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범의 시선] "대통령이 불쌍하다"

  • 조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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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2-03 12:50  |  수정 2023-12-04 09:13  |  발행일 2023-12-04 제22면
엑스포 유치 '참담 성적표'
홍 시장, "무능 참모 '징치"
대통령, 정치력 부재도 심각
정치 너무 만만하게 보는 듯
내년 총선이 성패 여부 '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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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범 편집국 부국장

홍준표 대구시장은 때때로 대구시 간부들을 놀래 킨다. 눈치 보지 않는 정치적 발언에 감탄하기 일쑤다. 홍 시장은 최근 SNS를 통해 부산엑스포 유치 실패와 관련, "엑스포 발표 이틀 전 유력 일간지 헤드 타이틀로 '49 대 51 막판 역전 노린다'라고 전 국민을 상대로 거짓 정보를 보도하게 하고, 미국에서 돌아온 대통령에게 박빙이라고 거짓 보고하고 하루 만에 또 파리로 출장 가게 한 참모들이 누군지 밝혀내 징치(懲治)해야 하지 않겠나"라고 했다. 또 "그런 무능하고 아부에 찌든 참모들이 나라를 어지럽게 하고 정권을 망친다. 유치 실패가 문제가 아니라 세계의 흐름을 바로 보지 못한 관계기관들의 무지와 무능이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홍 시장은 "대통령이 불쌍하다"라고도 했다. 대통령직 수행의 어려움을 이해하면서, 대통령을 둘러싼 사람들에게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 셈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한민국 대통령 역사에서 특별하다. 정치권에 오래 머물지 않고 단기간에 정점에 섰다. 검찰총장에서 순식간에 보수 정치의 대표 주자로 꼽히더니 대통령까지 올랐다. 전임 문재인 정부의 갈라치기가 정권 교체의 배경이 됐지만, 어쨌든 '기성 정치'에 실망한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은 셈이다.


'새로운 정치'라는 국민적 기대를 업고 출발한 윤석열 정부가 이제 1년 10개월이 됐다. 그동안 윤 대통령은 무엇을 보여줬나. 국민의 기억 속에 뚜렷이 각인된 게 잘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 피부에 가장 크게 와 닿는 경제 정책이 대표적이다. '윤석열 노믹스'가 없다. 하다못해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이라는 타이틀을 내세웠다.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몽니에 발목이 잡힌 측면도 있지만, 국민의 실망이 커진 것은 분명하다. 윤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는 아직 30%대다.


'정치력의 부재'도 심각하다는 인상을 준다. 정치를 너무 모르거나 만만하게 보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크다. 새로운 정치를 하려면 일단 기성 정치를 알아야 한다. 정치에 대해 무지하면 기성 정치권에 휘둘리게 된다. 지금 윤 대통령은 '초보 투자자'의 오류를 겪는 것처럼 보인다. 주식시장에 뛰어든 초보 투자자가 첫판에 큰 이득을 본 듯한 모습이다. 처음의 성공을 행운이 아닌 자신의 실력으로 여기고 주식시장을 만만히 보다 낭패를 맛본 투자자들이 셀 수 없이 많다.


윤 대통령뿐 아니다. 대통령실에 정치를 제대로 아는 참모들이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부산엑스포 유치 실패는 정치력 부재의 종합판이다. 잘못된 정보와 미숙한 정치적 판단에서 비롯된 참패다. 홍 시장의 지적처럼 정치를 모르는 무능한 참모들이 국민을 '희망 고문'에 빠트렸다. 냉엄한 국제 질서에 대한 오판이 문제였다. 부산엑스포 유치 실패로 대통령의 잦은 해외 순방만 입길에 올랐다. 일각에서 윤 대통령이 '대통령 놀이'에 빠졌다는 시각도 나온다.


국내 정치나 국제 질서는 현상 유지와 현상 변경 세력의 충돌이다. 기성 정치권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현상 유지에 안간힘을 쏟는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새로운 정치의 시도는 번번이 기성 정치의 벽에 가로막혔다. 국제 질서도 마찬가지다. 현상을 유지하려는 기존 패권국과 현상을 변경하려는 세력의 다툼이 치열하게 벌어진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그렇다.


윤 대통령은 기로에 서 있다. 내년 총선이 여권의 참패로 끝난다면 결코 성공한 대통령으로 마무리하기 어렵다. 시간은 아직 남아 있다.
<조진범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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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장 선거 경선준비사무소에서 대구시청 이전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홍준표 당시 국회의원. 영남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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