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응상의 '천 개의 도시 천 개의 이야기'] 몽골 나담(Naadam)축제 ①

  • 권응상 대구대학교 문화예술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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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1-19 08:05  |  수정 2024-01-19 08:08  |  발행일 2024-01-19 제13면
2200여년 유목문화 집약된 축제…시원한 초원 경마장은 구경온 차로 가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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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담 축제 경마가 열리는 지역의 주차장.
몽골 평원의 유목 역사는 기원전 3세기까지 거슬러 간다. 흉노, 선비, 유연, 투르크, 위구르, 키르기스, 거란 등의 다양한 나라가 거쳐 갔다. 이들의 문화가 적층되어 형성된 것이 '나담'이다.

'나담'은 'play' 또는 'rest'를 뜻한다. 애초에는 가축의 성장과 풍요를 기원하는 종교적 의미와 힘과 기술을 겨루는 경기를 통해 병사를 모집하고 훈련하는 군사적 의미를 지닌 행사였다. 당시 몽골인들의 축제는 '남성 3종 경기'로 누구의 아들이 명궁인지, 누가 힘이 센지, 누구의 말이 준마인지를 선발하여 훌륭한 전사를 준비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도 나담 축제는 활쏘기, 씨름, 경마가 펼쳐진다.

유목민의 생활이 변화하면서 '나담'의 의미도 변했다. 오늘날에는 몽골의 오랜 역사와 전통을 되새기고 스포츠 경기로 전 국민을 단결시킨다는 정치적 의미가 강조된다. 현재의 나담 축제는 몽골 사회주의 혁명이 달성된 1921년 7월11일을 기념하기 위해 도입한 관제 행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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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흐바타르 광장에 마련된 '건국 및 혁명 기념 콘서트' 무대.
축제는 수흐바타르 광장에서 중앙경기장까지 행진으로 시작한다. 매년 7월11일 오전 9시30분이 되면 깃발 9개를 든 의장대가 수흐바타르 광장을 출발해 국회의사당을 지나 개막식이 열리는 중앙경기장으로 이동한다. 선수와 각 지역의 대표들도 몽골의 다양한 민족과 부족을 상징하는 옷을 차려입고 행진해 경기장 안으로 들어온다. 이어 칭기즈칸 시대 복장을 갖춰 입은 기마병들의 행렬이 입장하며 축제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전통 음악과 춤 공연이 펼쳐지고, 이어서 대통령이 개막을 선언함으로써 본격적으로 축제가 시작된다. 나담 축제는 경기 외에 몽골 전통 음악 공연, 음식과 공예품 판매 등이 함께 이루어져 몽골의 전통과 문화가 집약된 축제로 인정받으며,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지난해(2023년) 나담 축제를 체험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얻었다. 인문콘텐츠학회 답사 기간에 축제일이 겹쳤고, 또 축제 공연을 주관하는 몽골국립문화예술대학교의 초청을 받은 것이었다. 나담 축제는 7월11일이 개막일이지만 지난해엔 10일부터 15일까지 공휴일로 지정되어 전날부터 풍성한 행사가 열렸다. 우리 일행은 수흐바타르 광장에서 열리는 전야제 성격의 '대몽골 건국 기념일 및 인민혁명 기념일 기념 콘서트'에도 초청받았다.


수흐바타르 광장서 개최하는 전야제
사회주의혁명 표현 퍼포먼스로 화려

아이락·호쇼르·허르헉에 축제 '풍성'
전통악기 마두금·전통창법 후미 선율
우리 소리 닮은 가락에 어깨가 '들썩'



수흐바타르 광장의 칭기즈칸 동상 맞은편 광장 끝에 임시 무대가 가설되었다. 어스름이 짙어 오자 광장으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이내 객석을 빼곡하게 메웠다. 무대에는 2232, 817, 112, 102 등 암호 같은 숫자들이 붙어 있었다. 2023년을 기준으로 '몽골 건국 2232주년' '몽골제국 수립 817주년' '민족 독립광복 112주년' '몽골 인민혁명 102주년'이라는 의미란다. 전야제 자체가 건국과 혁명을 기념하는 자리이다 보니 몽골의 역사와 독립 과정을 표현한 화려한 퍼포먼스가 무대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관객들은 무대가 바뀔 때마다 탄성과 박수로 축제의 시작을 한껏 즐기는 모습이었다. 전야제는 밤늦게까지 거리 곳곳에서 이어졌다.

축제 날이 밝았다. 이른 아침인데도 술렁거림이 느껴졌다. 가이드는 차가 밀릴 거라며 재촉한다. 우리가 초청받은 곳은 경마가 열리는 후이 돌룬 후닥이라는 지역이다. 울란바토르에서 40여 분 거리지만 두 시간 넘게 걸릴 수 있다고 엄포를 놓는다. 몽골도 차가 밀리느냐고 농반진반 물었다. 나담 경마장은 축제를 위한 게르와 자동차, 텐트 등으로 새로운 마을이 생긴다는 말로 응수한다. 서두른 덕에 한 시간 남짓 만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주차 지역에는 이미 많은 차들이 들어차 있었다. 초원 위에 말이 아니라 자동차라니. 더구나 자동차를 타고 말 달리는 걸 보러 오다니. 시대의 변화가 실감 났다. 군데군데 게르와 텐트도 보였다. 오늘 이곳에서 종마 경주와 가장 인기 있는 여섯 살짜리 말 경주가 열린다. 그래서 사람들이 전날부터 자리를 잡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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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마가 열리는 초원 언덕 위에 있는 오보. 푸른 천이 감겨 있다.
나지막한 언덕을 올라 서니 아래로 드넓은 초원이 눈을 시원스럽게 했다. 사방이 환히 보이는 언덕 위에는 어김없이 푸른 천이 걸려있는 오보(Ovoo)를 만나게 된다. 오보는 우리의 서낭당 같은 돌무지다. 오보 아래 초원이 축제장이었다. 몽골 전통 가옥 게르가 에워싸 둥근 광장을 만들었다 그 광장에 축제를 알리는 깃발이 나부끼고 무대도 설치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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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 게르 안에서 펼쳐지는 몽골 전통 공연.
가운데 유독 큰 게르가 이곳 축제를 주관하는 몽골국립문화예술대학교의 본부였다. 우리는 이곳에 초청받은 손님이었다. 게르에 들어서자 총장님이 직접 푸른 천을 목에 걸어준다. 몽골인들은 오보에 푸른 천을 바치는데, 이를 '하닥'이라고 한다. 우리 목에 걸어준 것도 이 하닥이었다. 하닥은 오보에만 바치는 것만 아니라 특별한 행사나 경사스러운 날에 귀한 분이나 웃어른께 바치는 존경과 환영의 의미란다. 이어서 아이락(마유주)을 들고 건배를 했다. 이 두 가지가 귀한 손님을 맞는 의식이다. 푸른 하닥은 끝없는 하늘을 상징하고, 하얀 아이락은 거룩함을 상징한다.

아이락은 우리의 막걸리와 비슷한 마유(馬乳) 발효주다. 우리 막걸리보다는 조금 시큼했다. 다 비워야 환영을 받아들인다는 표시라고 한다. 도수가 높지는 않았지만 취기가 올랐다. 목축업을 주로 하는 몽골인들은 봄과 겨울에는 주로 양고기를 먹고 여름과 가을에는 버터, 치즈 등 유제품을 먹는다. 아이락은 암말의 젖을 짜서 차게 식힌 뒤, 말가죽으로 만든 단지에 넣어 반복적으로 저어준 뒤 발효종을 넣어 발효시켜 만든다. 아이락은 몽골의 축제나 의식 등에 빠질 수 없는 음식이라고 한다. 연이어 서빙되는 각종 음식이 풍성하고 넉넉한 축제를 만들었다.

홍차로 만든 몽골 전통차 수테차와 함께 몽골식 군만두 호쇼르, 몽골식 호떡 감비르도 등장했다. 우리가 설날에 떡국을 먹고 추석에 송편을 먹는 것처럼 몽골인들은 설날에는 찐만두 보츠를 먹고, 나담 축제 때는 호쇼르를 먹는다. 특히 나담 축제 때 먹는 호쇼르는 반달 모양이 아니라 보름달 모양으로 만들어 두 배 이상 큰 크기이다. 몽골인들은 나담 축제가 지나면 가을이 온다고 한다. 들판의 목초가 푸르고 가축이 한껏 자라는 한여름을 한마음 되어 진정으로 축하하고 즐긴다. 그래서 나담 축제는 우리의 추석처럼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즐기는 가을맞이 축제이다. 반달 모양의 호쇼르를 둥글게 만드는 것도 '단란'하게 모여 함께 즐긴다는 의미이리라.

아이락이 한 순배 돌자 몽골 전통의상을 착용한 한 몽골 손님이 품에서 작은 통을 꺼내 권했다. 어리둥절해 하는 우리에게 손짓으로 방법을 설명한다. 코담배였다. 몽골의 남성들은 성인이 되면 대부분 칼과 젓가락, 컵, 그리고 코담배를 휴대하고 다닌단다. 유목 생활의 필수품이란다. 우리가 신기해하자 코담배 담는 병이 할아버지 유품이라며 1천만원을 넘는다고 자랑한다.

몽골 보드카와 함께 몽골의 대표적 잔치 음식 허르헉이 나왔다. 술잔이 돌면서 게르 안에 초대된 사람들은 벌써 친구가 되었다. 허르헉은 본래 귀한 손님이나 집안 경사, 명절 때에 먹던 전통 요리다. 양이나 염소를 달궈진 돌로 익힌 대표적 몽골 요리이다. 모두 얼근하게 취기가 돌 즈음 게르 안에서 공연이 시작되었다. 마두금을 비롯한 전통 악기 연주는 물론, 가창과 무용도 선보였다. 흥겨운 가락에 어깨를 들썩이다가 우리 소리와 닮아 있는 전통민요에 넋을 놓기도 했다. 특히 몽골 전통 창법 후미는 한 명의 가창자가 지속적으로 목구멍에서 저음을 내는 동시에 맑은 고음을 낸다. 유목민족의 선조가 먼 옛날 새들로부터 배운 창법이라고 전해진다. 후미는 사람이 내는 소리 같지 않았다. 가창자가 내 눈앞에 있었지만 소리는 아득히 먼 곳에서 들려오는 환청 같았다. 지속적인 저음 위에 또 다른 소리가 얹혀 절묘한 화음을 만들어내며 가슴 깊숙이 스며들었다.

권응상 (대구대학교 문화예술학부 교수)
우리에게도 차윤미 교수(한양여자대학교)가 있었다. 답례 공연에 나선 차 교수는 우리나라 힙합 1세대로 B-Girl의 선두주자이다. 차 교수는 몽골 전통 악기 연주에 맞춰 즉흥적으로 힙합 춤사위를 선보여 모두의 감탄을 자아냈다. 게르라는 공간에서 몽골 전통 선율에 얹은 힙합의 절도 있는 동작이 절묘하게 시공간을 이었다. 처음 듣는 가락인데도 마치 준비된 퍼포먼스처럼 능수능란하게 몸을 움직였다.

축제는 이렇게 모든 걸 담아내고 모두를 즐겁게 한다. 광활한 초원의 작은 게르 안에 몽골의 전부가 담겨 있었다.(계속)

대구대학교 문화예술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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