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 토크] 김한민 감독 이순신 3부작 피날레 '노량'

  • 김은경
  • |
  • 입력 2023-12-29 07:56  |  수정 2023-12-29 08:57  |  발행일 2023-12-29 제14면
"이순신에 바친 10년은 천행…국난 봉착 시 충무공 애민정신 되새기길"
김한민 감독
10년에 걸쳐 '이순신' 시리즈를 마무리한 김한민 감독.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노량'의 김한민 감독은 홀가분한 표정이 역력했다. 오랜 숙제에서 벗어난 듯, 가볍고 여유로운 웃음을 지으며 한가로운 만남을 이어 나갔다. 그는 '이순신'이라는 영웅에 꽂혀 지난 10년을 보냈다. 천만 관객을 동원한 '명량'(2014)을 시작으로 '한산'(2022), '노량'(2023)까지 내리 세 편의 영화를 연달아 내놓았다. 그가 만든 영화들은 이순신이라는 한 인간의 모습을 새롭게 조명한 것은 물론 자나 깨나 나라를 고민한 한 영웅을 리마인드 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김 감독은 이순신과 함께 한 날들은 "무거운 책임감과 번뇌감으로 잠 못 이룬 날들이 많았지만, 행복한 여정"이었음을 고백했다. 기자가 그를 만난 날 서울에는 눈이 내렸다. 멀리 북악산 자락에는 하얗게 눈이 쌓이고 있었다. 어쩌면 이순신 장군이 마지막 전투를 앞둔 그 겨울날도 이런 날씨였을지 모르겠다. 평온하고 한가로운 오후의 정경에 소복소복 하얀 눈이 내리는.

세월호·코로나 위기 뚫고 여기까지
해전신 CG작업에만 800명 참여
3부작 하이라이트 이순신 최후 고심
담백하고 진정성 있게 담으려 최선

▶2014년 '명량', 2022년 '한산'에 이어 마지막 '노량'까지 '이순신' 3부작을 마무리한 소감은.

"잘 마칠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는데, 이렇게 인터뷰를 할 수 있으니 감개무량입니다. 첫 작품을 발표하고 햇수로 10년인데 장모님의 워딩을 좀 빌리자면 '천행'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세 작품 모두 발표할 때마다 대형사건들이 있었는데, 위기의 순간을 딛고 지금 이 순간을 맞이할 수 있게 돼 다행입니다."

▶천행이라고 하셨는데,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시나요.

"물론이죠. '명량'의 개봉을 앞두고 국가적 참사인 세월호 사고가 있었어요. 큰 충격과 실의에 빠져 있었지요. 사고가 난 해역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촬영한 탓에 한편에서는 개봉을 무기한 연기하자는 의견도 있었어요. '한산'과 '노량' 때는 코로나가 극성을 부리면서 언제 촬영을 멈춰야 할지 모르는 그런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촬영을 했던 거죠. 개봉까지 올 수 있었던 것만도 다행이었어요."

▶촬영하는 과정에서도 고충이 많으셨나요.

"촬영이 한창일 무렵 코로나로 사회가 멈춰 버렸죠. 약 3천평 규모의 강원도 평창동계올림픽 스케이트장 실외 세트에서 촬영을 했는데, 강원도 측에서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해 촬영장 폐쇄를 검토했었죠. 그때 만약 촬영이 멈춰버렸다면 지금쯤 많이 힘들었을 거예요."

▶이순신이란 인물에 빠지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처음 '명량'을 준비하면서 이순신이라는 인물을 좀 더 깊이 파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그가 출전한 전투들이 각 해전마다 뚜렷한 특징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고요. 예를 들면 '명량'의 경우에는 모두가 두려움에 빠져 있던 상황에서 병사들에게 용기를 주고 전세를 승리로 이끄는 역할을 했어요 '한산'의 경우에는 수세에 빠진 전쟁국면에서 굉장히 치밀한 준비와 전략으로 중요한 모멘텀을 만들었다는 것이 특별했지요. 전쟁의 한가운데서 홀로 고독한 시간을 보냈던 장군의 모습을 한 번쯤 재조명하고, 리마인딩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강하게 다가왔죠."

▶이순신 3부작을 만들며 어떤 부분에서 가장 큰 고민이 있었을까요.

"장군은 왜 그토록 치열하고 집요하게 전쟁을 수행하려고 하셨을까 하는 것이 제겐 화두였어요. 결론적으로 장군께서는 전쟁의 완전한 종결, 왜군의 완전한 항복을 원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지요. 이런 결론을 얻고 나서야 비로소 3부작 영화를 만들 결심을 할 수 있었어요. 장군께 누가 되지 않을 거라는 확신도 있었지요. 단순히 어떤 작품의 확장, 흥행을 통한 속편의 제작이 아니라 작품 자체로서 갖는 의미가 충분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노량'에서 해상 전투신에 100분 정도를 할애했어요. 시사회까지도 편집을 했을 만큼 공을 들였다고 들었어요.

"쉽지 않은 작업이었어요. 각본 단계에서,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몇 번쯤 포기하고 싶은 적도 있었지요. 명량, 한산 등 전작에서도 해상전을 찍었고, 관객들과 어느 정도 공감대를 이끌어 냈지만 쉽지는 않았어요. 무려 100분에 걸쳐서 해전을 치열하게 보여줘야 하는 이유가 뭔지를 찾는 게 중요했는데, 이 부분은 장군이 노량해전에 임하는 각오를 떠올리면서 풀렸어요."

▶해전을 찍으면서 특별히 관심을 둔 부분이 있었나요.

"전쟁의 한 중심에 있는 이순신이라는 존재를 리듬감 있게 설계하는 게 매우 중요했어요. 작업을 설계하다 보니 1년이라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어요. 또 전작에 비해 CG 부분이 좀 더 보완됐어요. 이제야 말할 수 있는데 CG작업에만 25개 업체 800여 명이 참여했어요. 웬만한 국내 CG사는 다 참여했다고 볼 수 있죠. 그런데 마지막에 또 복병을 만나기도 했죠."

▶복병이 무엇이었나요.

"사운드 설계였어요. 사운드가 어떠냐에 따라 해석도 완전히 달라지고, 몰입도도 달라지니까요. 특히 전투신의 롱테이크 부분에서 마지막까지 사운드의 밸런스를 찾지 못해 힘들었어요. 명량이나 한산처럼 너무 비트 있게 가버리면 정서적으로 몰입도가 떨어지는 듯하고, 그렇다고 센티멘털한 음악을 깔면 너무 신파가 되고…. 저한테는 큰 숙제였는데, 그냥 가장 핵심적인 소리로 채우고, 콘트라스트를 준 설계가 잘 맞았던 것 같아요."

▶감독님에게 이순신이란 어떤 존재일까요.

"이순신에게 10년을 빠져 있었어요. 지금도 빠져 있고, 앞으로도 계속 빠져 있을 것 같아요. 그냥 마음이 무겁고 착잡하고 멜랑콜리할 때 수시로 난중일기를 들여다봐요.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용기와 위로를 줘요. 개인적으로 우리 사회가 이순신을 통해 국가적 정체성이나 역사적 사건의 해법들을 찾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 결국 이순신의 정신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도 스며 있고, 1943년 카이로 선언에도 녹아들어 오늘날의 한국을 만들 수 있었던 건 아닐까요."

▶남해에 대한 애정을 자주 드러냈죠.

"이순신 3부작과 그 전에 촬영한 '극락도 살인사건'의 촬영을 남해에서 주로 했는데, 정말 사랑하게 됐어요. '노량'을 찍으며 한번은 배에서 일출을 맞았어요. 그때 밤을 꼬박 새우고, 멸치잡이 하는 바지선을 타고 어부 부부와 함께 바다로 나갔는데, 그때 그 일출은 정말 장관이었어요. 장군이 전투를 치르면서 이 태양을 보았을 거라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올랐죠."

▶아무래도 하이라이트 부분은 장군의 죽음이었을 텐데, 고민은 없었나요.

"처음에는 이순신 장군의 '내 죽음을 알리지 마라'는 부분을 빼려고 생각을 했어요. 참신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도저히 그럴 수는 없겠더라구요. 왜냐하면 그 장면이 빠지면 이순신의 진정성이 어디서 드러날 것인가에서 딜레마에 빠졌거든요. 전 국민이 다 아는 장면인 만큼 담백하면서도 진정성 있게 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장군은 왠지 눈 뜨고 그냥 그대로 화석화되어 돌아가셨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김윤석 배우도 공감해줘서 마지막 죽음을 끌어냈어요."

▶이순신 3부작에서 각각 다른 장군의 모습을 그려냈는데, 여기에 대해서 한마디 한다면.

"'명량'에선 용장의 모습을, '한산'에선 지장의 모습을, 그리고 '노량에선 현장의 모습을 그리려고 했어요. '명량'에서 최민식이 이순신 장군을 했으니까 '그대로 가도 되지 않을까'라는 마음과 '배우를 바꿔볼까'라는 생각이 양존했어요. 그런데 민식이 형이 '명량'을 찍고 나서 한 편에서 에너지를 다 쏟으니까 그거면 됐다고 했어요. 그래서 온전히 다른 이순신으로, 그것에 맞는 배우와 함께하면 좋겠다고 판단해서 결정을 내렸어요"

▶이쯤 되면 꿈에서 이순신 장군을 만났을 듯도 한데요.

"아니요. 지금까지 장군의 꿈은 한 번도 꾸질 않았어요. 저는 그 이유를 나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데, 장군께서 저희 하는 일이 크게 거슬림이 없어 보이니까 그냥 넘어가고 계시는 게 아닌가 싶어요. (웃음)"

▶이순신과 관련한 차기작도 준비하고 있는지.

"이 시리즈는 끝났지만 또 다른 작품을 준비하고 있어요. 매우 구체적으로 많은 진전이 있었어요. 8부작 정도의 드라마도 나올 것 같은데, 배우들도 꽤 많이 캐스팅되었고…. 이순신 3부작 영화를 찍고 나니 임진왜란 7년사를 안 들여다볼 수는 없었어요. 당시의 정치 외교사적 입장이 굉장히 기민하게 돌아가고, 한편으로 흥미진진한 부분도 있고요. 덧붙여 이번에 편집하면서 수시로 울었어요. 정말 팔불출도 아니고…. '한산'을 찍을 때는 현장에서 눈물이 났는데, '노량'에서는 편집본을 볼 때마다 눈물이 흘렀죠. 장군이 돌아가실 때, 아들과 대화할 때, 장례식 때 등등 줄곧 눈물이 흘렀어요. "

김은경기자 enigma@yeongnam.com

기자 이미지

김은경 기자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