은 대게 볼펜 스케치라는 선행 작업을 거친 것들이다. 전국을 다니며 아름다운 우리나라의 명산들을 스케치한 양이 2만장 정도다. 스케치 옆에는 당시를 기억하기 위한 메모가 있다. '청량대운도'는 1992년에 완성한 실경산수화다. 야송은 1989년부터 3년간 청량산 12봉을 수시로 오르내리며 수백 장의 볼펜 스케치로 산을 꼼꼼하게 기록했다. 그리고 봉화 읍내의 380평 널찍한 빈 창고를 빌려 바닥에 400장의 화선지를 펼치고 6개월 동안 두문불출했다. '청량대운도'는 1992년 10월22일 완성됐다. 야송은 감격한 나머지 두 손과 두 발, 그리고 얼굴까지 오체투지 낙관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1천700여 자로 적어 넣었다. 그때 야송의 나이는 54세, 머리카락과 수염은 덥수룩이 자라나 있었다.

그는 야송미술관의 개관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와 초대 관장을 지냈고 2019년 세상을 떠났다. '청량대운도'는 전시 공간을 만나지 못해 20년 넘게 수장고에 잠들어 있다가 2013년 전용전시관이 건립되면서 마침내 우뚝 섰다. 누군가 방명록에 이런 감상문을 남겼다. '청량은 본디 봉화에 머물러 있지만, 그 혼은 이곳 청송에 옮겨와 앉았다. 바야흐로 청량산은 두 군데가 되었으니 몸을 보았다면 이곳 청송에서 그 혼을 느껴봄이 마땅하다 할 것이다.' 미술관에서는 그의 여러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작품들은 주기적으로 교체하여 전시하고 있으며 스케치들과 메모들, 주왕산 일대를 담은 작품들, 20대 초반에 그렸던 서양화 등도 볼 수 있다. 그가 귀천한 이듬해인 2020년부터는 매년 청송야송미술대전이 열리고 있다.

◆ 객주문학관

청송 진보읍내를 500여m 앞둔 고갯마루에 '객주문학관'이 자리한다. 김주영의 대하소설 '객주'를 이름으로 내건 문학관으로 폐교된 진보 제일고등학교 건물을 고쳐 2014년 개관했다. 소설 '객주'는 19세기 말의 보부상들, 즉 장돌뱅이들의 이야기다. 1979년 6월부터 1984년 2월 말까지 4년 9개월 동안 1천465회에 걸쳐 서울신문에 연재되었고 1984년 9권의 책으로 묶여 나왔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2013년 다시 연재가 시작되었고, 108회를 끝으로 총 10권의 '객주'가 완간되었다. 집필을 시작한 지 34년 만이었다. 문학관은 '객주'를 중심으로 작가의 문학 세계를 담고 있고 소설도서관, 영상 교육실, 창작 스튜디오, 세미나실, 연수 시설 그리고 작가 집필실인 여송헌(與松軒)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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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실 외에도 교육실, 창작 스튜디오, 세미나실 등을 갖춘 객주문학관 내부 모습.

제1 전시실은 '김주영 작가실'이다. 사람 좋은 얼굴로 천진하게 웃고 있는 작가의 사진 위에 '길 위의 작가, 김주영'이라 적혀 있다. 그는 '객주' 연재를 시작하기 전 5년 동안 전국 200여 개 시골 장터를 답사했다. 연재 기간에는 한 달에 20일 이상 장터를 찾아다니며 상인들과 막걸리를 나누고, 그들과 함께 먹고 자며 현장에서 글을 썼다. 그렇게 '객주'의 한 장 한 장은 '길 위에서' 완성되었다. '길 위의 작가'라는 애칭은 그의 행보에서 태어난 것이다. 전시실은 유리벽 속에 재현된 작가의 방을 중심으로 소년, 청년, 객주의 작가, 그리고 현재 진행형인 작가의 면면들로 채워져 있다. 지독히 가난했던 소년의 술회가 있고, 생계를 걱정해야 했던 청년의 사진이 있고, 소설을 위해 장돌뱅이처럼 전국을 돌아다니던 시절 그와 함께했던 카메라와 철필과 노트가 있다. 전시실 한쪽에서 작가가 직접 녹취한 장터사람들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그의 걸음으로 채집된 우리말 노트가 11권 분량이다. 노트는 깨알 같은, 정말 깨알만 한 글씨로 채워져 있다. 소설가 이문구는 그의 노트를 보고 '이것은 그의 피다. 피를 흘리는 김주영의 모세혈관'이라고 했다. 제2전시실인 '소설 객주실'에는 소설의 인물들과 보부상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다양한 조형물들과 그들 길 위의 삶과 함께했던 지게며 멍석, 저울, 사발, 목침 등이 전시되어 있다.

청송의 진보면은 작가 김주영의 고향이다. 그는 진보면에서도 오지로 꼽히는 달밭(月田)에서 태어났다. 이후 그는 진보장터 근처 '울타리 밖이 장터였고 울타리 안쪽은 우리 집 마당'인 집으로 이사했다. 지독히도 배고픈 시절이었다고 한다. 그는 장날마다 학교를 빼먹고 장터를 누볐다. 낯선 사람, 낯선 물건, 온갖 사투리, 작부와 사기꾼, 사이좋은 흥정과 육두문자에 멱살잡이를 보았다. 또 온갖 것들이 쏟아져 있는 난전 모서리에 앉아 도대체 이것은 어디에 소용되는 물건인지, 누가 왜 이 물건을 사 가는지를 생각했다. 진보면사무소 앞에 지금도 5일마다 장이 열리는 진보장터가 있다. 읍내 뒤로는 반변천이 흐른다. 반변천 갈밭 위로 떠오르는 태양과 흘러가는 여울 위로 내려앉는 노을은 그에게 가슴 시린 감동으로 기억된다. 이러한 무구한 감동과 순결한 경이와 땀 냄새가 배어나는 치열한 삶의 모습이 그가 잊지 못하는 고향이고 그의 소설은 이 모든 고향의 기억 속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지금 그는 고향으로 돌아와 문학관의 한구석에 자리한 집필실 여송헌에서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객주문학관은 지역민과 소통하고 지역 사회의 문화예술 환경 조성에 이바지하며 여러 장르 예술인들의 창작 공간으로 폭넓게 운영되고 있다. 소통, 휴식, 어울림, 교육, 체험 등이 어우러지는 열린 공간이 그가 지향하는 청송 객주문학관이다.

글=류혜숙<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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