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뉴스] 구순 아내를 위한 다섯번의 생일 잔치

  • 김호순 시민기자
  • |
  • 입력 2023-12-26 08:31  |  수정 2023-12-27 08:28  |  발행일 2023-12-27 제24면
김규오 할아버지, 5차례에 걸쳐 생일잔치 열어
이웃, 봉사단체, 교회성도, 지인, 친구들 초대
콩나물공장서 모은 1천만원 잔치비용으로 사용
2023121901000628900026131
김규오 할아버지(오른쪽)가 아내 김분희 할머니(왼쪽)의 구순 생일잔치에서 동네 이웃들과 함께 생일 축가를 부르고 있다. <김규오 할아버지 제공>

"아내와 결혼 67년, 교직에서 퇴직한지 벌써 25년이 되었지만, 여태 아내 생일상 한번 내 손으로 차려준 적이 없었네요. 젊을 땐 아내 귀한 줄 몰랐고, 나이 들어서는 아들, 딸들이 아내 생일상을 차려줘 그냥 저냥 지내왔어요. 문득 올해 아내 구순 생일상은 반드시 내 손으로 직접 차려주리라 마음이 들더군요. 3~4년 전부터 아내가 자다 말고 새벽만 되면 나더러 '아부지요. 신랑 온다캤니더. 문경 가는 차비 좀 주이소.'라며 쪼끄만 보따리를 안고 내 방문을 두드리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실갱이 끝에 보따리를 뺏고 고향엘 못 가게 하면, '아부지! 해도 해도 너무 하니더. 보고 싶은 신랑도 못 보게 하믄 내보고 우짜라꼬.' 목 놓아 울어 보채던 아내를 생각하면, 그때가 더 괜찮았던 것 같아요. 가끔 제정신이 들 때면, 신랑을 뭐라도 챙겨줘야 한다며 아내는 부엌에서 부산을 떨곤 했지요. 코로나가 극심하던 어느 날, 냉장고 문을 열다 그만 아내는 넘어져 일어나질 못했어요. 대퇴골절 수술을 2번, 병원생활을 시작으로 지금은 휠체어를 타고 요양원에서 살고 있어요. 집은 계단이 가파른 2층이라 다신 못 올 것 같아요."
2007년부터 열혈 영남일보 독자인 김규오 할아버지(89·대구 서구 평리동)가 보내온 편지의 일부분이다.

그는 올해 초부터 아내 김분희 할머니의 구순 생일상을 차려주기 위한 프로젝트에 돌입하였다. 평소 아내와 자신에게 도움을 준 이웃들과 친구, 교우들을 초대해 따뜻한 점심 한 그릇을 대접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초대할 사람들 명단과 필요한 목록을 빠짐없이 점검했다. 경비는 자녀들에게 의존하지 않고 오롯이 자신의 힘으로 마련했다. 작년부터 인근 콩나물 공장에서 일하면서 받은 돈을 차곡차곡 모았다. 아내 구순 생일잔치를 위해 저축한 돈이 무려 1천만원에 달했다.

김할아버지의 아내 구순잔치에 초대된 우종구 할아버지(88·대구 동구 반야월로)는 "아내 구순 맞이 생신 초대는 생전 처음이다. 송죽(松竹) 김규오씨는 안동사범학교 동창생이지만, 참 훌륭하다. 남들은 한 번 쓰기도 힘든 자서전을 '야생초의 향기'라는 이름으로 2권이나 펴냈다"라고 말했다. 또 "'아호'같은 지조와 노력으로 온갖 고난을 슬기롭게 이겨내고, 보람있게 살아온 인내심과 노력은 우리들 노년은 물론 사회의 규범으로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라며 김 할아버지 내외의 건강과 천수를 기원했다.

대구 서구 평리동에 생애 첫 집을 짓고 뿌리를 내린 지 50여년에 이르는 김 할아버지는 5차례에 걸쳐 아내 구순 생일잔치를 마련해 300여명의 이웃을 초대했다. 아내 생일날인 11월 26일을 전후로 동네 이웃과 봉사단체, 교회성도, 지인들, 친구들에게 점심 식사를 대접했다. 생일 잔치 때마다 그동안 살아온 생생한 이야기와 함께 자서전 2권, 기념타올을 선물했다.

김호순 시민기자 hosoo0312@gmail.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시민기자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