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뉴스-시민기자 세상보기] 알레르기와 확증편향

  • 진정림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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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2-20 10:30  |  수정 2024-02-21 08:15  |  발행일 2024-02-21 제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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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림 시민기자
딸아이와 2년 2개월을 함께한 반려동물 햄스터가 하늘나라로 갔다.

설 연휴 일주일 앞두고 벌어진 일이다. 2년 전 딸은 우울하다면서 햄스터 키우는 것을 허락해 달라고 했으며 키우는 장소를 딸의 방으로 지정해주며 어쩔 수 없이 허락했다.

딸이 햄스터를 키운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0년전 초등학교 다닐 무렵 햄스터와 비슷한 종인 팬더마우스 17마리를 3년 가까이 키웠다. 그 당시에 우리 부부는 팬더마우스의 뒤치다꺼리를 하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허락했다. 처음부터 17마리를 키우게 된 것은 아니고 암놈 한 마리만 키우다가 너무 외로워한다며 수놈과 짝을 맞춰주면서 일이 커졌다. 개체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딸은 좁은 장소에 갇혀 지내는 팬더마우스를 차례로 데리고 나가 놀이터나 주변 공원을 산책시키기도 했다. 분변 냄새로 가족들이 괴로워하는 일이 없도록 청소도 열심히 했다.

야행성인 그들이 밤에는 번번이 탈출했는데 우리 부부는 그들의 집을 고쳐 줄 수도 있지만 자는 딸을 깨워서 꼭 찾도록 했다. 딸에게 그렇게 매정하게 굴었던 것은 햄스터 키우는 일을 포기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래도 딸은 잠이 덜 깬 눈을 비벼가면서 햄스터를 찾아서 넣어놓고 소란을 일으켜 죄송하다는 사과까지 했다. 그렇게 그들은 어린 주인의 보호 아래 대부분 천수를 누리고 세상을 떠났다.

딸의 어릴적 꿈은 수의사였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는 생명과학이라는 방과후 수업시간에 받은 병아리를 베란다에 울타리를 쳐놓고 중닭이 될때까지 키웠다. 안방 베란다 쪽에서 키워서 침대에 누워 있으면 닭똥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때는 딸이 어리기도 했고 갑자기 키우기 시작한 터라 우리 부부의 손길이 필요했다. 또한 딸의 꿈을 이루기 위해 부모로서 이 정도 희생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딸은 병아리에게 자신의 밥도 나누어주고 하루에 한번씩 꼭 산책을 시킬 정도로 지극정성으로 보살폈다. 그러던 어느날 온가족이 여행을 다녀와보니 그 닭이 울타리를 넘어 이제 막 꽃을 피우기 시작한 난을 초토화한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었다.

딸의 뜨거운 동물사랑에 비해 우리 집에는 고양이나 개를 단 한번도 키운 적이 없었다. 우리 부부가 동물을 좋아하지 않는 탓도 있지만 오빠가 알레르기 비염을 앓고 있다는 핑계로 단호히 거절했다. 아들이 대학 졸업 후 대전에 자리를 잡자 딸아이는 바로 햄스터를 키웠다. 아들은 두어 달 한번씩 집에 오는데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어김없이 코를 훌쩍이고 두통이 심해 늘 열차시간을 앞당겨 집을 떠나곤 했다. 하지만 이번 명절에는 아들이 아무런 증상이 없어서 우리 부부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너무나 감사한 마음에 주워 담을 수 없는 실언을 하고 말았다. "어머! 햄스터가 없으니 오빠가 알레르기 증상도 없어졌네!". 온 힘을 다해 슬픔을 참고 있을 딸의 면전에서. 어떤 변명도 오히려 구차했다.

사실 아들의 알레르기가 동물의 털 때문이라는 증거는 없다. 정황상 그렇게 믿어왔다. 다른 변수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번 명절에 내려온 아들은 몇개월간 인스턴트 음식을 끊고 철저한 식단조절과 운동으로 7kg 감량에 성공해 '컨디션 최상'이라고 했다.

진정림 시민기자 trueforest@naver.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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