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뉴스] 한 손 잃은 환자가 다른 손으로 만든 '치유' 작품

  • 조경희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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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1-16 14:43  |  수정 2024-01-17 08:38  |  발행일 2024-01-17 제24면
중장비 오작동으로 왼손 절단 이왕희씨
오른손만으로 나뭇가지에 생명 불어넣어
대구병원서 전시회 열어 환자에게 감동 선사
왕희전
대구 북구 학정동 근로복지공단 대구병원 1층 로비에서 개인전 '치유'를 열고 있는 재활 입원환자 이왕희씨가 한 손으로 제작한 자신의 공예품을 설명하고 있다.

지난 8일 대구 북구 학정동 근로복지공단 대구병원(병원장 정희) 1층 로비. 앙상하지만 예술적 손길이 닿은 듯한 나뭇가지들이 전시돼 있었다. 얼핏 100여 점은 돼 보였다. 자세히 보니 사람, 동물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누가 이런 독특한 발상을 했을까' 궁금증이 생기던 찰나 전시회를 알리는 홍보 배너가 눈에 들어왔다. '치유'라는 큼직한 글자가 웅변하듯 전시 주제를 알리고 있었다. 작가의 작업장면이 담긴 사진도 보였다. 그런데 작가의 손이 이상했다. 왼손이 보이지 않았다.

산업 현장에서 불의의 사고로 손목이 절단돼 재활 치료를 받고 있는 입원환자 이왕희(58·대구 달서구) 씨가 나뭇가지를 소재로 한 공예품을 만들어 병원에서 전시회를 열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난 8일 개막한 '이왕희展(전)'은 이 씨의 생애 첫 전시회로, 입원환자나 병원 방문객에게 큰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이 씨는 한 사업장에서 중장비 오작동에 따른 끼임 사고로 손목이 절단되고 어깨에 큰 손상을 입었다. 한 손을 잃고 수술을 마친 이 씨가 근로복지공단 대구병원에 입원해 재활 치료를 받기 시작한 때는 지난해 6월이다. 신체적 통증이나 정신적 트라우마는 말할 것도 없고,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생각이 많은 고통의 나날이었다.

그러던 중 사회복지사 안민영 씨의 권유로 병원 내 집단심리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았다. 어깨 통증을 참아가며 타래를 밀어 쌓는 도예를 하고 유화를 그리면서 한 손으로도 가능한 세상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안민영 씨는 "이왕희 씨가 아픈 마음을 어떻게 추슬러 갈까 걱정이 되었는데, 결국은 자신이 좋아하는 작업을 통해 치유의 답을 찾아가고 있었다"고 했다.

이씨는 시간이 날 때마다 병원 내 심어진 나무를 가지치기 하다, 버려지는 나뭇가지에서 예술적 감흥을 느끼고 재료의 특성을 최대한 살린 공예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사람과 동물, 추상적 인체의 형상을 찾아 자르고 깎고 갈았다. 병실 한쪽에서 한 손으로 작품을 만들면서 수없이 떨어뜨리고 다시 줍기를 반복했다. 화가 나기도 했다. 불쑥불쑥 다친 왼손에 통증이 올 때마다 툭툭 두드리며 "왼손아, 너는 가만히 있어"라고 혼잣말을 하기도 했다. 이렇게 나뭇가지에 생명을 불어넣다 보니 육체적인 노동과 감성이 녹아든 작품이 탄생하게 됐다.

아픔을 잊기 위해 만들고 또 만들면서 작품 수가 늘어났고, 다른 환자들과 공감하고 싶어졌다. 그는 "환우들과 생각을 같이하고 싶어 보따리를 펼쳐 보이게 됐다"며 전시회를 기획하게 된 동기를 설명했다. 또 "무엇이든 부딪쳐 보고, 실패하면 그때 걱정하면 된다"며 "비슷한 처지의 환자들과 서로 응원하면서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살아가고 싶다. 그러기 위해 장애를 이기는 힘을 키울 것"이라고 했다.
이 씨는 오늘도 식물 화분 키우기, 그림 그리기, 가지치기, 나뭇가지를 소재로 공예품 제작하기 등 건강한 삶을 위해 자신과의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한편 병원 측은 이 씨의 전시회가 재활 치료에 지친 환자·보호자들의 심리적 안정, 재활 의욕 고취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다양한 전시회를 구상하고 있다.
조경희 시민기자 ilikelake@hanmail.net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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